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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한 번만 더 (삿 16: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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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의 대대의 원수인 저 블레셋 사람들이 저들의 주도 가사에 모여서 저들의 신 다곤을 찬양하기 위하여 거족적인 축하 대회를 거행했습 니다. 저들의 신 다곤을 찬양하기 위하여는 여러 가지 흥미 중심의 순서들 이 진행되는 한편 제 단위에는 수천 수단의 희생으로 인하여 연기가 자욱히 끼이게 됩니다. 이러한 거족적인 찬양대회의 주제는 저들의 신 다곤이 그 처럼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히던 저 히브리 사람 삼손을 그 힘센 용사 삼손을 저들의 사로잡을 수 있도록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저들로 하여금 저들이 신 다곤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 보다 더 능력이 있는 신이라고 생각케 하였고 또 그렇게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대회에 의례히 있는 일로 저들이 술이 어느 정도로 취하게 되자 방백들과 백성들은 떠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삼손을 저들 앞에 끌어내어다가 그 센 힘을 한 번 구경하자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 저 눈먼 히브리 거인 삼손을 데려오라! 우리의 전능신 다곤이 저를 우리 손에 부친 것이 아니냐? ” 라고들 외쳤습니다. 이리하여 이 가련하고 눈먼 삼손은 한 소년에게 부축을 받아가면서 군중앞에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시던 때와 같이 삼손의 경우도 천사 가 나타나서 그의 출생을 예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나매 삼손이 라고 불렀습니다. 삼손이라는 말의 뜻은 ‘ 햇빛 ’ 이라 혹은 ‘ 해같이 빛난다 ’ 는 뜻이었는데 그러나 슬프게도 이제 두 눈 알을 뽑히고 놋줄로 매임을 입고 가사 옥중에서 멧돌을 돌리고 있는 저의 생활은 빛을 볼 수 없는 캄캄한 밤같이 어두운 생활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힘의 출처에 대하여 비밀을 발설하므로 인하여 마침내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눈은 때임을 당하였고 끌려 가서 가사 옥중에서 멧돌을 돌리고 있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삼손이 소년에게 인도되어 군중앞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구경군들은 집안에 가득하였습니다. 그중에는 블레셋 수령 모든 방백들과 귀인들의 남녀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정원과 지붕위에도 삼천여명의 남녀들이 삼손의 재주부리는 것을 보기 위해서 모여 들었습니다. “ 저 다리를 보라! 마치 구리 기둥과도 같군 그래! 그리고 저 어깨 좀 보라! 산언덕처 럼 생기지 않았는가? 그리고 저 목을 보라? 바산의 황소와 같지 않는가? 저 등짝! 저 팔뚝과 저 손 좀 보라 무시무시하게 굵지 않은가? 그러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눈없는 가련한 노예의 몸이 아닙니까? ” 여기서 저들은 삼손을 놀려 주며 희롱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 삼손 삼손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느냐? 보라 우리의 다곤은 너희 하나님보다 더 능하고 강하사 너를 우리 손에 부치신 것이 아니냐? 왜 말이 없느냐? 너는 지금도 나귀턱뼈로 우리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웬 천만에 너는 오늘 우리 앞에서 재주를 부려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즐기게 하라 ”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볼레셋 사람들은 빡빡 깎았던 삼손의 머리털이 옥중에서 자란 것은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옥중에서 블리워 나온 삼손은 저들이 시키는대로 신전과 궁정뜰에서 여 러 천 명의 구경군들 앞에서 재주를 부렸습니다. 큼직한 바윗돌을 마치 공 돌처럼 큼직 큼직한 통나무들을 조그마한 막대기 인양 힘들지 않게 들고 재주를 부렸습니다. 얼마쯤 재주를 부리고 나서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 나로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서 그것을 의지하고 쉬게 좀 도와달라 ” 고 하였습니다. 구경 군들은 흥에 겨워서 또 무슨 재주를 부리려나 하여 호기심에 끌리워서 삼손의 일거 일동작을 드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소년에게 인도함을 받아 가면서 삼손은 그 집을 버티고 있는 기둥 가까이 가서 팔을 폈습니다. 오른편 팔을 펴서 집을 버틴 한 기둥을 껴 의지하고, 왼편 팔을 펴서 다른 한 기둥을 껴 의지하고서는 머리를 숙이고 두 기둥 사이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지붕위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 “ 저 거인을 보라! 삼손이 피곤해서 잠깐 쉬는 모양이다 ” 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쉬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삼손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그의 머리를 들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하늘로 향하였습니다. 그는 소리를 내어 “ 주 여호와여 구하옵니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나를 강하게 하옵소서 이 한 번만 더 나를 강하게 하옵소서 ”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친 삼손은 두 기둥을 옆에 대고 “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 고 하면서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위에 덮히고 보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삼손의 기도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것은 “ 이 한 번만 더 ” 라는 귀절입니다. 이 한 번만이라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자기를 버리지 아니 하신다는 확증을 받고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더라도 한이 없었다는 것입니 다. 생각하면 삼손은 그가 나기 전에 하나님이 택하셨고, 그가 나매 하나님 의 신이 늘 저와같이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가는 곳마다 승리가 있었고 그 길이 형통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블레셋 사람들의 미인을 사용하 는 간첩전에 걸려들어, 들릴라라고 하는 미인을 알게 됨으로부터 그의 생 활은 혹 암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더 깊이 끌리워갔던 것입니다. 한 번만 이 중요한 관건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끌리워 갈대로 다간 삼손은 마지막 자기 힘의 출처의 비결을 토설하고 보매 애인 들릴라가 자기의 소유가 되지 못한 것은 물론 눈알은 뽐히우고 짐승과 한 가지로 멧돌을 돌리는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 아닙니까? 40년의 오랜 세월동안 놀랄만한 용기와 신앙으로 모세는 자기의 동료들 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허락있는 땅을 향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된 일 입니다. 40년의 오랜 세월동안 한 번 꼭 한 번 모세는 자기 감정을 제어하 지 못하였던 일이 있습니다. 그 많은 이스라엘의 대중을 거느리고 므리바 라고 하는 곳까지 이르렀을 때에 백성들은 물이 없어 불평과 불만을 발하 게 되니 하나님께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백성과 가축들로 마 시게 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성 이 나서 “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 하고 반석을 치되 한 번만이 아니라 두 번이나 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모세와 그 백성은 그 기나긴 여행을 끝내고 요단강만 건너면 이제 허락된 땅이 그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오직 그 땅 약속의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는 것만을 허락되었으나 그러나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므리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한 번 꼭 한 번 실수 하므로서 허락 있는 땅을 바라보면서도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행동과 한 마디의 말과 한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허락있는 땅의 축복과 평화를 잃어버리는 것이겠습니까? 에서는 산과 들로 다니면서 수고 하였으나 산양의 소득이 없이, 피곤하 고 시장한 가운데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야곱이 끓이고 있던 팥죽냄새를 맡 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장한 터이라 동생을 찾아 팥죽 좀 달라고 하였 으나 교활한 야곱은 그 형의 장자의 권리와 거기 따르는 축복을 양여 받지 않으면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장자의 명분이 무 슨 소용이 있으며 죽은 후에 무슨 축복이 필요한가? 너는 나의 장자의 명 분을 가지고 나를 하여금 그 팥죽을 먹게 하라 ” 고 에서는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장자의 명분을 경히 여기고 한 그릇 음식물을 위하여 판 에서가 “ 후에 축복의 기업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 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석양녘 자기 궁궐 지붕위를 거닐던 다윗이 한 번 이웃집 여자 그것도 남의 아내의 목욕하는 것을 보므로 인하여 그 여자를 궁궐로 데려다가 자기 아내로 삼기 위하여 잔인하게 살인까지도 감행한 것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을 때 다윗은 회개하였고 또 사죄함을 받은 줄 압니다. 그러나 그의 집에 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에게서 난 아이는 얼마 안되어 죽었으나 그 후 다윗 집에는 골육상쟁의 비극이 다윗의 생전에 쉴줄 몰랐던 것입니다. 꼭 한 번 그 석양녘에 목욕하는 여자를 보므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집에는 비극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한 번의 실수가 그 자신과 그 집과 민족에게 가져온 불행을 보는 대신 좀 더 명랑한 방면을 생각해 봅시다. 삼손은 그 생명의 마지막에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 이 한 번만 더 나로 강하게 하여 달라 ” 고 하였습니다. 한 순간의 좋은 결심과 한 마디의 좋은 말과 기도와 진설된 참회는 참으로 그 사람이나 그 사회와 민족 국가의 과 거의 죄악을 청산하는 좋은 힘이 된다는 것을 이 삼손의 생의 마지막 장면 이 극적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삼손의 이 마지막 기도는 그 진실된 참회의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삼손은 그의 생과 사를 통하여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좋은 봉사를 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삼손은 힘의 근원이 어디 있는 줄 알았습니다. 머리털이 다시 길었다고 반드시 그 힘이 다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힘의 근원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주 떠나 가시면 그 생명 헛되고 주 함께 하시면 마귀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저는 “ 이 한 번만 더 ”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이 하시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잡히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한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끝이 되더라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들어가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요셉과 라합의 경우를 보십시요. 한 번 밖에 없는 그 기회를 잘 포착하였고 사도 바울의 경우는 한 번 주신 계시를 어그러뜨리지 아니하고 순종하므로 주의 축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얻을 수 없는 이 기회에 “ 오 하나님! 나를 생각하옵소서 이 번만 한 번 더 나로 강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내가 주의 집에 있다는 것을 확인케 하옵소서 ” 하는 저 용사 삼손의 기도는 오늘 우리와 우리 교회의 기도가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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