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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너진 성벽 (수 06: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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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성 함락의 얘기 중 몇 가지 재미있는 점에 대해서 설명을 가하고자 합니다. 우선 7의 숫자가 현저하게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일곱 제사장, 일곱 양각 나팔, 제 칠일, 일곱 번 성을 돌았다는 점 등, 7이라는 수가 이야기 가운데 여러 번 되풀이 되었습니다. 7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고대 백성들 가운데 거룩한 수로 생각되었습니다. 애굽인과 메소포타미아들 가운데서도 7이란 숫자가 거룩한 숫자로 사용된 예가 많이 있습니다. 구약 성서에 보면 일주일 안에 일곱 날, 여러 가지 7일날 동안의 축제, 제사장 안수와 제단 헌납을 위해 7일간 제물의 피를 일곱 번 뿌림, 일곱 가지의 촛대, 일곱 해의 기근, 여호와의 일곱 눈, 요단강에서 나아만이 일곱 번 목욕함, 일곱 해의 재난 등 7이란 숫자와 관련된 기사가 많이 있습니다. 신약 성서에도 역시 7이란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7이란 숫자는 완성, 완전, 극치 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7이란 숫자는 하나님께 성별된 수로 생각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무엇이든지 7로 채우면 그것은 완전한 것이 되었습니다. 정복 전략에 있어서 언약궤의 위치는 요단강 횡단 때와 같이 대단히 중요한 역활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또 다시 정복권을 승리로 이끈 것은 하나님의 현존이었다고 지적됩니다. 여리고 성은 제 7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 주변을 일곱 번 돌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17절에 여리고 성은 “여호와께 바쳐져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바쳐진”이란 단어는 보통 타부(taboo) 혹은 어떤 금지된 것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번역된 것입니다. 히브리어 용법에 있어서 그 단어는 특히 전쟁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승리가 확실하리라는 신념 밑에서 모든 전리품과 생물, 무생물 일체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였습니다(민 21:2). 신명기적 율법은 가나안 족속과 그들의 소유물을 온전히 바침으로써(신 7:1-5, 20:16-18)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추구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의 기구들은 모두 하나님에게 속하여 있으며 따라서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신 13:17) 값있는 금속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 관리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되어야 합니다. 호흡있는 것을 모두 전멸하라(신 20:16)는 명령을 하였는데, 이처럼 점령국의 백성을 모두 몰살시켜야 한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야만적인 행위같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모압의 비석을 보아서 그와 같은 멸절 행위는 이스라엘 밖에서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후기부터 그 제도는 차차 사라져 갔으나 최후 심판 때 이스라엘의 대적이 완전히 전멸될 것을 바라던 묵시적 저자들의 머리 속에는 그러한 기대가 살아 남아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 공략은 오늘날까지 세계 전략상 유명한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뛰여난 전술가요, 전략가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굳게 건축된 여리고 성을 화살 하나 쏘지 않고 공략하여 승리하였습니다. 그 공략은 순전히 심리전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법궤를 한 가운데 두고 그 앞에서는 일곱 제사장이 양각 나팔을 불고 그 앞과 여호와의 법궤 뒤에는 무장한 군인이 호위하면서 행진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엿새를 계속했습니다. 제 칠일에 이르러 그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서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일곱 번째 돌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크게 불 때 모든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순간에 성벽이 무너져 내려 앉았습니다(20절 ).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 안으로 쳐들어 가서 그 성을 점령했습니다. 이 성을 점령한 이후부터는 승승장구하여 끝내 가나안 땅을 전부 성공적으로 공략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쳐들어 가던 때와 오늘의 한국적 상황에는 유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여리고 성의 성벽이 견고하듯이 오늘의 휴전선도 매우 견고합니다.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남한의 천만 성도는 남북한을 통일시키고 거기에 주님의 교회를 세울 거룩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점령시키고 그 땅을 여호와께서 지배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려 하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유사한 점은 여호수아가 무기 하나 사용하지 않고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게 한 것처럼 우리도 무기와 무력으로 이 휴전선이 무너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복음, 구원의 복음으로 운동력이 있어 사람의 영과 혼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이 휴전선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여리고 성은 일주일만에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눈앞에서 틀림없이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그 성벽이 무너지리라고 알고 있던 사람은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그 사건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었고 인류가 걸어가야 할 역사적 과정을 전환시켰습니다. 우리 한국의 민족사와 교회사에도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난 기적적인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이만큼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순수하게 지킬 수 있었다는 것도 기적에 틀림없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 의해서 말살되지 않았다는 것, 8. 15의 기적적 광복을 얻었다는 것, 6. 25때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었다는 것, 4. 19와 5. 16의 혼란 속에서도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아니했다는 것,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계속적인 성장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는 점 등등 많은 기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전부 수학적이나 논리적으로 증명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현대사는 기적의 연속입니다. 이 역사가 앞으로 더욱 영원히 지속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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