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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의 화목제 (레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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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소에 관한 화목제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목제가 행해진 목적이 하나님과의 친교를 이루고 자신의 영적인 풍성함을 누리며 그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때 본문은 소를 통하여 어떻게 이러한 목적을 이를 수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목제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우리 기독교인이 이루어야 할 목적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소의 화목제를 통해 어떻게 우리 기독교인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며 영적인 풍성함을 누리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1. 소의 화목제의 규례 소의 화목제를 드리는 규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소를 화목제를 드리려거든 흠 없는 소를 택하되 번제와는 달리 암컷이든 수컷이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흠 없는 것이면 됩니다. 선택된 소의 머리에 제사를 드리려 하는 자는 손을 없어야 합니다. 즉 소의 머리에 안수해야 하는 것 입니다. 안수의 규레를 마친 예물은 회막 문에서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려야 합니다. 그는 또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취하여 제사장은 그것들을 제산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살라야 합니다. 2. 소의 화목제가 갖는 영적 의미 (1) 제물은 흠 없어야 하되 암 수의 구별이 없습니다. 번제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표현이요 소제가 하나님에 대한 봉사의 표현이라면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화해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번제의 경우에는 소를 제물로 사용할 때, 반드시 수컷이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표현으로서의 번제는 성별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반드시 성별되어야만 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남성만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특별히 하나님께 사명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소를 화목제로 사용할 때는 암 수컷의 구별이 없음을 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화목, 곧 교제를 목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 존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 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름 3:9-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 2:24) 라고 성경은 우리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상실되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은 단지 몇몇 사람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2) 제물은 반드시 회막 문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제물은 죽기 위해서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위한 화목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드리는 사람이 짐승에게 안수하는 것도 이 제물의 죽음을 통해 제사 드리는 자의 죽음을 대신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제물이 죽기를 거절하고 자신을 생존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제사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제물을 죽이되 회막문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제물은 반드시 정해진 장소에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에겐 진정한 삶의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하나님을 근거로 해야만 생존의 의미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지요 나는 포도나무”라 했습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 있을 때 그 가지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떠 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주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화목 제물과 같이 회막문에서 죽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죽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교제란 불가능 합니다. 우리가 회막문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울의 말씀 속 에서 참다운 회막문에서의 죽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 더러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 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8) 사도 바울은 전에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을 영화롭게 하려는 제물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라는 회막문에서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옛 모습은 죽어야 합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회막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바울의 고백 을 성취하시면서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죽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3) 제물의 지방분은 불 태워져야 합니다. 지방분의 불 태워져야 하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에서 생각되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본문에 있는 지방분은 우리의 신체 내부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부위의 기름기이고 이 가장 중요한 것을 불 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부분을 드림은 모든 제사의 공통적인 의무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우리가 쓰고 남은 것을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우리의 최상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부위의 기름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물질일 수도, 재능일 수도, 시간의 봉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 형태가 어떠하건 중요한 것은 내 영혼 전체를 하나님께 불태우리라는 근본적인 마음입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의 기름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그것을 드립시다. 진정한 교제는 이렇게 자기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을 나누려는데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지방분은 타락된 우리의 욕정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불태움 은 우리의 타락된 욕정을 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교제는 개인의 욕심을 배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교제 중에 개인의 욕심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위선이요 거짓입니다. 개인의 욕정을 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5-6)고 성경은 우리에 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의 화목과 영적인 풍성함과 하나님께 감사 생활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화목제로 드리십시요. 그리스도께 나아가 여러분 자신을 죽여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기름기를 불 태우십오. 그럴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기로운 냄새로 맡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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