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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발람과 발락 (민 22: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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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 왕 발락 왕은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를 이용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 발람을 초청하여 많은 뇌물 공세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도록 부탁한 것입니다. 그러나 산 위에 선 발람의 입에서는 저주대신 축복의 노래가 흘러나왔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야곱을 해할 사슬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백성이 암사자 왕 같이 일어나리그러나 발락 왕은 인간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다른 언덕으로 데리고 갑니다. 발락이 가로되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끝만 보리니(민 23:13)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발람은 축복과 감사의 시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발람의 영과 발락의 영이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세력이요, 하나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1) 발락의 영은 남을 저주하도록 유혹합니다. 남을 깎아 내리고 남의 일은 안 되기를 바라고 남은 쓰러지고 자기는 잘 달려가기를 바랍니다. 손으로는 악수하면서 속으로는 저주하고 앞에서는 웃으면서 돌아서면 흥을 보고 입술로는 의젓하나 사실은 미워하는 것이 발락의 세력입니다. 그러나 발람의 마음씨는 정반대였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이 자기 민족이 아니지만 가나안 땅으로 갓 이민해 온 이 사람들의 고생이 행복한 열매를 맺고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세 번이나 거듭된 왕의 명령을 거슬려 축복의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그리스찬의 생활입니다. (2) 발락은 종교적인 인간이었으나 빗나간 신앙의 소유자이었습니다. 전쟁을 위하여 군대나 무기보다도 발람의 기도가 더 효과적이라고 믿어 군사훈련 대신 이 위기에 세 번이나 예배를 드린 것을 보면 무척 신앙심 이 깊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종교는 자기를 위한 종교였습니다. 자기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받으려는 신앙이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에 신의 뜻을 적용시키려는 신앙이었습니다.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졸라대는 대상으로만 하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축복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편을 들어 남을 저주하는 하나님으로만 보았습니다. 그런 종교는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고 자기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임금의 권위 앞에서도, “무슨 요구나 들어주겠다”는 선심공세 앞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에 놓았습니다. 18절에 “임금이 내 집에 금과 은을 가득 채워 주실지라도 제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참 신앙입니다. (3) 발락의 영은 우리에게 전체를 보이지 않고 일부분만 보게 합니다. 부분적으로만 아는 것이 남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일생을 불평으로 메우 는 비결이라는 것을 사단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창조자시요 역사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은 멀리 보고 넓게 보고 전체를 보는 노력입니다. 이런 “하나님 신앙”을 가질 때 비로소 “감사”가 가능해집니다. “작은 떨 몇 개가 얼마 동안 구름에 가리워 당장 안 보인다고 슬퍼하지 마시라. 모든 별은 여전히 하늘에 있고 내일 새벽에는 큰 태양도 빛을 발할 것이 아닙니까?” “나를 괴롭히는 한 사람이 있다고 인생을 저주하지 마시라 나를 도와주고 길러주고 위로하고 사랑해 준 그 많은 사람들은 어째서 생각하지 않습니까? “몸의 한 부분이 아프다고 불평하지 말아다오 신기한 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많지 않습니까?” “역사의 썩은 반면이나 불의한 현실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의로운 하나님은 여전히 시간의 주인임을 어째서 확신하지 않습니까?” 억울한 사건을 당할 때, 고독한 환경에 처할 때, 일이 뒤틀릴 때,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산에라도 올라가 혼자 고함을 지르고 싶을 때, 만사가 귀찮을 때, 저주의 물결이 용광로처럼 부글거릴 때 모름지기 그대의 시야는 사탄의 계획대로 인생과 세계의 일부분만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눈을 들 어 감사함으로 나의 인생 전체를 보십시다. 가슴을 펴고 축복하는 마음으로 역사를 넓게 보십시다. 간교한 발락 왕이 처음에 발람을 데리고 간 언덕은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분만 보이는 장소였습니다. 그 뒤에 인도한 언덕은 더 작은 부분만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부분적으로 보면 오해를 낳고 한쪽 귀만 보면 저주의 씨가 됩니다. 대부분의 질투는 부분만을 본 결과이고, 많은 악평은 빙산의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신앙”은 나를 객관화하고 전체를 하나의 조화 속에서 보게 합니다. 이때 저절로 감사의 찬송과 축복의 노래가 샘솟게 되는 것입니다. 발람은 밤새도록 고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 귀한 손님이 무사히 온 것을 환영하여 모압의 신들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발람은 이 제사의 잔치자리에 초대받아 환대받았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놓지 않기 위해 그 다음날 아침 발락은 발람을 그의 병기에 태우고 그 나라의 산당으로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이스라엘 진영이 잘 보였습니다. 이 이스라엘 의 진영은 이제 그가 독기를 머금은 저주의 화살을 쏘아대어야 하는 곳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자였으나 이렇게 많은 유혹이 따랐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날마다 뜻을 생각하시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모든 유혹은 근원부터 뿌리 뽑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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