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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실하게 삽시다 (왕상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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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서는 솔로몬 왕의 찬란한 제관식으로 막을 올리고 다윗 왕은 임종 때에 이르러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라는 유언과 더불어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다윗의 유언의 내용은 첫째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율법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는 것과, 둘째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제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왕위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셨고, 하나님 앞에 진실할 것도 요구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것은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이고, “진실히 행하라”는 것은 공경하고 봉사하라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은 진실을 요구하십니까? 시 146:6에 “여호와는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시 51:6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며”라고 함은 하나님은 진실한 자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진실한 마음과 생활을 주님께 바칠 수 있겠습니까? 1. 진실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한 말을 합시다 시 151:1-2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 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 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라고 했습니다. 주의 장막, 주의 성산에서 하나님의 영적 교제와 축복을 누릴 자가 누구라고 했습니까? (1) “정직하게 행하며”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행하는 것인데, 마음의 생각과 말과 행실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2) “공의를 일삼으며”란 말은 사람에게 대하여 공정하고 의롭게 대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처신하면 그 결과로 사람 앞에서도 공정하게 처신하게 됩니다. (3)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라는 것은 마음과 말이 일치하고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것 입니다. 계 14:5에 “하나님과 어린 양이 속한 자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 들이더라”고 했습니다.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말의 성결함을 가리키고, 흠이 없다는 것은 생활이 정결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따르는 독실한 신앙이 그들로 하여금 종교적, 도덕적인 순결과 진실을 생활화 내지는 인격화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진실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말을 하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2. 진실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갑시다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어떻게 하든지 진실하게 살아 보고자 하는 깊은 욕구가 잠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들의 생활은 진실하기 못합니다. 우리는 진실하지 못한 것, 즉 거짓과 타협적인 태도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진실을 발견하고도 진실을 잡는 데는 너무나 손이 연약합니다. 진실을 원하시는 성도들이여 진실하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진실하신 생애와 십자가에서 흘러내리신 진실의 빛이 우리 영혼에 비쳐질 때 우리 속에 잠재하고 있는 진실을 일깨워 주어서 우리들의 생활도 진실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하신 정신이 엉키고 굳어져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화한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길은 결단코 타협이나 허위의 길이 아닌 진실뿐인 것입니다. 마 27:34에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상의 대업을 수행하시는 주님께서 그의 받으실 최후의 시련인 고통의 잔, 죽음의 잔을 맑은 정신으로 겪으시려는 뜻입니다. 그는 단 하나의 고통도 마취되거나, 감하거나, 피하려하지 아니하시고 사실 그대로 겪고자 하신 의연하고도 진실한 태도였습니다. 주님의 의지, 그 인격, 그의 감정, 그의 정서에는 거짓도, 꾸밈도 없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눈물을 흘려 우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마음이 심히 민망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부르짖으실 만큼 연약한 인간의 몸 이셨지만, 결코 거짓과 타협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 23장을 보면 진실하지 못하여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독사의 자식들아”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진실을 배반하는 죄만큼 예수님이 미워하는 죄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아무리 괴롭고 고독해도 진실의 좁은 길, 험한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진실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살아갑시다 사 38:2-3 에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의 기도를 들으신 후 1) 그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2) 생명의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으며 3) 강국 앗수르를 이기게 하시고 4) 아들을 낳아 왕위를 계승하게 하셨습니다. 대하 31:20-21에 “히스기야가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서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전에서 수종드는 일에나 나라를 다스리는 모든 일에 형통하게 된 그 원인과 비결은 선과 정의와 진실함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 145:18에 “여호와께서는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소원을 이루시며 보호하시며 구원하리로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 (1) 진실한 말을 해야 하고, (2) 진실하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며 (3) 진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시 5:9-10에 “저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혀는 아첨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아첨이라는 말은 원문에 “미끄럽다”는 뜻이고, 신실이라는 말은 원문에 “견실하다”는 의미로 일정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첨하는 자, 곧 처세에 미끄러운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배반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반하고 하나님까지 배반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견실하고 일정성 있는 진실한 사람은 주의 성산에서 또 주의 장막에서 영원무궁토록 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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