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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서의 종교 (삿 21: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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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구약 사사기 19장에서 21장에 기록된 말씀으로 사사 시대는 이제 끝이 나고 왕국시대가 시작하려는 시기였습니다. 사사 시대라 함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사울 왕이 즉위하여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는 사무엘 선지자의 시대까지를 사사 시대라합니다. 사사는 종교와 정치를 겸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는 지도자로서 사사 말기에 무서운 살인 12토막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이 왜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무슨 의미가 있는가고 궁금하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만 성경의 깊은 이 뜻이 역사적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본문에 나타나??? 사사말기 시대는 암흑시대요 혼란시대이며, 또한 전국 시대이며 무법시대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세의 율법이 당대에 있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 율법은 최고의 명령이면서도 실제로는 거의 망각된 무용지물처럼 되어 버린채 법도 없고 도덕도 없는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삿 19:1에 “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햐였더니…… ” 라 하였습니다. 벌써 내용 시초부터 냄새가 악취를 냅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은 성직자인데 첩을 얻었다는 사실부터가, 그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이 아닌 유다 지파가 사는 베들레헴에까지 가서 첩을 얻었다는 사실이며, 그 당시 사회가 레위인의 비행에 눈감을 수 있을 만큼 어두운 사회라면 백성들 모두 타락된 사회였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말씀 내용이 시작됩니다. 그 첩은 음행 때문에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첩이 친정집에 있다는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내려갔습니다. 행실이 부실한 여자가 도망갔거든 잘됐다 하고 잊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 날터인데, 원래 죄악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죄악은 과감하게 끊어버리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이 레위인은 죄악을 끊지 못해서 악의 씨를 찾아다니는데서 저주의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신라 화랑 김유신이 그의 어머니께서 책한 말씀 “ 3국 통일의 거사를 앞둔 네가 주색에 빠져야 되겠느냐 ” 의 말씀 기억하였는데 하루는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피곤하여 잠 들었는데 말이 유신을 깨우며 우는지라 눈을 떠보니 날마다 다니던 술집 기생집이기에 결심한 바 마음이 흔들릴까봐 애마의 목을 쳤다는 애기다 있습니다. 그런 결심으로 그는 화랑임무 완성했습니다. 본문의 레위인에게 그런 결심없음이 아쉬었습니다. 레위인은 이제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필과 양식을 준비하고 첩을 다시 데려오려고 베들레헴에 내려 갔습니다. 인심좋은 장인의 환대를 받으며 닷세를 지내고 오후 늦게 첩과 함께 처가를 떠났습니다. 본래 여행이란 아침 일찍이 떠나야 하는 것인데 오후 늦게 떠났다는 것이 실책중 실책이였습니다. 늦게 길을 떠났으니 얼마 안 가서 날은 저물었습니다. 이제 일행은 여브스 맞은편에 이르렀는데 여브스는 오늘의 예루살렘입니다. 하인은 주인에게 여브스 “ 예루살렘 ” 에서 자고 가자고 했으나 주인은 그 맞은편 당 시 음란한 읍이라고 소문이 난 기브아 성 “ 베냐민 지파성 ” 으로 가자고 해서 해지는 무렵 기브아 성으로 들어 갔습니다. 기브아 성의 인심은 이 행인들을 재워 주는 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길에서 노숙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귀의 짐을 내리고 길가에서 자리를 마련하여 노숙하려 하는데 어떤 노인이 와서 “ 우리집에 와서 유숙하라 ” 고 친절을 베풀어 주기에 그날밤 그 집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주인과 손님이 저녁을 필하고 발도 씻고 짐승들에게도 먹이를 주고 주인과 손이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그 때 대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기브아 성 비류 30여 명이 몰려 와서 “ 레위 사람을 내놓으라 우리가 상관하리라 ” 는 것입니다. 주인은 말하기를 “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렸으니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여기 내 처와 딸과 그 사람의 첩이 있으니 내가 그들을 이끌어 내리니 너희가 임의대로 하라 ” 할 수 없이 첩을 비류들에게 내어주게 되었고, 비류들은 그 여자를 끌고 어두운 골목으로 가서 밤새토록 희롱을 하다가 날이 밝을 때에야 놓아주었습니다. 여자는 자기가 유숙 하던 집으로 기여서 겨우 도착하여 대문 지방을 쥐였으니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레위인이 아침에 나와 보니 여자가 죽어 있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에브라임 산지 고향 동네로 갔습니다. 이런 사건이 사사말기 시대에 일어났습니다. 레위인은 이 모든 일이 자기 자신의 불찰을 반성하고 여인의 시체를 고향에 가져 올 것이 아니라 기브아성 부근에 행인의 사망 신고하여 따뜻한 양지에 묻어주던지 집에 실어왔으면 정중하게 선산에 잘 안장시켜 주었더면 일은 크게 안벌어졌는데 자신이 당한 일의 분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그 시체를 12토막을 내어 12지과 족장들에게 보냈습니다. 시체의 동강이를 받은 이스라엘 자손들 12를 지파 소집해 달라는 공문 도 없었지만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11지파 40만 명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 에브라임 땅에 있는 레위인을 불러 무슨 일이냐고 심문을 했습니다. 레위인은 베냐민 지파 기브아 성에서 당한 일을 설명하고 설원해 줄 것을 호소 했습니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오늘까지 행치도 아니했고, 보지도 못한 일을 미스바에 모인 11지파의 총회에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1) 장정 40만이 소집되고 베냐민 지파에게 비류 ‘ 30여 명 ’을 잡아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총회결의를 무시하고 자기들도 26,700명 장정을 소집하고 총회에 대항했습니다. 이것이 베냐민의 실수였습니다. 총회결의는 순종해야 하는데 총회는 하는 수 없이 베냐민 지파를 응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드디어 이스라엘 총회 40만 장정과 베냐민 지파 장정 2만6천7백명과의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응징이 결정되고 어느 지파가 먼저 출전해야 하는지 이스라엘 총회는 하나님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답하시기를 “ 유다 지파부터 올라가라 ” 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 4만 명이 출전했는데 당일 22,000명이 전사하고 유다 지파는 패전했습니다. 총회는 밤새 통곡하며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 답은 유다 지파가 다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는 다시 전사자인 수 22,000명을 보충받아 출전했습니다. 둘째 날도 전사자 18,000명을 내고 패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총회는 밤새 또 다시 여호와께 부르짖고 아침에 또 다시 출전 여부를 물었습니다. 또 다시 출전하라는 계시가 내렸고 다시 18,000명의 장정을 보충했습니다. 이 군대가 기브아성 근처에 매복해 두고 이스라엘 총회 군대와 베냐민 군대가 싸우는데 이스라엘 총회는 패하는 척 후퇴하니 전 베냐민 군대는 기브아성을 빠져 나오는지라 매복한 군대가 성읍에 들어가 전부 태우고, 성읍에 있는 자를 모두 살육하고 베냐민 지파 장정을 25,100명 전사하고 겨우 600명만 남고 동망하여 각자 림몬이라는 곳의 바위틈에 가서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총회는 미스바에서 모여서 600명의 베냐민 지파 장정 모두 전멸시킬 것인가를 논의중, 유다 지파가 가장 출혈이 많이나고 4만 명 정병이 없어진 지파이지만, 유다 지파는 용서해 주자는 건의를 했습니다. 총회는 유다 지파건의대로 600명 베냐민 지파 장정 생명을 그대로 두기로 결정하고 600명 베냐민 장정에게 이스라엘 지파에서는 딸을 주지 않기로 가결한 것입니다. 다시 총회는 벧엘에서 모였는데 12지파인 총회가 11지파 밖에 모이지 못했습니다. 베냐민 지파가 없어진 것입니다. 삿 21:2-3에 “ 백성들이 벧엘이 모여 하나님 앞에서 대성통곡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다 ” 고 통곡했습니다. 죄로 베냐민 지파를 벌하며 정의로 살았는데 베냐민 지파는 사라지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중에서 이제 베냐민을 위해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고 죄의 용서를 기도하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것입니다. 이제 총회는 남은 600명 베냐민 장정에게 아내를 얻어 가정을 이루게 하여 베냐민 지파를 재건시켜 총회에 가입하자는 결의였습니다. 그러나 총회에서 베냐민 지파 장정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하였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해결책으로 길르앗 야베스 땅에 사는 백성중에서 처녀 400 명을 공출해서 림몬 바위에 숨어있는 600명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200 명이 모자라기에 실로에서 1년에 1차례씩 축제를 열고 무도회가 열리는데 무도회가 무르익을 때 200명 베냐민 장정이 달려들어 200명을 붙들어다 살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리하여 한 레위인이 던진 파문은 종식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용서받은 베냐민 지파 그리고 그 전투에서 가장 많이 피 해를 본 유다 지파는 베냐민을 용서해 준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용서해줌 과 용서받은 베냐민 지파의 아름다운 점이 하나님의 역사 섭리를 가능케 했으며 서로의 용서가 있는 여기에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과 이스라엘 나라 건국의 터를 세울 수 있었던 역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 후 수십 년 후에 사무엘을 통해 용서받은 베냐민 지파 출신에서 기스아를 사울이 기름 부음 받아 이스라엘 첫 임금 사울 왕이 태어나게 되었으며, 베냐민 지파를 용서해 준 유다 지파에서는 다윗 왕을 탄생케 했습니다. 다윗은 엔게디굴에서 그리고 하길라 산에서 자기 생명을 해치려는 사울 왕을 향해 “ 내가 어찌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종에게 손을 대리이까 ” 하며 그에게 선대하며 그 생명을 보존하고 사울의 허물을 용서해 주었기 때문에 유다 400년 창업주로 그의 허리에서 왕통이 끊어지지 아니했던 역사를 압니다. 바벨론 포로 70년 말기에 용서받은 베냐민 지파에서 민족을 구원하되 “ 죽으면 죽으리라 ” 의 기도로 구국한 에스더와 모르드개 장로가 태어났으 며, 용서 한 지파 유다 지파에서는 포로에서 돌아오는 총독 스룹바벨 선지자가 태어났습니다. 용서받은 베냐민 지파에서 기독교는 세계 종교가 되게 한 사도 바울이 태어나고, 용서한 유다 지파에서는 세례 요한과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했습니다. 용서하고 받는 역사는 하나님 나라 시작에 필수 조건입니다. 위대한 것은 용서의 마음, 용서라는 손, 용서의 덕, 용서의 정신입니다. 이것이 사랑이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사죄의 역사에 동참하시는 미래 역사의 주역을 담당하는 자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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