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죄와 소경

첨부 1


'마음의 창'인 눈은 사물을 보기 위해 있다.

그것도 올바로 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보는' 단계에 도달했을 때 우리의 눈은 비로소 충족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여기에 방해가 되는 것을 보지 않겠다는 희생까지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들의 눈은 언제나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밤눈이나 먼 눈으로 바라보거나 삿갓을 쓴 여인을 보면 얼굴이 돋보인다'라는 말처럼, 착각에 의해 대상이 조금이라도 잘 보이는 동안은 아직도 괜찮다.

이런 잘못 알고 있는 것보다, 인간의 눈은 뜨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예수는 통렬히 지적하신다. 소경이 볼 수 있게 되어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할 때에 주님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고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물론 역설적인 말씀이다. 소경이라도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고침을 받아 진리를 알게 된다. 이와 반대로 자기가 본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구원의 빛을 볼 수가 없다.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와의 갈림길은 스스로 만족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닌가의 여부이다. 바꿔 말하면 교만의 유무이다. '맹목은 교만의 가장 위험한 결과이다'(라 로슈프코).

섣불리 깨달은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복음의 세계에서 먼 것은 없다. 이것이 바리새파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에게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빛의 필요를 느끼지 않으므로 소경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고침을 받아 보게 된 자에게 '네가 그(인자)를 보았다'라고 단언하셨으나, 이상하게도 그는 보고 있지 않다.

그의 대답은 '내가 믿나이다'이다. 결국 아직 신앙의 대상을 보는 경지에는 이르고 있지 않다. 그는 보는데서 믿는 데로 옮아갔으나, 나중에는 거꾸로 믿는 데서 보는 세계로 옮아갔을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발걸음도 이와 같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