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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쟁의 시작 (신 02: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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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첫 승리의 결과 요단 동편의 지역(모압과 암몬은 제외)은 군사기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처음 정복한 왕국은 헤스본에 있는 아모리 족 시혼의 왕국이었습니다. 아모리 족은 원래 서북 메소포타미아와 북 수리아에서 온 민족입니다. 그들은 주전 2천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틴을 유린하였으며 아브라함이 오기 이전에 이미 팔레스틴 지역에 정착한 민족이었습니다. 민 21장에 의하면 시혼 왕국은 모압 왕으로부터 탈취한 지역에서 이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혼 왕국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점령 즈음에 발생한 왕국입니다. 모세가 시혼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평화협상을 제의한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모세의 목적지는 오직 요단 서편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혼의 땅을 통과하도록 허락하여 달라고 제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혼 왕의 거절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불가불 요새를 포위하고 점령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명기는 그 때 일을 회고하면서 시혼의 거절은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했습니다. 2:30에 “하나님께서 그 성품을 완강케 하셨고 그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구약 성서는 악한 생각과 악한 태도를 사탄의 생각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하기보다 하나님의 선동탓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뜻대로 그의 행로를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그들이 정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역사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에게 헤스본 땅 시혼의 땅을 점령하라고 위탁하십니다(24-25절). 그리고 적들과 싸울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에 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시작하라 그러면 나는 너희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출 15:14에도 하나님은 이같이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나라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셨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혼과 더불어 싸우라고 모세가 지시함은 시혼을 무시해서도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대로 한 것입니다. 32절에 “시혼이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야하스에서 싸울 때”라고 했습니다. 시혼은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기 위하여 그의 성품을 완강히 하셨고 평화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다투는 자들은 곧 자기들 자신의 상처를 해치는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당신의 원수를 멸하시되 원수들 자신의 결단으로 멸망케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했습니다(33-34절). 그들은 모든 아모리 사람을, 즉 남자, 여자, 어린 아이들을 모두 칼로 진멸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진노의 집행자들과 같이 이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이 아모리 족속들의 죄악들의 죄악이 가득 찼음으로(창 15:16) 죄의 관영이 오래면 오래일수록 마침내 그 심판의 혹독함도 더 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원수로서 죽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정의의 희생제물로 죽은 것입니다. 희생제물을 드림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나라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경지도. 집도 없었고 광야에서 태어났다가 광야에서 사는 민족이기에 성읍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돌연히 그들은 이렇게 잘 건설되었고 잘 경작된 나라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것이 그들의 오랫동안 기다렸던 대망의 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훨씬 큰 보상에 비하여 극히 작은 징조에 불과했습니다. 거룩한 영혼들이 이 세상의 광야를 떠나 “더 아름다운 나라 즉 하늘나라인 모든 시설을 갖춘 그 도성으로 가게 될 때 그들이 체험하는 그 변화의 기쁨은 훨씬 더 큰 것이 될 것입니다. 시혼은 자기의 요새 안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도 자만해서 들판에까지 나왔다가 그 곳에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패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원주민을 무찌른 첫번째 승리이며 이스라엘은 야웨가 적군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다고 보았습니다. 야웨는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지도자입니다. 이스라엘은 시혼에게 속한 모든 성읍과 가축과 인명까지도 전멸하였으니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완전히 승리함은 거룩한 전쟁에 있어서 “해렘”의 원칙을 적용시킨 것입니다. “헤렘”이란 상대편 신에게 속한 것을 무조건 뿌리채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야웨의 주권과 유일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새 시대는 새 인물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38년간을 광야에서 방황한 후에 가나안으로 건너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 세대들 뿐이었습니다. 이제 거룩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기업을 낡은 세대들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새 세대들에게 맡기고자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계나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기성세대를 바라볼 때는 한심스럽고 암담해도 그래도 이 땅 위에 이처럼 자라고 있는 새싹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오히려 소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교계나 정계를 막론하고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이제는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와야하며 또 새로운 종들이 일어나야만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사람은 피상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롬 12:2의 말씀대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받은 사람”입니다. 엡 4:22-24에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자”가 곧 새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새 사람에게 본문은 세렛 시내를 건너서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 돌파하라고 했습니다. 새 사람에게는 이렇게 새로운 사명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르논 골짜기를 돌파했다는 것은 불의의 세력권을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불의한 생각을 마음에 품고 불의한 행위를 되풀이 하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새 사람이 되어질 수 없으며 따라서 새 시대에 합당한 인물이 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날의 우리 사회의 고질은 불의가 의를 대신하고, 악이 선을 대신하며, 불법이 공범을 대신하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새 사람을 말함에 있어서 먼저 선행 조건으로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과연 도리에 합당한 말인 줄 압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이 아르논 골짜기를 벗어난 것처럼 이와 같은 불의한 생활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모두 육체를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육체적인 욕망을 벗어버리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성경은 단호히 육체의 소욕을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신 2:29에 “내가 요단을 건너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광야 생활의 종지부를 찍는 요단강은 신령한 의미에서 구원의 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대중이 이 강을 기적적으로 건넜고, 엘리사가 이 강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넜으며,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된 확증을 얻으신 곳이 바로 이 강이었던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이것이 택한 백성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요구요 명령이었습니다. 새 시대의 주인공은 모름지기 신령한 강 요단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거룩한 자리에 이른 성결의 인물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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