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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르 광야에서 이스라엘 (출 1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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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나가는 세상은 마치 거친 광야와도 같아서 뜻하지 않은 고난과 역경에 부딛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여 이제 스르 광야에 들어서니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다가 어느 한 곳에 이르니 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기쁨이 넘쳐 물을 마시려 하였더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소리지르기를 “쓰다, 쓰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쩌면 쓴 곳, 곧 마라같은 세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 스르 광야의 고통 이스라엘 민족이 스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한 것처럼 우리가 가는 길에도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등록하였다가 낙심하여 세상으로 다시 나가버리고 맙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대개의 경우는 예수 믿으면 아무 어려움 없이 만사형통하고 몸이 건강하고 사업이 번창하고 돈을 잘 벌고 자녀들이 잘되고 계급이 승진할 줄 알았는데 예기치 않던 고통이 도래할 때 그만 낙심하고 돌아서 버리는 이유 때문에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핍박과 환란을 당하고 신자라는 이름 때문에 정직하게 살다보니 세상에서 손해 보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게 세상을 이겼노라”고 했습니다. 환란을 당하지 않겠다는 신앙은 무속적 신앙입니다. 환란을 당하나 이 환란을 잘 극복하려는 힘을 얻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이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마귀는 항상 시험합니다. “네가 예수를 믿어 처음에는 기뻤지만 그러나 지금 네가 얻은 것이 무엇이냐 네가 오히려 예수를 믿기 전에는 그래도 생의 쾌락이라도 있지 아니했느냐? 네가 십자가를 따라 생활함으로 세상의 향락이 없어졌구나 그 멋있는 세상 재미 다 잃어버렸구나!” 하며 시험합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오늘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내다보시고, 우리에게 내일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연단을 주십니다. 즉 광야의 연단을 우리 성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광야가 주는 영적 의미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광야는 영적 연단을 의미합니다. 광야의 연단은 예수 믿는 사람이 당하는 영적 전투입니다. 남편이 믿지 않음으로 오는 핍박, 부모님이 믿지 않아서 따르는 여러 가지 고통들은 우리가 광야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광야는 가치관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과거에 좋아보이던 것이 좋지 않게 보입니다. 과거에 가치있게 생각되던 것이 무의미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허무감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살펴도 위로받을 만한 것이 없고 진정한 평안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새로운 가치관을 우리가 인생 광야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3) 광야는 나그네 생활이 주는 피곤을 의미합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할 때 피곤이 옵니다. 죄가 우글거리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도성에서 핍박을 받는 일은 필연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시원한 생수를 찾아보아도 쓴물을 내는 마라가 있을 뿐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오아시스처럼 보이나 달려가서 보면 썩은 물이요, 먹을 수 없는 쓴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신자들이 광야의 가치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을 광야를 피하기 위한 도피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 연조가 깊어 갈수록 마라의 쓴물의 체험이 신앙 생활에 반드시 있고 또 그것을 오히려 기뻐하게 됩니다. (4) 광야에서 사람으로 자신의 무가치한 존재를 깨닫게 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케 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2. 광야에서 얻은 영적 유익 현대 아파트에 사는 어떤 가정에서는 국민학교 2학년 된 자녀에게 자가용을 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가용에는 전속 운전수가 따라다니고 월급은 그 어린이 손으로 준다고 합니다. 그 운전수는 그 아이와 놀아주고 교실에 들어가면 기다렸다가 퇴교할 때 집으로 모셔간다고 합니다. 얼마나 불쌍한 아이입니까? 동물원에 사는 새끼 사자와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그 동물원의 사자 새끼는 산에다 풀어 놓으면 얼마 못 가서 적응하지 못하고 죽고 말 것입니다. 발바닥에 흙이 묻지 않게 키운 자녀보다는 차라리 신문팔이하는 아이가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런식으로 자녀를 키워서 나중에 그 아이의 장래를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어리석은 부모처럼 우리를 키우지 않습니다. 찰스 코우먼 여사의 글 중에 재미있는 체험담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1년 동안 애벌레가 나방이 되어 나오는 것을 관찰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번데기에서 나방이 기어 나오는 구멍은 너무 작았습니다. 그 작은 구멍으로 큰 몸집이 빠져 나오려고 오랫 동안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달이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급히 가서 가위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구멍을 옆으로 좀 따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나방은 고맙다는 듯이 퉁퉁불은 몸집을 기웃둥거리면서 쉽게 꼬치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녀는 큰 선심이나 쓴 것 같은 만족감에 젖어 이제 그 나방이 오색찬란한 날개를 펴고 창공을 날 순간을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못 가서 나방의 신세를 망쳐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큰 구멍으로 쉽게 빠져 나온 나방은 날개를 질질 끌면서 방구석을 기어 다니는 팔싹둥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작은 구멍을 빠져 나오는 긴 시간의 몸부림, 이것은 사방이 꽃을 찾아 이 산, 저 산으로 날아다닐 날개를 갖는데 없어서는 안될 과정이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 너무 값싸게 동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건강으로 사회의 여건으로 형제가 진통을 겪고 고통할 때 값싼 동정에 못이겨 금방 가위를 들고 가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 그를 더 큰 위험에서 막아주시고 믿음의 날개로 세상을 날며 살도록 하시기 위하여 허락하신 시련의 좁은 구멍인지 누가 압니까? 벧전 1:7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입니다 우리는 마라와 같은 쓴것을 만나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문 25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그 나무는 이 때에 사용하기 위해서 여러 해 자라온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앞에 나타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 문제들에 대하여 해결책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쓴물이 있을 때마다 단물을 만드는 나무도 키우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마라의 쓴물을 달게한 것은 매우 신비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한 나무 가지를 물에 던졌더니 쓴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생명나무로부터 열매를 먹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 나무는 인간의 모든 쓴 독을 제거해 줍니다. 기독교는 역경과 고난을 당하지 않게 하는 종교가 아니라 역경과 고난을 달게 해 주는 생명의 법이 있습니다. 이 잘려진 나무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 인간이 수고하고 무거운, 그리고 쓴 고난의 짐을 지고 주님의 십자가 밑에 나을 때 이 짐은 다 벗어지고 생명수 샘을 마시고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복된 소식을 우리만 소유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암흑의 세계에서 허덕이는 많은 심령에게 이 위대한 소식을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시련의 연속인 광야같은 이세상이지만 하나님은 늘 여러분과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불같은 시련 뒤에는 아름다운 축복과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놓치지 마시고 이 복된 소식을 전하시는 모든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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