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다윗의 군주관 (삼상 24:8-15)

첨부 1


사울이 굴에서 나가자 다윗은 사울 앞에 나타나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생명을 아꼈다고 말하였습니다. 즉, 자기 마음에 사울에 대한 적개심이나 증오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증거로써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보였으며 사울이 자기에게 의심하는 적개심이 자기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지의 여부를 하나님께서 그들 사이에 판단하시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그가 왕을 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습니다. 다윗의 호소는 참으로 감동적인 호소였고 부드러운 호소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향하여 아버지(11절)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나라의 국부라는 의미도 있겠으나 다윗에게는 장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악한 참모들에게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9절에 “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 라고 말했습니다. 사울도 악했지만 사울 왕의 참모들이 사울 왕으로 하여금 악한 왕이 되도록 하게 했으며 다윗이 그의 원수이며 그를 해하고자 한다는 말을 믿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무죄함과 그리고 사울을 전혀 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11절에 “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습니다 ”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게 대하여 품고 있는 적의는 거짓된 추측위에 근거한 것임을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보여주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보이면서, 그리고 사울을 해치지 않는다는 자기의 증거가 확실하다는 것을 더욱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가 그에게 그런 기회를 주시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7절에 “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붙이셨도다 ”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결코 자기 손으로 사울에게 보복을 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굳은 결심을 밝혀주었습니다. 12절에 “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 다윗은 사울에게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며 또한 무익한 일임을 알려 주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자기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인간을 좇는 것은 무익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이미 한 번 그리고 또 다시 바른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호소하였습니다. 12, 15절에 보면 “ 여호와께서 왕과 나 사이에 판결하시를 원하나이다 ” 라고 다윗은 하나님께 판결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무죄한 가운데 고통을 당하는 자들이 피할만한 곳이 되며 위로의 원천이 되십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아무리 잘못 판단하여도, 마지막 때의 크신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바르게 판단하여 주십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맡기고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사 모든 것을 판단하여 주실 때를 기다렸습니다. 또한 다윗은 사울 왕과의 관계에서 왕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신하의 입장에서 왕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신하의 입장에서의 다윗이 왕에게 취한 태도를 몇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왕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다윗 일행은 동굴 안에서 사울의 침입 상태를 식별할 수가 있었지만, 동굴로 침입하는 사울의 입장에서는 동굴 안의 상태를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만일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 순간이야말로 사울을 살해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이구동성으로 살해할것을 주장하였으나 다윗은 이를 완강히 거절했고 사울 왕의 겉옷 자락만절단하여 이를 하나의 증거물로 삼으려 했을 따름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신앙적인 이유입니다. 다윗은 6절에서 “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무슨 일이나 하나님을 앞세우고 그의 뜻을 받들어 행동하였던 것이 그의 생활태도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향할 때 왕의 권위보다 먼저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하나님의 권위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살해하여 보복할 수 없다 하여 이를 억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왕의 옷자락을 벤 사실마저도 마음에 걸려 후에 이를 참회하였던 것입니다. (2) 무사도의 정신에서 다윗의 사울에 대한 관용은 여호와께서 세우신 사자라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임은 사실이지만 설령 다윗에게 이런 신앙이 없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다윗은 결코 사울이 전혀 자기를 식별치 못하는 상황 아래서는 일방적으로 칼을 뽑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자고로 무사란 무저항의 적수를 향하여 칼을 뽑지 않으며 적과 싸울 때도 등을 치는 법이 아닙니다. 이것이 이른 바 무사도입니다. 이런 무사도의 정신은 신라의 화랑도의 정신이나 서양 중세기의 기사도의 정신과 같은 것입니다 무방비의 적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이야말로 무사로써 가장 비열한 행위이며 무사도로서의 권위를 크게 손상시키는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 무사도의 불변의 철칙인 것입니다. 삼하 3:27-39의 말씀에 다윗이 그 후 아브넬을 살해한 요압의 비리를 책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한 사실에서도 그의 무사도의 정신이 여실히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다윗은 무사정신이 투철한 자로써 어디까지나 인도주의에 입각한 인격자임을 알게 됩니다. (3) 윤리 도덕적인 이유에서(8-15절) 다윗은 사울에 대한 호칭으로 8절에 “ 내 주 왕이여 ” 라 불렀고, 11절에 “ 나의 아버지여 ”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내 주 왕 ” 이란 왕에 대한 신하로서의 최고의 존경어이며, “ 나의 아버지 ” 란 칭호 역시 사울 왕이 다윗의 방부라는 점에서 부른 경외만은 아닐 것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의 방부였지만 다윗의 망명시 사울은 딸 미갈을 발디엘에게 개가시켰음으로 이제와서 구태어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을 뿐더러 범인 같으면 여기에 대한 적개심에서라도 아버지라는 말로 결코 부르지 않았을 것입 니다. 다윗은 폭군인 왕에게도 신하로써 충성을 다하였으며 못난 아버지에 대하여 효성을 다하였으니 다윗이야말로 훌륭한 신하인 동시에 또한 훌륭한 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다윗은 사울에 대하여 끝까지 충성된 신하로서의 예절을 갖추어 실로 군신유의의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을 든다면 부하들에게 존경을 못받는 상전과 국민들에게 무시 당하는 왕이나 대통령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경우는 자신을 죽이려한 사울 왕이지만 최선의 존경과 신하로서 충성을 보여서 우리의 길잡이가 되며 모본을 보여준 것입니다. 다윗은 훗날 그 자손들에게도 왕가의 예우를 충실하게 하여 그의 가족들을 살해하지 말 것을 호소하였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왕자 대우를 해 주었습니다. 2. 하나님은 남을 사랑하고, 자신이 손해볼 때 피해 다니는 다윗을 왕성케 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가족을 이루고 사회를 조직하고 이웃관계를 맺으며 학교와 국가를 형성하여 발전해 가면서 삽니다. 우리가 원수를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공자는 덕은 덕으로, 악은 악으로 갚으라고 하였지만 우리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사람은 사랑이 기능, 미움의 기능이 있는데 그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고 맙니다. 우리들의 팔은 두 팔이 있지만 오른팔을 늘 사용함으로 왼팔보다 오른팔이 기능이 더 발달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보다는 남을 더 미워하고, 남에게 사랑만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기능이 상실된 것입니다. 본문의 다윗은 사울에게 쫓김을 받으면서도 사울을 미워하지 않고 그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다윗은 형제간의 우애보다 더 진심으로 사울 왕을 사랑하고 아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의 소유자는 세상에서 약하게 보이지만 날마다 흥왕해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남을 누르고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막대기로 치고 발로 밟도록 하는 대우를 받게 되어 있고, 사랑을 주고 늘 양보하고 약하게 사는 자는 세상 사람들이 그를 잘 보호해 주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서 원수가 목마르거든 마실 물을 주고, 그가 어려울 때는 그래도 형제 같이 귀한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사랑해 주는 그런 사람, 즉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