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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이냐 반항이냐 (삼상 15: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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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란 말은 신 · 구약을 통해서 많이 듭습니다. 출 19:5에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 라고 하였습니다. 렘 3:13에 “ 이스라엘의 반역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라 ” 고 했습니다.. 순종이란 말은 헬라 사람들이 “ 밑에서 듣는다 ” 즉 근신해서 책임있게 듣는 것을 말합니다. 이 순종이란 말은 빌레몬서 21절 외에는 주로 종교적 개념에서 사용하였습니다. 롬 6:16에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종교적인 결정을 하고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진리에 순종하며 그리스도께 순종하라(고후 10:5)고 합니다. 즉 죄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뜻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순종은 듣는 것에 대한 능동적인 반응을 말하고 수동적인 자세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순종은 믿는 것과 붙어 다닙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인데, 계시가 사람에게 이르러서 순종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은 계시의 특이성이요, 기독교의 특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주신 원리는 “ 자연 ” 혹은 “ 자연법 ” 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손짓이며, 자연법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극히 당연한 법질서입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있으면 거둘 때가 있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는 이 엄연한 자연법 앞에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 아니요 ” 할 수 없고, 그럴 수 있게 되어져있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이란 결국 “ 순종 ” 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서 시작되며, 순종으로 사는 것이며, 순종으로 종결을 짓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은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모두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들을 남겨 두었습니다. 사울 왕의 실패는 정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못 섬긴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 역사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선악과를 먹었다는 진정한 의미는 “ 하지 말라 ” 는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긴 것입니다. 성경의 전 역사는 “ 하라 ” 는 적극적 명령과 “ 하지 말라 ” 는 소극적 계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결국 죄란 “ 하라 ” 는 일을 하지않거나 “ 하지 말라 ” 는 것을 하는 일입니다. 명령 불복종, 순종 거부행위가 인간에게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순종함으로 인간 구원, 죽음 속에 있던 아담 이 후의 인간에게 삶의 새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의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오직 순종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위에 높이 달리신 예수 리스도의 모습, 희생적인 순종, 거기에서 우리는 이삭의 희생,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리고 인간 구원의 빛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확실히 인간의 범죄와 타락과 사망은 한 인간의 불순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망의 인간 역사에 펼쳐진 구원의 드라마는, 한 인간의 철저한 순종에서 역전되었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희생 이야기는 그래서 신약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말 없이 장작을 지고 모리아산에 가는 것입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는 일에는 아무런 여유를 두지 말고 오직 철저하게 파괴하도록 명령하신 그 말씀을 인간적 이해나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운운하면서 불순종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가야하는 신앙의 행로는 너무도 명약관화합니다. “ 하나님께 순복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 는 베드로 사도의 권면 그대로 입니다. 인간의 지혜로움이 하나님의 어리석음만 못한 것입니다. 인간의 강함이 하나님의 약함보다 못한 것입니다. 피조물의 창조주에 대한 가장 참된 예배와 찬양은 오직 순종일 뿐입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무서워서 순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까봐 겁이 나서 억지로 하기 싫어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보상 때문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또한 있습니다. 무엇을 기대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축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교인들이 우리들 가운데 있습니다. 순종이라는 나타난 결과만 보고서 판단한다면 무서워서 순종하든, 무슨 보상이나 축복을 바라보고서 순종을 하든, 순종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순종은 아닙니다. 존경과 기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우러나서 하는 복종이 진정으로 위대한 순종입니다. 아버지가 무서워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거나 무엇을 기대하면서 순종하는 단계는 유치한 단계입니다. 어린 아이의 단계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이 되고 나면 우리는 그래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옳으니까, 아버지의 말씀은 진정 나를 위한 것이니까, 무조건 순종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어떤 마음으로 순종하고 계십니까? 아직 어린 아이 상태입니까? 아니면 이제는 성숙한 신앙인입니까? 하나님은 순종받으실만한 분이십니다. 그는 영원토록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의 교훈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그의 길은 빛이십니다. 그의 법은 진리입니다. 아직도 인간적 판단과 기준으로 신적 세계에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찌하려고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십니까? 우리는 모두 그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순종을 드려야 합니다. 그것도 억지로나 무서워서가 아닌 진정으로 드리는, 받으실만한 순종을 위해서 말입니다. 순종을 제사보다 기뻐하시는 하나님! 예배나 찬양보다 말씀으로 사는것을 더욱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께 우리 모두 겸손히 머리를 숙입시다. “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 하는 태도로 머리를 숙여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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