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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인품 (신 3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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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신?구약 성경 중에서 위대한 인물에 속합니다. 그의 120년의 생애에서 처음 40년간은 애굽에서 학술을 닦았고, 다음 40년간은 광야에서 신앙을 체험했고, 마지막 40년간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의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생의 종점이 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한 채 가나안 건너편 느보산 상에서 약속의 땅을 보기만 하고 죽은 것은 큰 비극이었습니다. 혹은 비극 이상으로 우리가 간단하게 논할 수 없는 신비였습니다. 유다서 9절에는 천사장 미가엘이 사단과 더불어 “모세에 시체에 대하여 논쟁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왜 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덤에 묻힌지 여러 세기 후에 모세는 변화산 상에서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육체적 형상으로 나타나 사귀었는데 이 장면에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던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마 17:2-3). 이것은 곧 죽지 않음과 부활과 하나님의 용서와 미래의 영광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지상생활을 끝마치는 순간까지도 몸과 정신의 기력이 왕성하였습니다. 7절에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세였으나 그이 눈도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도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위하여 모압 평지에 30일 동안 애곡하였다(8절)는 것은 의심없는 일입니다. 가나안을 점령하였는데 이때야말로 지도자가 가장 필요한 때에 그들의 위대한 영도자가 잠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힘으로 국민의 생활의 창설과 조직과 안전이 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번번히 그를 번역하고 불순종하였으며 그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모세의 위대함가 그의 인내와 그의 능력을 인식하였는데 그를 잃게 되었으니 얼마나 원통합니까? 이제 모세가 느보산에서 마지막으로 그가 생각했던 것, 대망했던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 이스라엘의 구원을 대망했습니다 십계명과 율법의 선포로 모세는 이스라엘의 구원의 소원을 보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40년간 광야를 배회할 때 모세의 노력은 오직 이스라엘의 구원이었습니다. 느보산 상에서 그렇게 원하던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지 못한 채 먼저 죽어가는 모세의 심정은 착찹했을 것입니다. 그는 최후의 힘을 모아 이스라엘의 구원을 대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구원을 받은 자는 반드시 자기 민족의 구원을 대망할 것입니다. 2. 율법의 완성을 대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대망한 모세는 그 구원의 방법으로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부여자인 자신은 이제 느보산에서 죽으면서 율법의 완성을 대망한 것입니다. (1) 율법은 첫째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일시적인 것으로 주셨습니다. (2) 그동안 율법은 그 불완전성을 입증하려는 것이었습니다. (3) 그러나 율법은 실패했습니다. 저들은 율법을 버림으로써 유대인은 바벨론의 포로로 모두 끌려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약은 율법이 부여된 것에 시작하여 율법이 실패한 것으로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함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느보산에서 멀리 가나안을 바라보고 있는 모세에게 있어 자신이 받아 전한 율법의 종국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율법이 완성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것을 대망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든가, 율법의 완성 같은 것은 보다 뒷날의 문제였습니다만 이제 곧 실현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모세가 죽고 그 애곡하는 한 달이 경과한 후에 여호수아를 통해 실현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구원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우리들의 구원의 과정을 말해 주는 좋은 그림자가 됩니다. 애굽은 불신앙의 세계를, 출애굽은 불신을 떠나 입신하는 것을, 홍해를 건넘은 세례를, 광야 40년은 현세에서의 교회생활을,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구원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생활에는 기복이 심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영도하에 가나안을 정복하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요했습니다. 그 후 사사시대에는 주위의 민족들로부터 계속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윗, 솔로몬시대에 가서 그들은 극성기를 누렸고 서편은 나일강, 동편은 유프라데스강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부터 나라는 남북으로 분국되고 드디어는 BC 586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후 그 때부터 약 2, 500년간 이스라엘은 완전히 독립을 얻지 못했습니다. AD 1948년에 이스라엘은 독립은 하였으나 주위 아랍제국의 반발로 그 국가가 안정되지 못한 중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흔들리는 이스라엘의 가나안정착은 바로 그들의 구원의 불안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지금 느보산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가까운 가나안 정착을 바라보면서 나아가 영원한 정착을 대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안수하여 이스라엘의 영도권을 넘겨준 것입니다. 이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그 영도권을 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장례하였으나 그 사업은 계속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지도자는 9절에 “모세가 안수함으로 지혜의 신이 충만하였으며 주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지혜있고 용감한 영도자로서 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점령한 땅을 방위하며 각 지파에게 할당하였습니다. 상징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모세가 가나안 땅 밖에서 죽어야 했다는 것은 선한 하나님의 경륜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왔으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하였으니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였고 예수라는 뜻을 가진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을 약속된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기사로서의 끝맺는 다음 말 속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아니하였으니 그는 주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그는 자기의 후계자인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 여호수아보다 훨씬 거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위대한 힘은 군인이나 입법자의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밀접한 교제와 친교를 맺었었으며 하나님이 그를 “대면하여”아시는 바 되었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런 친교의 결과로서 그는 자기 백성을 구출하기 위하여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할 능력을 받았으며 “이스라엘 목전에서 능력있고 놀라운 행사”를 수행할 권위를 받았습니다. 모세가 주의 말씀을 듣고 예언한 그 분이 올 때까지 “모세와 같은”선지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 18:18에 “내가 너와 같은 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입에 내 말을 두어 명령한대로 모든 것을 말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선지자는 베드로가 증언한대로 우리를 축복하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행 3:22-26). 우리는 “그를 듣고”그의 사업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길 때에 비로소 신명기를 옳게 공부했다고 할 수 있으니 이 신명기는 “아름다운 왕을 바라보게 될”, “멀고 먼 땅”을 향하여 순종과 신뢰를 가지고 나아가는 자를 가르치기 위한 진실된 교과서입니다. 모세는 임종 후 여러 세기가 지나서 그보다 더 큰 출애굽이 발생한 후에 (눅 9:31)도 다른 성서 기자는 히 3:5에 “모세는……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종으로서 충성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실하였습니다. 모세의 역사 기록은 그를 모압 평지에 장사 지낸 채 버려두며 그의 통치 기간도 그것으로 종언을 고하게 하지만, 우리 구주의 역사는 그를 “높은 보좌의 우편에”앉아 계시도록 하여서 “그의 다스림과 평강에는 끝이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이 신앙에 순종하고 신실하며 변치 않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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