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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의 증진 (신 1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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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만인의 소원입니다. 16세기 불란서의 철학자 몽테뉴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고 말하였으며, 고대 헬라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뷰세는 “저 산 넘어 멀리 행복이 있다기에 찾아가 보았으나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네”하고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곧 물질, 권세, 지식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세상적이요 유한이요 변태적이기 때문에 눈물만 머금케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셔서 하나님의 규례대로 살면 참 행복할 것을 약속하시며 하나님의 명령에 사는 하나님의 동행자에게는 행복이 늘 따라 오는 것입니다. 1. 행복의 조건 (1) 사랑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인간은 사랑으로 태어나고 사랑으로 삽니다. 사랑은 인생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샤미소는 “사랑은 행복이고 행복은 곧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어느 곳도 고비 사막과 같고 시베리야와 같습니다. 사랑에는 육신의 에로스 사랑, 동적애의 스톨게 사랑, 지식의 사랑인 필리아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 사랑보다 하나님은 아가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끝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해 주시고 우리 행복을 위하여 613계명을 주셨는데 긍정적 계명이 248가지, 부정적 계명은 365가지입니다. 이것을 함축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1-4계명),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5-10계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은 곧 사랑을 시행하는 것이요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2) 희망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조건하에 있다하여도 희망이 없고 꿈이 없으면 불행합니다. 희망과 꿈은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떤 철학, 과학, 교육, 정치, 경제에서 정말 보장된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 가변적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요, 부활이요,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큰 빛이시오, 사막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치료의 광선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와 내 가정과 우리 민족의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입니다. 여기에 참 소망, 참 행복이 있습니다. (3)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참 행복합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어떤 외부적인 좋은 조건에도 불행하기 마련입니다. 현대인들의 대다수가 과거보다 좋은 조건에 살면서도 마음에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불안은 급변적인 환경에서 옵니다. 더 무서운 불안은 죄책감에서 옵니다. 죄 지은 사람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합니다. 누가 큰소리만 쳐도, 누가 찾아와도, 마음이 철렁합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사 57:21에 악인에게는 평화가 없다고 했습니다. 참 평안은 사죄의 은총에서 옵니다. 사죄의 은총은 회개하는 자가 받습니다. 이런 사죄의 은총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려주었습니다. 회개한 자에게 성령께서 평강과 기쁨의 생수를 마시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함이 인간의 행복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전 12:13에 “밀의 결국을 들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본분을 다할 때 행복합니다. 자기 본분을 다하지 못함이 불행입니다. 제가 아는 아주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할아버지께서 교회에 찾아와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감사해서 찾아가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 인도로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말하기를 “누구 인도로 교회 나온 것이 아니고 자진해서 나왔는데 앞으로 교인이 되겠습니다. 집에 기르는 하찮은 개도 주인이 들어오면 꼬리를 흔들어 반겨 맞이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분명히 우리에게도 주인이 계실 것이고 만물을 주장하는 주인이 계실 터인데 나는 지금까지 주인을 찾지 못했다가 이제 주인을 찾았으니 그 주인을 경배하기 위해 교회를 찾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 분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이십니다. 경외한다 함은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2) 모든 도를 다 행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불행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지 아니했다면 불행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간에게는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은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의지대로 살아갈 때는 곧 불행인 것입니다. 3.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도를 다 지킬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12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출 20:5-6에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많이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족함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해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하나님의 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사 독생자까지 주셨습니다. 롬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친구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부모 사랑보다 더 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즐깁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합니다. (2) 마음의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16절).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백성된 표로 몸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는 양피를 베는 것입니다. 창 17:11에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너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고 했습니다. 할례의 신약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곧 세례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 씻음 받는 것입니다. 롬 2:28에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니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할례는 죄악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회개하고 악을 끊어버리는 일입니다.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의 도를 이루시는 길입니다. (3) 나그네 대접을 잘 할 것입니다(19절). 마 7:12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나그네 대접을 잘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나그네란 외로운 자, 고달픈 자, 본향을 찾는 자요, 마음 둘 곳을 찾는 자를 말합니다. 나그네 대접을 잘하시면 기도 응답이 잘되고 신앙이 장성하고 지식이 증진되고 좋은 친구를 얻고 귀인을 만나게 되고 마음이 즐겁고 하늘나라에서 보상이 큽니다. 아브라함은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하고 소돔 성의 멸망의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를 대접하여 흉년에도 굶지 않았습니다. (4) 신실해야 합니다(20절). 하나님은 진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두려워하고 신실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시고 그의 생사가 다 진리를 나타냄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시오, 성령이 진리의 영이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기대하십니까? 신실하십시오. 예수님과 닮기 원하십니까? 신실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십니까? 신실해야 합니다. 신실은 신앙의 본질이요, 성도의 본질이요, 일군의 요건입니다. 축복의 기초가 신실이요 인생의 본토가 신실입니다. 행복의 첩경이 신실입니다. 시 24:3-4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 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5)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행복케 하시는 목적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계속할 때 그 때 우리에게는 참 행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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