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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민족 해방의 길 (출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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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후의 광야 40년간은 고난과 시련의 시기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 고난과 시련은 광야 40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후로도 줄곧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므로 약속의 땅에 정주했지만 그 땅은 돌자갈 밭, 험한 산지, 물 없는 산지였고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무지하고 횡포한 토착 원주민은 결코 따뜻한 인정의 풍토를 이룰 수 있는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자연과 인간으로 더불어 부단히 싸워야 하는 이 땅을 가나안복지로 약속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해방의 길이란 계속되는 고난의 길이라고 하는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해방은 남의 힘으로 준비된 땅에 이민가는 신천 신지의 생활지 아니고 자유의 정신으로 개척하고 전진하는 사람만이 얻는 것입니다. 가나안 복지를 건설하려는 엑소터스는 작가 유리스(Leon Uris)가 그린대로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가면 갈수록 험한 길입니다. 사막에서의 200만 민족의 대이동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매일 2만석의 쌀을 배급해야 하는데 생산은 전무인 사막입니다. 식수도 없는 사막입니다. 홍해를 건너 감격에 해방의 노래를 부르던 민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막의 기아와 고난 뿐이었습니다. 모세를 원망하고 애굽을 동경했다 해도 나무랄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질문을 하기까지되었습니다. 그런 비참한 고난을 뚫고 그들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그들을 살리셨습니다. 산다는 일이 기적인 생활 속에서 가나안 복지에 대한 약속을 믿고 견디며 전진하는 강한 신앙과 의지를 키워 나갔던 것입니다. 고난을 받을 때 두 종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원망하는 다수의 사람과 책임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입니다. 민중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차라리 애굽에서 그대로 살기를 바랬던 겄은 전자의 경우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구하는 노예의 근성을 가진 사람은 애굽에서 나오는 해방을 받았어도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는 해방은 못 받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원인은 정신자세였습니다. 해방이 오면 바로 훌륭한 독립국가가 되고 번영하는 복지국가가 세워 질 줄로 생각한 우리들도 그 점에 있어서 매일반입니다. 고난과 노력없이 희생의 댓가없이 가나안 복지가 이루어질 줄 생각하고 바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의존사상이며 노예 근성입니다. 모세가 반석을 쳐서 생수가 흘러 모두 마시게 했다는 기적은 하나님께서 고난의 역사 속에서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새역사를 이루게 하신다는 실증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어떤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책임을 지는 사람, 문제를 해결하려고 개척정신에 불타는 사람이 있으면 반석에서도 물이 나오고 사막에서도 강이 흐르고 사막에 장미꽃이 피게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복지는 정신적 자기 자신이 고통의 댓가를 치루고야 들어가는 곳입니다. 해방의 길은 형극으로 누비며, 요원한 사막을 표랑하면셔도 끝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고야 마는 불굴의 신앙과 강인한 정신으로 극복해 가야 할 고난의 길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물러서지 않고 과감히 싸울 수 있는 투철한 신앙과 종일 손을 들고 기도하며 지휘를 하는 진지한 신앙과 불굴의 정신이 요청되는 길입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무장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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