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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의 화랑도를 (삿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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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6대 사사 기드온이 이스라엘 민족을 멸망에서 구출한 내용입니다. 5대 사사 드보라 이후 40년 태평세월에 이스라엘은 부패와 방탕의 길로 가다가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습니다. 미디안 군사가 이스라엘로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은 백전백패하여 옥토를 버리고 산골짜기 속에서 최후의 저항을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여기서 고난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 생각하고 원인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버린 결과인줄 깨닫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보시고 한 사사를 보냈으니 농부 출신 기드온이었습니다. 사사 기드온이야말로 천국의 화랑이었습니다. 화랑은 신라시대에 비롯한 사회적 정치적인 인물을 말하는데 문벌과 학식이 있고 외모가 단정한 사람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성경에 족장시대와 왕정시대 사이에 사사시대가 나오는데 사사는 제사와 정치를 합하여 이스라엘을 지도한 인물을 말합니다. 이 사사는 화랑과 비슷합니다. 정치도 하고 때로는 칼을 들고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기드온에게 성령이 임하여 기드온은 이스라엘 군사를 모집하기 위해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 때 조국을 위하여 모여든 군대가 32,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겁인 많은 자 22,000명은 집으로 돌려 보내고 나머지 10,000명도 하나님은 그 숫자가 많다 하여 2차 시헌선발에 물마시는 문제로 하여 300명만 선발했습니다. 미디안의 메뚜기 같은 숫자에 300명 군사는 너무나 적은 숫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엇이든지 많은 것은 언제나 좋고, 옳고, 정당한 방면에, 적은 것은 언제나 많은 것에 비해서 어딘가 부족하고 틀렸고 바람직 하지 않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다수와 소수, 이 둘가운데 언제나 다수를 지지하고 다수속에 끼기를 원하며 다수의 결정은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하는 정치이념입니다만 우리 모두가 이 다수결의원칙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주의가 제일이라할 때 다수주의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오늘은 다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조적 소수가 더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수와 소수 사이에는 언제나 끊임없는 긴장과 대결이 계속되어 있습니다.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의 국민이 그렇습니다. 소수의 지배자들과 다수의 피지배자들 사이에도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소수의 자본가와 다수의 근로자들 사이에도 언제나 끊이지 않는 긴장이 있습니다. 교회구조에서도 소수의 성직자와 다수의 교인들 사이에는 쉬임없는 의견의 차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수에도 관심이 깊습니다. 출애굽의 60만 이스라엘 장정들, 오병 이어, 그 어른 장정 5000명을 먹이신 주님의 기적, 초대 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하루에 5,000명씩 회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 추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은 소수의 정예 군대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 구원입니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성서에서 소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소수를 통하여 다수를 구원하려고 하시는 의도를 역력히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적은 것을 무시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적은 것을 많은 것과 같이 존중하시고 적은 것을 통하여 많은 것을 얻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 구원의 원경이 되는 노아와 그 가족은 8명뿐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 적은 수가 이스라엘 200만 백성을 구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숫자적으로 적지만 하나님의 구인의 역사는 이들을 통하여 나타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소수였으나 인류구원의 주격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 경속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삼사하는 사마리아인 무리들 속에 있는 예수 모습을 읽게 되며 소수에 관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수나 소수 모두를 한결같이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며 구원의 목표로 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소수에 관심을 가지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창 13장에 의인 10인이 없어서 소돈 고모라가 멸망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수와 소수사이에는 생명의 관계, 구원의 관계, 신비로운 영적 관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소수를 부르십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는 소수는 결코 미미한 존재가 아닙니다. 무시할 수 없는 위대한 수입니다. 이 적은 수는 창조적 소수라고 부릅니다. 창조적 소수란 무엇입니까? 숫자는 적지만 역사적 미래를 이끌어 나가며 오늘이 아닌 내일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이 창조적 소수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오늘 성경 본문에 나타나는 천국의 화랑인 기드온 300명 군사들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언제나 소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즉 창조적 소수에 의해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택한 정예군대는 소수 300명 에 불과했습니다. 창조적 소수란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볼 있듯이 이번 싸움의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용기와 헌신과 준비 가 갖추어진 사들이었습니다. 안일을 포기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금을 준비한 군인들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전쟁의 주역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전투는 하나님의 싸움임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직접 싸우시는 거룩한 전쟁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곧 신앙의 눈과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창조적 소수인 그들은 믿음의 귀로 역사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였고 믿음의 손과 발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창조적 인물들이였습니다. 신앙의 입으로 증거하는 사람들이 창조적 인물들입니다. 기드온의 군대가 바로 그런 군대였습니다. 즉 기드온 군대는 천국의 화랑도들이였습니다. 이들의 특색은 여호와를 위하는 자들입니다. 기드온의 300명 용사가 “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 ” 라는 구호를 외치며 노도와 같이 미디안 적진을 쳐들어가 승리를 기둠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일시 단결함으로 보잘것 없는 보리떡이 미디안을 파괴하듯 믿음으로 이 사회속에 깊이 굴러 들어가 악을 배제하고 복음화하여 여호와의 군대를 이룩함으로 봉사하고 교회와 조국 평화에 이바지하시기 바랍니다. 기드온이 굴러 들어 가는 곳에 침략자가 격파되고 바알신이 분쇄된 것처럼 천국 화랑이 들어가는 모든 곳에서 악의 요소를 소멸해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병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천국의 화랑이여! 목숨을 견고 일어나시라. 기드온의 승리가 여러분의 승리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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