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효과적인 봉사 (왕상 17:10-16)

첨부 1


똑같이 많은 것을 받아 가지고 큰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겨우 작은 일이나 해 놓는 사람도 있고, 아무 일도 못하고 마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 것을 가지고 작은 일 밖에 못했다면 애석한 일이요, 큰 것을 가지고도 아무 것도 못했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가지고 큰일을 해 놓았다면 그것은 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작은 것으로 큰일을 해 놓은 장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사르밧 과부입니다. 환경이 좋아야 사람은 큰일도 할 수 있고, 성공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사르밧 과부는 예루살렘 시민이 아닌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한 번도 예루살렘 구경을 해 본 적이 없는 여인일런지도 모릅니다. 그 과부에게 있는 것이 있다면 어린 외아들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봉사를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이 살던 때는 아합 왕의 시대였습니다. 아합은 역대 열 왕 중 가장 악한 임금이었고, 그의 부인 이세벨은 가장 요망한 여인이었습니다. 이런 최악의 시대에도 사르밧 과부는 훌륭한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여력이 있어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풍성해야 구제도 하고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내 주머니가 궁색하고서는 동정이고, 구제이고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르밧 과부는 한 홉 가루를 가지고도 남을 돕는 일을 했습니다. 이야말로 효과적인 봉사입니다. 가치 있고 훌륭한 봉사란 첫째로 보다 더 널리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공익성을 말합니다. 내 가정 뿐 아니라 온 동네, 내 지방 뿐 아니라 전국에, 내 나라 뿐 아니라 온 세계에, 이 세계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까지 유익이 되는 일인데 이것이 가치 있는 봉사입니다. 둘째, 시간적으로 보다 더 길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영구성을 말합니다. 현재 뿐만 아니라 백년 후까지라도 인간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일이면 가치 있는 봉사입니다. 그런데 이 사르밧 과부의 봉사는 공간적으로는 멀리, 시간적으로는 길게 뻗치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르밧 과부는 무슨 봉사를 했습니까? 1. 남을 살리는 봉사를 했습니다 이 여인은 아합에게 쫓겨 사르밧까지 밀려 내려온 엘리야를 봉양하게 되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봉사함은 뜻있는 일로서 남을 살리는 봉사였습니다. 2. 나라와 민족을 구해냈습니다 아합 왕 때문에 하나님의 선지자는 살해되고 바알의 선지자만이 횡행하는 종교적인 위기로써 엘리야의 기도가 있기 전에는 비마저 내리지 않게 된 민족적인 위기인데 엘리야가 하늘 문을 닫아둔 채 그가 죽는다면 전 국민이 사멸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엘리야를 살려주는 일은 곧 나라를 구하고 민족을 살려내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가 쓰시는 사람들을 잘 도와주고 받드는 것이 곧 하나님을 인한 봉사가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자로 그를 통하여 하시려는 경륜이 크십니다. 이미 많은 선지자가 피살되었는데 엘리야마저 죽는다면 하나님의 일이 큰 위기에 직면합니다. 이러한 때 엘리야를 살려준 이 여인의 봉사는 곧 하나님을 위한 큰 봉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4. 자신을 위해서도 큰일을 했습니다 후일 그의 외아들이 급한 병으로 죽었을 때 이를 엘리야가 다시 살려주었습니다. 만일 엘리야가 없었다면 그의 아들이 살아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요, 그렇게 되었더면 이 과부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하였겠습니까? 봉사는 남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도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매일 공궤하였기 때문에 그들 모자도 그 흉년에 매일 먹고 살아갈 수가 있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사실 그 때문에 엘리야가 살게 되었다는 것보다, 엘리야 때문에 그들 모자가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나만 위하는 자는 남에게 손해를 끼치게 되지만, 봉사위주로 사는 자는 남을 유익케 할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유익을 가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5. 사르밧 과부는 어떻게 이런 훌륭한 봉사를 할 수가 있었습니까? 이 여인은 빈 항아리를 보았습니다. 이제 그것마저 떨어지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지만, 마지막 남은 한웅큼의 가루나마 이것을 가지고는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회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육체를 위한 일은 지난 때로 족합니다. 이제 남은 한웅큼의 인생 잔고이나마 주의 일을 위해서, 형제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도 봉사해야겠습니다. (1) 채워지는 가루 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죠지 뮬러가 그의 90회 생일에 이렇게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그에게서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부족한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고 했습니다. 사실 모든 것을 드리는 자는 모든 것을 받습니다. 너의 총재산인 한웅큼의 가루를 가지고 선지자를 위해 봉사하면 흉년이 지나도록 네 가루 통이 다하지 않고 기름병이 마르지 않으리라는 엘리야의 말을 믿은 여인은 빈 통만을 쳐다본 것이 아니라 이 통을 끊임없이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았고, 또 믿었기 때문에 이 어려운 때에 극난한 봉사를 단행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면 우물물은 언제나 다함이 없이 채워지는 법입니다. 우리의 생을 주의 일에 바쳐 보십시다. 남을 위해 봉사도 해 봅시다. 나의 가루 통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 채워질 것입니다. 마음만 있으면, 그리고 신앙과 결단만 있다면 나도 내 생의 최악의 날, 겨우 한웅큼의 내 인생 재고를 가지고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