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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의 성소에 영광 (출 40: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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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내용을 한마디로 말씀드린다면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는 히브리 민족의 대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찌기 이스라엘이라는 명예를 받았던 야곱이 70여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애굽에 내려가 얼마 동안은 후한 대접을 받았지만 히브리 백성으로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요셉에 대한 기억이 애굽인들에게서 점점 사라지면서 히브리 민족은 고난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400년간의 긴 노예생활 끝에 하나님께서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그 백성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하는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담은 기록입니다. 가나안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꿈의 고향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요 그러기에 가나안을 향하는 길을 저들의 궁극적인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1. 애굽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저들이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할 때는 애굽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을 떠나야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실천에 옮기기에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 출애굽하여 홍해가 갈라졌을 때는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아니하여 불만과 불평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의식보다는 현실적인 안주가 더 시급했었습니다. 애굽은 비옥했으나 그들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 곳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가나안을 향하여 떠나야만 했었습니다. 롯의 가족이 살았던 소돔과 고모라 성은 아름답고 화려했으나 그들은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사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육체는 현실에 접하여 살고 있습니다. 먹을 양식이 넉넉하고 즐거운 오락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본향을 향해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히 11:16에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야 함이 당연한 것 같이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를 가야 할 것입니다. 2. 광야의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애굽을 떠났다고 해서 저들에게 당장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칠고 메마른 광야, 배고프고 목마른 헐벗음과 추위와 더위, 내적인 시련과 외적인 침략 등 고통의 아픔을 참지 않고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 생명을 탄생키 위해 어머니는 10개월 동안 잉태의 수고를 해야 하고, 죽음과 비교될 수 있는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만 합니다. 사람이 어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와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물며 가나안을 향하는 저들의 길이 어찌 편안할 수만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롬 8:18에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3. 믿음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애굽을 떠나는 일도 중요합니다. 고난과 역경을 참는 일도 중요합니다.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고난에서 인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가나안에 대한 화신이 저들에게 필요합니다. 가나안은 저들에게 미지의 땅입니다. 그러나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준 땅입니다. 뿐만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만이 갈 수 있었던 땅입니다. 우리도 믿음이 없이는 그 나라에 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변치않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 애써야 하겠습니다. 4. 하나님께서 보장하십니다 가나안 가는 길이 비록 험악한 길이라도 믿음으로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곳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이르지 못할 땅이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도달케 하시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적 가나안인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는 순례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오늘의 고난을 극복하여 그 나라에 함께 이르시기 바랍니다. 5. 광야 성막에 하나님 영광 충만했습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소를 모세로 하여금 짓도록 하여 완성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그 성소를 덮고 하나님 영광이 그 성막에 가득했습니다. 광야 교회에서 구름이 움직이면 성막도 움직였고 성막이 움직이면 이스라엘 민족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위엄은 세마포나 청색, 자색, 홍색으로 장식한 금이나 은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 속에 가득 차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소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면 사람이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400년이 아니라 천년이 흘러도 성전을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시 119편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했습니다. 이 시편 기자는 이 우주 가운데 차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학 2:7에 “내가 영광으로 이 전을 충만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 성전에 충만한 하나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 11:5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 병은 죽을 떵이 아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요 12:28에 예수께서도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요 21:19에서 주께서 “베드로가 죽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미리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베드로 같이 죽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된다면 죽어야 하겠습니다. 행 12:23에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함으로 충이 먹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롬 4:20에 “아브라함은 믿음이 견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이 곧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성소에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고전 6:20에 “너희 몸은 너희 것이 아니요 값으로 산 것이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고후 9:13에 “후한 연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물질, 우리의 몸, 우리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지상 명령입니다. 성경 요리문답 제 1문답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이뇨?” 하고 물었는데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본 신앙이 영광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섬기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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