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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 2계명 예배의 올바른 방법 (신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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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계명은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해 강조한 것이요. 제 2계명은 하나님의 영성에 대해 강조한 것으로써 이미 위에서 4:15-40절에서 다룬 바가 있습니다. 우상 숭배는 결코 옛날에만 있었던 문제는 아닙니다.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보다 못한 어떤 것을 숭배하려는 유혹이 언제나 우리를 따릅니다. 어떤 조각으로 우상 섬기는 것도 있지만 황금의 신, 성(性)의 신, 국가라는 신 등 여러 신들이 우리의 마음을 교묘히 묶어놓을 뿐 아니라 우리를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멸망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오직 참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9절)이라고 여기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질투라는 단어는 “시기”를 뜻하지 않고 “하나님은 무엇과도 견주될 수 없는 분이심을 뜻합니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그의 영광을 나누려하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곧 꺾이고 말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그의 권한이 침해받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질투는 하나님의 본성이요 유일신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것입니다. 제 1계명은 하나님의 인격성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지만 제 2계명은 영이신 하나님이 그 신령함을 우리에게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금하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이나 아무 형상에든지 예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상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신하여 예배의 행위를 드리는 대상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는 우상입니다. 천주교회의 마리아상, 성자 상 경배는 우상입니다. 조상 숭배한다 하고 음식차리고 절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제사상 차리고 제사 드리는 것이 하나님 외 다른 것을 섬기는 예배행위이기 때문에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국기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어 경례하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절하며 경례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그러나 조각들이 조각하는 것은 예술이기 때문에 일반 조각품은 우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모두에게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챤에게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엡 4:13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갈 4:19에는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내가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 인사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진이 나 상을 장식하고, 거기에 인사한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 습니다 예배시마다 하나님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찬미, 기도, 헌금, 모든 순서를 다 열납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어떤 상을 모시고 절을 하면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역대 이스라엘 왕들은 우상을 섬기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감각적인 것을 좋아했습니다. 신경하게 하나님을 만나기보다는 감각적이고 말초적이고 가깝게 느끼기를 좋아했습니다. 신령하게 하나님을 만나기보다는 우상을 섬김으로 만나려 했습니다. 결국 그들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시사 때에 따라 이스라엘에게 징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경배를 가르치시기 위해 말씀과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예배당 안에 예수님의 사진을 걸어 놓는 것도 삼가해야 합니다. 교회 안 강단의 뒤에 십자가를 걸어 놓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나무 십자가는, 상징 뿐이지 그 십자가에 절하거나 예배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오직 신령으로만 예배에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하 나님의 사랑에 상처를 줍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질투라는 말은 “나의 영광은 결코 빼앗기지 아니한다”는 강한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절대로 용납되지 아니 합니다. 왓슨은 이 말씀을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1) 좋은 뜻으로 자기 백성을 위하는 질투입니다. 슥 1:14에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혼을 위하여 크게 질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62:4에 자기 백성을 “헵시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대신할 수는 없으나 굳이 해석한다면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라는 뜻입니다. 슥 2:8에 “눈동자같이 사랑하여 신랑이 신부를 사랑한 것 같이 내가 너를 사랑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헵시바”의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내 기쁨이란 너 외에 전혀 없다 너야말로 온전히 나의 기쁨이다 내가 다른 곳에 가서는 나의 만족을 구하지 않겠다 너야말로 내 기쁨의 대상이요 내 만족의 근거이다” 라고 하나님께서 바로 나를 “헵시바”라고 불렀습니다. (2) 나쁜 의미로 자기 백성 때문에 발하는 질투입니다. 이는 자기 백성들이 거짓 신을 섬기거나 참 하나님을 그릇되게 섬길까보아 하시는 질투입니다. 부부관계도 사랑이 떠날 때 질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을 대신할 것은 없습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만납시다. 하나님 앞에 드릴 가장 귀한 것은 사랑뿐입니다. 그래서 첫째되는 계명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모두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함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질투는 모욕당한 주권과 사랑에 대한 아픔입니다. 그 놀라우신 사랑이 제 2계명 안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고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 하시며, 하나님을 배반할 때에는 질투하시며 무리를 벌하십니 다 여기 본문에서 “나를 미워하는 자는 3, 4대까지” 벌하시겠다고 했습니다. 3, 4대까지 벌하시겠다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어도 반면에 하나님은 자기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수천 대까지 축복을 베푸신다고 약속했습니다. (1) 우리 삶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심판 날에 책임을 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순간들이 그냥 있다가 없어지고 파멸되고 부셔져 버리는 순간이 아니라 이 모든 순간이 우리 하나님의 영원하신 그 영원의 한 지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순간은 영원에 대한 분기점입니다. 영원의 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장중에 영원히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멸되고 그냥 책임없이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살았던 지난 날을 다 고백할 때가 올 것입니다. 히 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삶에 얼마나 무거운 책임이 있는가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냥 함부로 살 수 없는 순간입니다. (2)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의 삶이 내 행복과 불행 뿐만 아니라 내 후손의 행복과 불행과도 관계가 있는 책임을 지워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그 후손의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불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3, 4대까지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부모를 보고 후손을 축복해 준 사건들이 많습니다. 애굽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은 나라 없이 2,000년을 방황했으나 그 민족은 멸하지 않고 다시 재건했던 것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계명대로 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위대한 약속 “내가 천대까지 네 자손을 축복하겠다” 이 약속이 지금까지 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계명 앞에 순종하는 것을 기억하십니다. 천대까지 그 후손을 축복하십니다. 오늘의 우리 삶이 내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녀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제 2계명이 위대한 약속이 우길 삶에서 구체적으로 복스럽게 여러분과 가정과 자녀들에게 나타나기를 주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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