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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제의 특별법칙 (레 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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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는 밀가루와 기름, 곧 감람유로 행해집니다. 번제가 생명 자체를 드리는 제사임에 대하여 소제는 자신의 노동의 결과를 드리는 제사입니다. 밀은 밭에서, 감람유는 언덕에서 재배해야 하고 이것을 추수하여 가루와 기름으로 만듭니다. 이 과정에는 않은 노동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소제는 결국 정성어린 노동의 결과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린데 이 정성된 제사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려면 지켜야 할 규례들이 있습니다. 만일 이 규례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제사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규례들이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서 어떠한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누룩이나 꿀을 넣어서는 안됩니다 누룩은 반죽된 밀가루를 부풀게 합니다. 순전한 가루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만 누룩이 들어갈 땐 그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다른 상태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누룩은 금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순전해야 합니다. 그 어떠한 가식도, 그 어떠한 외적 치장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된 그 모습 그대로를 원하시는 것입니 다. 신약 성경은 누룩의 역할을 교만한 위선과 죄악에 곧잘 비유합니다. 교만한 위선의 상징이었던 바리새인을 경계하라고 주님은 누룩을 상징으로 들어 “바리새인의 누룩을 삼가하라”(막 8:15)고 말씀하기도 했고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눅 12:1) 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누룩을 비유로 우리의 죄악을 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누룩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전 5:7).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산 제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심령에는 누룩이 없어야 됩니다. 교만과 위선, 자기 자랑, 부패된 죄들, 이 모든 것이 제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본문은 누룩 이외에 꿀도 넣지 말라고 합니다. 가나안에는 꿀이 풍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소제에는 금지되었습니다. “꿀을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 입니다(잠 25:16, 27). 꿀은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 배에서는 쓰게 되는 것입니다. 꿀의 이러한 성격은 우리의 육욕적 쾌락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육욕적 쾌락은 언뜻 보기엔 즐거운 것 같으나 그 실상은 영혼을 황폐케 합니다. 이는 마약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입을 대었지만 차츰 그 쾌락을 알고 나면 중독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는 동안 육신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은 망가지고 맙니다. 우리는 먹고 즐기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6:13에서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을 위하여 존재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에는 꿀을 제하여야 합니다. 모든 육적 쾌락에서 자유로와야 합니다. “저희가 감각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쫒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엡 4:19-23) 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누룩과 꿀을 제하십시요.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제사가 되길 바랍니다. 2. 소금을 쳐야 합니다 모든 소제물에는 소금이 첨가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첨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입니다. (1) 소금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언약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풍습 증에는 친구들이 음식을 같이 먹을 소금을 침으로 우의의 언약을 삼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에 있어서도 소금을 침으로 하나님과의 영원한 소금의 언약을 세웠습니다(민 18:19,역하 13:5, 711 2:13).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소금을 침으로 맺었던 언약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마음과 뜻과 정 성과 힘을 다해 섬긴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영원토록 교제하시겠다는 내용입니다. 소제 때마다 소금을 침으로써 이 계약을 기억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해 가는 것입니다. (2) 소금은 맛을 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소제물 자체는 싱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의 가치가 없습니다. 소제물에 소금을 친다는 것을 소제물의 맛을 내게 하여 하나님께 드리기 위함입니다. 싱거운 것, 맛이 없는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려 해도 맛이 없으면 안됩니다. 우리에게 소금의 맛이 나야 하 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5:13 )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의 소금으로써 어떤 맛을 내어야 합니까? 먼저 전도의 맛을 내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귀한 하나님의 복음을 이웃 사람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또한 봉사의 맛을 보여야 합니다. 될 수만 있다면 선한 일을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이러한 맛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니라”(막 5:13)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도 와 봉사로 기독교인의 맛을 내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소금은 모든 상하는 것들을 상하지 않게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청결을 유지하게 합니다. 비록 청결한 음식물이라고 해도 더운 지방에서 오래 그 청결을 유지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는 이 소금을 음식물이 부패하지 않도록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신선하고 청결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산 제물이 되어 나아가려 한다면 순전하고 성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순결과 성결이 한 순간이어서는 안됩니다. 계속 그것은 유지되어야 하고 증진되어져야 합니다. 소제물의 청결과 신선함의 유지를 위해 소금이 사용되었듯이 무리의 심령에도 이 소금이 뿌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소금 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기도입니다. 성령충만함과 기도가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로움을 입었다해도 그것이 계속 유지되기는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제사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누룩과 꿀을 삼가십시요. 그리고 소금을 여러분의 심령에 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기로운 냄새로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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