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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리고 정복의 비결 (수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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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족속들이 모세의 영도하에 애굽을 떠나온지도 4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영도권을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넘겨주고는 비스가산에 올라가 허락의 땅 가나안 복지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세로부터 영도권을 물려받은 여호수아는 요단강 동편에서 전 날에 자신이 모세의 명을 받고 가나안 땅을 정찰하러 갔던 것처럼 이제는 가나안 전역이 아니고 요단강을 건넌 다음 제일 먼저 공략하여야 할 여리고 성을 정탐할 사람을 보내어 실정을 파악하고서는 이스라엘 진을 정비한 후에 제사장들로 법궤를 메고 앞서게 하고 백성들은 얼마의 거리를 두고 법궤의 향방을 바라보면서 따라가게 했습니다. 이것은 언약의 땅에서 맞는 최초의 시험일 뿐 아니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서의 이스라엘 영도자가 되어 맞부딪친 최대의 난관이기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인가? 하나님은 모세에게 함께 하시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하실 것인가? 하는 의문에 명쾌하게 해답을 내린 사건이 바로 여리고 정복의 대역사입니다. 여리고 성은 굳게 닫혔고 난공불락의 요새로 공격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기술적인 면이나 자연적인 면에서 강력한 요새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 하는 이런 의문은 자연스런 것이지만 여하튼 여리고는 이스라엘에게 포위된지 이레만에 그 기초마저 깡그리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경험한 또하나의 이적이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것은 또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기도 합니다. 1. 여리고 성 정복의 중요한 능력은 믿음의 역사였습니다 믿음 장 히브리서의 11:30에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며 성이 무너졌으며” 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여리고 정복의 기적은 믿음의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한 합 2:4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은 말틴 루터의 영혼에 불을 질러 중세 카톨릭의 권세에 저항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마침내 종교개혁의 찬란한 금자탑을 쌓게 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일입니다. 존 캘빈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만이 우리를 주 앞에 서게 하고 믿음만이 주께서 우리를 용납하시는 유일한 근거가 됩니다. 요 3:16의 말씀대로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되는 사닥다리가 바로 예수 믿는 믿음이라는 진리를 깨닫는다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목사는 말하기를 “우리 주님을 너무 덜 믿어서 걱정이긴 해도 너무 잘 믿어 걱정될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칼라일은 말하기를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는 민족은 위대한 신앙을 가진 민족이다”고 했습니다만 이스라엘 민족은 믿음으로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였습니다. 독일의 카이젤 황제가 그의 시종에게 하나님이 계신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독실한 신자였던 그 시종은 대답하기를 “폐하여 저 유태인입니다” 한 것 같이 히브리 민족은 그들의 종교 곧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이 지구상에 영원불멸의 한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톨스토이는 “신앙은 생명의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2. 인내와 복종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군대장관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복종하여 그의 지시대로 행하였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은 여호수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책임으로 알고 걱정하던 것이 하나님의 책임하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홀가분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함락하는 방법이 인간의 이성으로 생각해 불 때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한 번씩 성읍을 돌며 엿새를 돌고 이레되는 날에는 일곱 번 돌아라”는 것입니다. 그같은 방법으로 어찌 난공불락의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복종하고 실천하였습니다. 믿음이 위대한 힘인 것처럼 순종도 위대한 힘인 것입니다. 복종과 인내없는 신앙은 그 실효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무능한 자의 최대 능력은 복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무능한 자로 알고 오직 주의 말씀에 복종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적은 일어납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 이어로 장정 5,000명을 먹이고도 나머지 부스러기가 열 두 광주리에 차고 넘친 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의 복종이 있을 때였습니다. 가나안 혼인잔치 자리에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적도 예수님의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가득히 채우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채워서 그 물을 길어 갖다 주었더니 그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이 아닙니까? 여기에는 하인들의 복종이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 자기 인격을 비울 때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실 수가 있습니다. 신앙과 복종은 인내를 수반합니다. 여리고 성은 일주일 동안 도합 13번의 회전의 고행을 치룬 후에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니 무너졌습니다. 대사업은 인내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내야말로 귀중한 덕입니다. 마음의 밭에 인내를 심으면 그 뿌리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이레 동안 돌았던 인내를 우리는 배웁시다. 그리하면 우리 앞에 여리고 성처럼 가로 놓인 장애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지는 이적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질서있는 행진입니다 접전 전야가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문을 전해 들은 여리고 성은 굳게 받혀 있고 출입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다”는 것입니다. 싸움은 이기는 것이요 결과는 이미 알려진 것입니다. 그들이 매일 성을 돌 때 매일 질서있는 행진을 하였습니다. 맨 앞에 무장한 군인들이 서고 그 다음에 일곱 제사장이 양각 나팔을 불며 행진하고 그 뒤에 법궤가 따르며 언약궤 뒤는 후군이 따르고 백성들은 그 뒤를 줄지어 따랐습니다. 이 행진의 순서는 첫 날에도, 둘째 날에도 일곱째 날까지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맨 앞서가는 무장 군인은 선봉군으로 행진 전체를 인도하여 보호하는 역활을 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고 그 바로 뒤에 또 후군이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궤를 앞세우고 뒤따르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질서 정연하게 행군하되 그 대오가 흐트러짐이 없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행군을 하였던 것입니다. 질서는 친국의 제일법칙입니다. 질서는 정신의 건전이며 육체의 건강이며 도시의 평화이며 또 나아가서는 국가의 안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한 단체입니다. 교회의 거룩성은 질서있는 생활에서 유지됩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나 질서있게 행하여야 합니다. 질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위치를 잘 지키면 됩니다. 자기 자리를 떠날 때 혼란이 일어납니다. 성도는 언제나 예수님을 앞세우고 자신은 그 위를 따르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서거나 제사장을 앞질러 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질서있는 행진이 이적을 불러왔습니다. 질서는 언제나 개인에게 있어서 무거운 짐입니다. 앞 설 사람은 앞서고 뒤에 설 사람은 뒤에 서서 대열을 흐트리거나 이탈하지 말고 복종과 인내로써 전진해야 합니다. 질서를 지키기는 짐스럽지만 단체의 평화의 유지는 질서가 그 생명입니다. 금성철벽이요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여리고 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이스라엘의 행군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믿음은 위대한 것이지만 그것은 인내와 복종을 필요로 합니다. 위대한 신앙과 복종과 인내와 질서로써 기적이 연속되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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