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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재앙이 시작 (출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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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에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고 했습니다. 자기 왕권을 가지고 세도를 부리면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로 삼고 권력을 남용하던 바로 왕의 그 마지막이 택한 백성들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임을 보여주신 것이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섭리 제시(1절) 1절에 해방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방을 위해서는 한 가지 남은 재앙을 통해 바로의 완악한 의지를 완전히 꺽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홉 차례에 걸친 재앙이 계속 바로와 그의 왕실을 강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그 완악성을 고집해 온 바로도 이 남은 한 가지 재앙에는 두 손을 들고야 말 것입니다. 이 열 번째 재앙은 바로와 그의 왕국에 대한 결정적 타격을 주는 재앙이 되는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오랜 숙원이 성취되는 계기가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섭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은 불신자들에게는 공포와 손실을 가져오게 마련이며 믿는 자에게는 승리와 환희를 안겨준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제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종족의 대표인 장자를 쳐서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재앙을 내리신 후에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 줄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가 인간 자기를 하나님과 같이 과시하고 끝까지 목이 곧아 하나님을 거역할 때 하나님께서는 장자로부터 여종의 장자까지 그들의 생명을 멸절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바로의 학정이 심할수록 소망을 오히려 더 강하게 가졌습니다. 애굽이 극도로 교만해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끝까지 닥쳐오는 어려운 시련들을 소망으로 극복하여 나갔을 때, 그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았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새로운 탈출구의 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바로가 승리하고 모세가 패배를 당하는 것 같았으나 악의 세력이 극한 그 마지막에 가서 선의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소망을 택한 자에게 언제나 보여주십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면서 보호와 소망을 보여주셨듯이 말입니다. 2. 신앙과 순종의 제시(2절) 2절에 “백성들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3절에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라고 했습니다. 이는 곧 여호와께서 애굽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각종 보물로써 이별의 선물을 주게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출 12:35-36). 애굽인들에게 금은 보화를 얻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대로 응답받았으니 곧 신앙에 대한 보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결코 명령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문둥이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순종하려 하지 않았지만 순종할 때 그 몸이 깨끗해진 것이 아닙니까? 마가복음 2장에 주님께서 병을 고치실 때 의심 많은 자를 향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금은 패물을 구하라 너는 지금 노예이지만 애굽 주인에게 구하라”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십니다. 하나님은 못할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문제는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선언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이 50% 있으면 50%만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100% 있으면 100%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에서 연약한 시민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부조리를(忍從)해야만 하는 현실에서도 언제인가는 그 억울한 피해에 대하여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될 날이 오리라는 점을 우리는 이 사실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3. 신앙의 보상의 제시(3절) 3절에 “모세는 애굽국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의를 위해 자기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 자에게 하나님은 영광으로 보답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이제 한 가지 남은 마지막 재앙은 모세로 하여금 애굽인들 중에서 큰 영광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위대성은 이방인들까지도 심히 크게 인정되었습니다. 처음 모세는 애굽을 탈출할 땐 살인자로, 그리고 애굽의 역적으로 도망친 사람이었습니다. 탈출 당시 모세는 애굽 왕자로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모세는 그들 앞에 크게 보여진 모세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세지만 지금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모세였습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모세요 하나님 손에 붙들린 모세였습니다. 모세 자신은 그들에게 크게 보이려 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크케 보여진 것입니다. 모세는 명예를 요구한 적도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하여 애굽 궁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일신상의 평안은 있을지 모르나 천추만대에 매국노라는 낙인이 그의 이름에 찍혔을 것이요, 하나님에게 영원히 버림을 받았을 것이요, 인간 역사에 수치를 남겼을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이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새롭게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린 이 모세가 60만 이스라엘 대군을 거느리고 극적인 출애굽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를 얻어 그들의 소원대로 하나님을 마음대로 섬길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옳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한 이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진리입니다. 베드로는 이 진리의 말씀에 따랐기 때문에 영광을 얻었고 가룟 유다는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제 곳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의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도 함께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양자는 각각 상반된 각도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악인은 그 악행 때문에 역시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에 의미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선인이건 악인이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모두가 위대하신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각자 저 나름의 위치와 소행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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