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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렵고 답답하던 야곱 (창 32: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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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적을 체험했다고 해서 야곱이 달라진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그대로였습니다.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순간적인 어떤 체험을 했다고 해서 계시를 받고 은사를 체험했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거나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리고 하나님과 굳은 맹세까지 맺은 야곱이었지만 20년 동안 평범하게 성내고, 다투고, 미워하고, 꾀부리고, 고향을 그리워하고, 먹고, 잠자고, 아들·딸 낳고, 돈벌고 하면서 이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걷는 평범한 길을 걸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 야곱이 잠 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긴 했지만 ” 그의 인생이 뚝뚝 소리가 나는 것처럼 달라지지 못했다는 애기입니다. 일본 內村 선생은 그이 저서인 “ 구안록 ” 이라는 책에서 “ 부흥회를 쫒아다녀도, 자선사업을 하고, 구제를 해보아도, 신학을 연구하고, 자기 수양을 해보아도 자신이 원하는 마음의 참 평안은 오지 않았다 ” 고 술회학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가 새로운 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야곱이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여기에 깊은 진리와 교훈이 있습니다. 1.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야곱 사람은 누구나 향수라는 것이 있습니다만 야곱의 경우는 심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그는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 반드시 저를 고향으로 돌려 보내 주시라 ” 고 부탁해 두었습니다. 세계 어는 민족에게나 향수나 조국애가 있기 마련입니다만 야곱의 후손인 유태민족 만큼 고향에 대한 짙은 향수를 가진 민족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조국애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유태민족의 이런 향수가 시온 이름으로 발전했고 조국애로 발전했습니다. 하란에서 야곱은 성공했고 중년 후반을 넘어선 사람이 되었습니다만 고향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본향을 가고자 한 것입니다. 2. 에서와 야곱과의 관계 야곱은 하란에서 결혼하여 두 아내와 많은 자식들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20년 동안이나 양떼를 먹이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외삼촌에게 그의 품삯에 대해서 열 번이나 속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야심을 그대로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교만한 방법으로 외삼촌을 속이고 외삼촌의 양떼를 거의 다 빼앗았습니다. 이제 외삼촌의 보복을 두려워 한 야곱은 결국 모든 재물을 다 가지고 도망간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처자와 많은 재물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금의환향하는 길이였을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건넜더니 이제는 많은 노비와 수백 마리의 양과 소와 약대를 거느리고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야곱이 “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 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야곱이 떠날 때 형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형이 이제 이를 갈면서 야곱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먼저 종을 보내서 에서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종들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형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오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이때 취한 방법은 우리 보통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취하는 방법과 비슷한 방법을 취했습니다. 먼저 인간적인 계획을 가지고 방법을 먼저 세우고 그리고 하나님에게 기도한 것입니다 두렵고 답답한 일을 당할 때 우리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야곱은 지금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우리와 같이 약한, 너무나 우리와 같은 인간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계획, 자기 마음,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 일입니다. 가족을 데리고 귀향하는 그의 고향 길이 순탄하질 않았습니다.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20년 전 고향을 떠날 때 느꼈던 그 불안과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니 그 때는 도망자의 입장이었지만은 이제는 싫든 좋든 형 에서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퇴유곡에 빠진 것입니다. 바로 그 진퇴유곡, 절망과 좌절의 그 골짜기에서 야곱의 신앙은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처자식을 이끌고 도망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20년 동안 칼을 갈며 벼르고 준비해 나온 400명 에서의 군대와 맞설 실력도 없었습니다.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절망, 좌절, 지옥이라고 애기합니다. 싸르트르는 이런 현상을 묘사한 그의 작품명을 “ 출구가 없다 ”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새로운 출구를 찾았습니다. 아니 찾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찾아야 했습니다. 지상에서 길이 막혔을 때 야곱은 다른 데서 길을 찾았습니다. 여러분 길이 막혀 절망하는 분이 있습니까? 출구가 열리질 않아서 좌절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새로운 출구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출구가 어디 있습니까? 본문을 주목하십시다. 400명을 거느리고 마주오는 에서의 소식에 충격을 받은 야곱은 자기 가족들은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한 후 자기 홀로 얍복강 나룻터에 남았습니다. 야곱은 에서와 화목하는데 끝까지 노력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우리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와 화해할 수 없다고 절망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랑과 평화는 아무리 값비싸게 산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참 잘 샀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많은 무뚝뚝하고 마음이 고약한 사람들은 야곱의 처지를 당하면 “ 에서는 이유없이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그러니 나를 선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선물을 보내기 전에 멀리서 더 좀 충분히 그를 관찬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 고 말한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에서에게 아주 겸손하게 자기의 의사를 전했고, 그것도 아주 현명한 방법으로 하도록 종들에게 일렀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얍복강 가에서 철야기도 후 야곱은 에서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하니 모든 문제가 다 선하게 해결된 것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방법에 의해 해결하려고 하진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문제해결을 시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배워야 할 지혜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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