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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범 청년 요셉의 이상과 신앙 (창 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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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은 오르기 힘들지만 한 번 오라가서 산꼬대기에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후련한 기분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 이상을 높이 가지는 자만이 참다운 미래의 행복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하여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몰라주는 사회와 대하여 원망합니다. 그러나 세상 비록 암담하고 어려움이 많다 하나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어찌할 수 없습니다. 환경은 우리를 키워주는 요람입니다. 따라서 늘 가능성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그 앞길이 아무리 암담하여도 늘 가능성 위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축복하는 자가 어떤 자인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요셉의 이상

 (1) 어려움 중에도 인내하는 자였습니다. 우리가 높은 이상을 가질 때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나의 창조적인 사람을 탄생하기 위하여서는 해산의 고통이 따릅니다. 구슬도 수없이 닦아야 아름다운 모양이 납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애매한 누명을 써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환란을 당했으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인내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매이지 않고 그 뒤에 잇는 높은 이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런 삶의 자세 때문에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낙심하거나 이상에 맞니 않는 일을 당할 때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이런 괴로움과 고통이란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알아야 합니다. 시련이 올 때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그 위에 있는 이상과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시련을 이려 나가야 하겠습니다. 롬 5:3-4에 “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환란이 닥칠 때 기뻐합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상을 실현할 사다리이기 때문입니다. 조개속에 모래가 들어 갑니다. 그 까칠까칠한 모래 때문에 조개가 많은 아픔을 느낌니다. 조개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모래를 부드럽게 쌉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탄생된 것이 진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이런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요셉은 높은 이상의 소유자입니다. 요셉은 어려서 꿈을 잘 꾸었습니다. 한 번은 볏단이 자기 볏단에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결국 이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사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 고생도 했지만 이 꿈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 야곱은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왜 아버지가 요셉의 꿈을 심각하게 듣고 마음에 두었을까요? 그것은 허황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높은 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신앙은 위대한 이상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빌 4:13에 “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 고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뜻을 세우되 크고 옳은 뜻을 세워야 합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습니다. 옛 말에 정신일도 하사불성(情神一到 何事不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이 한 곳에 집중되면 안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확신하는 신앙이 있어야 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대한 이상은 이기적인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에서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밝음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의 손실은 더 많이 잃어버린 것이요 이상을 잃어버린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고후 5:17에 “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 ”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갑니다. 이제 여러분 앞에 새로운 세계가 전개됩니다. 새 세계 속에 참 주인공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요셉의 신앙

 (1) 신앙이 있었기에 모든 시련을 이겼습니다. 대개의 사람은 시련 중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시대를 원망합니다. 이웃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원망하지 않했습니다. 창 50:20에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팔았던 옛날의 사실에 대해 요셉이 자기들에게 복수나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요셉은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가이 만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으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 라고 위로 했습니다. 바로 요셉의 이 깊은 신앙이 그로 하여금 성공케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감옥살이 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애굽 총리대신이 되었어도 어려서부터 믿던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고 종신토록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세상으로 빈한하고 비천한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을 잘 믿다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해지고, 귀하게 되면 하나님을 저버린 자가 많습니다. 사울 왕고 삼손과 웃시야 왕이 그런 사람입니다. 금일 교회만 보더라도 천한 처지에 있을 때는 열심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성경을 읽으며 주일을 엄수하여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더니, 이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육신생활이 부류하여지고 직분을 맡게 되니 교만하여 과거에 그 열열하던 신앙을 저버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육신의 안일 속에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 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시종일관 어떠한 지지가 되든지 지켜야 하겠습니다. (2) 충성의 신앙입니다. 1) 요셉은 적은 일부터 충성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이름이 나타날 일에는 충성하려고 하지만 자기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적은 일에는 충성하기를 즐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큰 일에 신실하기 어렵습니다. 2) 요셉은 주인이 보든지, 안 보든지 한결같이 성실하게 일하였습니다. 이것이 참 충성입니다. 주인이 감독할 때는 일을 잘하다가 보이지 아니할 때는 잘하지 않은 것은 출성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은 자신이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3) 요셉은 끝까지 충성했씁니다. 1, 2년 충성하다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최후까지 일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우리의 최대 결합은 중도반도, 용두사미라고 하여 시작하고 끝을 맺지 못하는 일입니다. 끝까지 못할 바에 아예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 전쟁의 승리는 최후 5분에 있다 ” 고 했습니다. 세상 만사가 끝까지 하지 않고서는 성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충성 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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