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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라합의 구원과 축복 (수 0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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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이 그 정탐군들을 지붕 위에서 말리려고 넣어 놓은 삼대 밑에 숨김으로써 그들을 보호해 주려고 한 결심은 그의 자기 보존을 위한 대책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공격해 들어올 경우 그들의 승리는 확실한 것이니 그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았던 것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가장 높으신 분이라는 고백을 하였는데(11절), 그 고백은 아마 신명기 저자의 신앙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신 4:39), 공포가 이스라엘의 적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것은 또한 신명기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라합은 가족을 구원시킬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이 되는 참으로 이방 여인 중 더우기 천한 기생의 신분으로 영광스러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 두 정탐군을 영접했습니다 여리고 성이 함락될 때 기생 라합이 구원받은 것은 첫째로 두 정탐군을 영접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라합이 두 정탐군을 영접하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그들과 함께 멸망받았을 것입니다. (1) 여리고 성의 새 왕으로 영접했습니다. 여리고 성 왕은 두 정탐군을 잡아 내라고 명령하였으나, 기생 라합은 왕의 명령을 거절하고 두 정탐군을 숨겼습니다. 여리고 성의 왕은 현재의 왕이 아니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이 여리고 성을 다스리게 됨을 믿고 여호수아가 파송한 두 정탐군을 새 왕의 명령을 받들어 숨긴 것입니다. 주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자이다”고 했습니다. 정탐군을 영접한 라합은 하나님을 영접한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2) 생명의 주로 영접했습니다. 어명을 거역하면 사형입니다. 라합이 두 정탐군을 숨기는 것은 자기 목숨을 내놓은 행동이었습니다. 라합은 두 정탐군만 잘 살려주면 반드시 자기 가족을 살 것을 믿었으니 그는 대속의 진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13절에 “청하노니 내가 너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이 때 정탐군들은 대답하기를 14절에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고 하였으니 이들의 계약은 생명의 언약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라합은 두 사람의 생명을 구해 주었으니 이제 두 정탐군은 라합의 가족을 구해야 한다는 진실한 언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3) 선지자로서 영접하였습니다. 라합은 두 정탐군을 자기집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8절에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고 하였으니 라합은 두 정탐군을 선지자로 영접한 것입니다. 라합은 겉으로 보기에는 술과 노래와 웃음으로 남자들을 희롱하는 기생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실은 그 여자는 선지자의 선견을 가진 여 선지자였습니다. 그러기에 나그네로 숨어 들어온 이스라엘 정탐을 선지자로 알아보고 그들을 남달리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숨기고 피난시킨 것입니다. 2. 구원의 기회를 잘 포착했습니다 여리고 성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에게 찾아온 구원의 기회를 상실하고 모두 멸망 당했으나 기생 라합은 자기에게 찾아온 구원의 기회를 잘 포착하고 놓치지 않았습니다. 사 55:6에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에 그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을 때 구원의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1) 구원은 심령이 어두운 자는 자기에게 찾아온 구원의 기회를 육의 소욕으로 바꾸는 과오를 범하기 쉬우나 심령이 밝은 사람은 자기 영혼을 구원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라합은 두 정탐군을 영접하는 것이 자기로서는 구원의 최선의 기회인 것을 알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심판시 모든 성 안 사람은 심령의 눈이 어두어 망했으나 영의 눈이 밝은 롯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말세 심판시 영안이 밝은 자만이 살아 남을 것입니다. (2) 새로운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여리고 성의 멸망을 앞두고 잠시 영화를 누릴 것인가? 아니면 두 정탐을 숨기면서 생명을 내놓는 모험을 하더라도 구원을 받아야 하느냐? 이 기점에서 라합은 비록 여성이긴 하지만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죽음의 각오를 하더라도 두 정탐을 살리는 것이 곧 자기에게는 사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에게는 그것을 결정하는 결단의 용기가 있었습니다. 3. 구원의 보증을 받았습니다 라합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후 구원의 보증을 요구했습니다. 13절에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고 하였습니다. (1) 붉은 줄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모형입니다. 봉크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생명 구속 결정케 함에 관하여 이스라엘을 가르침에 있어서 사용한 빛이 붉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에 문설주의 양의 피는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의 보혈의 예표입니다. 이 중요한 구속의 피는 이스라엘 구원 역사에 계속 흐려지지 않고 계승하여 왔습니다. 라합은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두 정탐군이 말한대로 행한 것은 그들의 말이 진실한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 언약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 붉은 줄은 두 증언과 라합이 서로 서약하고 맹세한 후에 주어진 증거물입니다. 라합은 두 사람을 비밀히 숨겼다가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 내리우고 빨리 산으로 피신시켜 3일을 숨었다가 그를 쫓던 자들이 다 돌아간 후에 너희 갈 길을 가라고 하였습니다. 라합은 두 사람이 이른 말대로 즉시 그들을 달아내린 그 창에 붉은 줄을 달아냈으니 이 붉은 줄은 두 정탐군과 라합의 굳은 언약의 증거물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언약의 상징인 것입니다. (3) 라합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두 사람을 숨겨준 비밀을 아무에게도 누설치 말아야 한다는 서약이 있은 후에 서로 맹세하고 증거물을 주었으니 붉은 줄은 라합에게 구원의 보증이 되는 기쁨이기는 하나 그것은 라합만이 아는 비밀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라합의 집 창가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붉은 줄이 창가에 매달려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으나 그것을 여리고 성의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기는 하지만 아무도 그 붉은 줄의 의미를 모릅니다. 아무도 그 뜻을 모르고 보고 지나기만 합니다. 그것은 라합만이 아는 구원의 비밀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었던 하나님의 비밀인데 예수 영접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아나 이방인들에게는 무의미합니다. 고전 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 당하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회를 소홀히하고 육신적인 일에 분주하고 무관심 때문에 버림을 당합니다. 이 비밀은 받은 자 밖에 모르는 비밀입니다. 4. 구원의 확증을 얻었습니다 라합이 정탐군을 보호해 준 대신 이제 곧 있을 정복시에 라합과 그 가족의 생명을 보호해 주겠다는 표로써 정탐군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약 하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흔히 신 혹은 여러 신들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아모스가 사마리아의 신 아시마와 단과 브엘세바의 신당으로 맹세하는 자들을 정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맹세에는 상징적인 행동이 수반되었습니다. 즉 하늘을 향해 손을 들거나 어떤 성스런 혹은 강한 것을 붙잡거나, 때로는 제물의 중간을 쪼개어 놓고 그 사이로 계약 당사자들이 지나가는 등의 상징적인 의식이 수반되었습니다. 구약 성서에서 맹세할 때 흔히 사용된 상투어는 “만일 네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서약자는 만일 그가 맹세한 것을 범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심한 벌을 받아도 좋다는 자신을 갖습니다. 정탐군들은 만일 라합이 그 약속을 지킨다면 “그와 그 가족을 인자하게 대우하리라”고 맹세하였습니다. 이제 약속은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라합은 자기 가족을 다 붉은 줄을 창에 내린 라합의 집에 모았습니다. 만일 이 때 누구든지 붉은 줄이 있는 그 집 밖으로 나가면 구원이 없습니다(19절). 반드시 그 집안에 있어야 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월절 양의 피, 라합 집의 붉은 줄은 모두 그리스도의 보혈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받은 자는 반드시 그 피 안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그 피로 죄에서 구속함을 받았다 하나 그 피 밖으로 나가는 자는 구원이 성취되지 못함을 뜻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여리고 성과 같은 장망성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세에 사는 자로서 라합의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집 창가에 십자가의 붉은 피를 매달고 재림주 예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도하면서 그 날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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