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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귀가 뚫린 종 (출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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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율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어 있는데 도덕법, 시민법, 그리고 의식법입니다. 첫째 도덕법은 십계명 안에 있는데 이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정의한 것이며 성부 하나님의 통치권 권세를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시민법은 주로 출애굽기 21-23장에 있으며, 히브리인들의 안녕을 위한 사회적 규범이었으며, 성령 하나님의 활동들과 그 영역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시하는 순서를 볼 수 있습니다. 세째 의식법입니다. 대개 레위기서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생활에 관련된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에 관한 모형의 일련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은 남의 집 종이 되기를 자원하는 자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사회와 시민생활에 규범이 되는 율례를 말씀하며, 오늘날 우리를 위한 그 법의 주가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 영적 적용에 있습니다. 본문은 종이나 노예에 관계된 말씀으로, 이 말씀의 뜻은 상징적으로 완전한 종을 나타냅니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서에서는 그를 종종 이러한 성격으로 보았습니다. 사42:1에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을 보라”고 했고, 슥 3:8에 “내가 내종 순을 나게 하리라”고 했으며, 사 53:13에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빌 2:5에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이가 복종의 자리로 들어 오심입니다. 전에는 스랍들 마져도 그 앞에서 얼굴을 가렸던 이가 천사들 보다 더 낮은 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놀라운 낮아지심에 대하여 경탄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더욱 심심한 경의와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깊이 생각함으로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신약 성경 전체는 예외없이 완전한 종의 섬김을 우리 앞에 제시해 주는 일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요 6:38에 “내가 하늘로써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눅 22:27에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높아지려 했으나 제 2 아담이신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할려고 40일 금식 기도하신 후 사탄이 와서 시험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하나님처럼 높아지기 위해 돌을 들어 떡을 만들어 경제문제를 이적으로 해결하고 성전 꼭대기에 내려와 천사의 도움으로 발이 상치 않게 하여 기적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며 사탄에게 절하여 세상 영화를 가지라는 시험이 왔으나 예수님은 한순간도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복하여 다른 길로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출 21:2에 “내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6년 동안 섬길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종은 6년간 주인을 섬기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6년이 지나면 값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출 21:2)라고 했으니 주인은 더 이상 부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 종을 데리고 재판장에게 가서 귀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영영 상전의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종은 그 집에서 장가갔기 때문에 처자는 주인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은 자유보다 진정 처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의 종이 되기 위해 영영 종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신부로서 사랑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우리를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귀를 뚫었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고초로 손바닥과 발바닥에 못자국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처자로서 사랑하셔 영원히 하나님의 종이 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자이기에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의미심장한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세운 규례 중에 송곳으로 귀를 뚫는 예법은 의미심장합니다. 모세 시대의 사회상은 부모가 없어 생계가 곤란하거나 있어도 호구지책이 어려운 가정이나, 남의 부채를 지고 갚을 길이 없을 때(왕하 4장) 남의 종이 됩니다. 또한 종이 6년간 상전을 섬기다가 7년째 되는 해에 자유로이 해방되는데 만일 자유 선택에 의하여 스스로 그 특전을 포기한다면 그는 송곳에 귀를 뚫어야만 했습니다. 1. 묶인 몸(출 21:1-4) 아담의 범죄 이래 인간은 영적으로 죄에 얽매인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 아래 팔렸고 눌렀으며 부자유한 몸이 되었습니다. 본문에 노예는 의무적으로 6년을 고생해야 하는데 그것은 강제노동이며 거주의 자유나 이동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습관 과제도, 전통과 인습, 세상 여론과 죄악의 근성에 얽매여 있는 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지금도 가난한 수백만의 인도 노예는 볼과 30달라 이하의 빛과 이에 대한 4부 이자를 갚기 위해 평생 노동을 해야 하고 가난한 임산부는 뱃속에 있는 태아를 노예로 만드는 서류에 서명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죄 가운데 있는 자는 비참한 가운데 사망권세 아래 묶여 있는 것입니다. 2. 놓인 몸(출 21:5) 그러나 이제 그 너그러운 사랑의 제도로 7년째는 자유하게 되었으니 이스라엘의 종들은 얼마나 다행합니까? 영적으로 이스라엘이 된 우리에게는7년이라고 하는 날짜가 문제가 아니라 구원자 안에서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 7:24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했고, 롬 8:2에 “이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안”이란 조건이 우리의 악조건을 해결했습니다. 요 8:36에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 자유를 누리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놀라운 사실은 7년째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상전이 마련해준 아내와 자녀를 인하여 단신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나가려면 제도상 처자는 주인에게 속했으니 처자를 포기하고 나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처자를 사랑하는 자는 억지가 아니고 사랑하는 까닭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노예됨을 선언합니다. 그 예식은 재판장 앞에서 거행하는데 그 때 그는 종의 귀를 문설주에 대고 뚫게 됩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떻게 고백했는지, 누구의 선택인지, 보기는 흉하나 뚫어진 귀를 보고 종의 심정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여 손과 발에 못자국을 내고 옆구리에는 칼자국을 내면서 까지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자유 안에서 진정으로 놓인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3. 바친 몸(출 21:5) 사랑으로 맹세하면서 자유를 포기하여 종이된 그는 이제는 그 집의 의무적 노예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들”로서의 바쳐진 몸으로 모두가 사랑이고 감격이며 자원하여 종이된 것입니다. 억지가 아니라 참 자유 안에서 봉사하는 기쁨을 그는 맛보게 되며 감사하게 됩니다. 황송한 대우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되고 직분을 통해 충성되이 여김을 받고 순종의 은총으로 말씀을 가까이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소위 주의 종들이라고 일컫는 자칭 종들은 많으나 귀가 뚫린 종들은 많지 못합니다. 예리한 말씀의 송곳으로 쪼개져 (히 4:12)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쫓아 섬기다가 주 앞에 나설 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딤후 4:7)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종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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