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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르호보암의 타락 (대하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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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은 이방의 가중한 것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유대는 두 나라로 분열되므로 말미암아 아주 심한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더 잘 섬겼으면 더 번영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가 날이 갈수록 가중되었습니다. 1. 르호보암과 그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에서 월남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그들을 따라온 자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유대 르호보암을 잘 도와 유대 나라는 강성했습니다. 나라가 분열된 상태에서 힘을 잃었던 르호보암도 다시 용기를 얻고 다윗이 걷던 길로 행하여 다시금 그 옛날의 영광을 되찾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강성함은 오래 가지 못하였습니다. 나라가 차츰 강해지자 르호보암 마음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율법을 버린채 우상의 습관을 좇아 행하므로 점차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르호보암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온 백성들이 저를 본받았습니다(1절). 르호보암은 이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태만해졌습니다. 르호보암은 자기의 왕위가 흔들거린다고 생각될 동안에는 자기의 의무를 지켰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자기의 우방을 삼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나라가 상당히 견고하게 됐다고 판단하게 되자 그는 종교에 대한 필요성을 더 이상 인정하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는 종교없이도 너끈이 태평무사하리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같이 "우매한 자의 번영은 스스로를 멸망"시킵니다. 2. 하나님은 르호보암과 이스라엘 백성을 형벌했습니다 2절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르호보암의 마음이 더 이상 완악해지기 전에 저들을 각성시켜 참 회개하고자 급속히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합니다. 저희가 스스로 부패하기 시작한 때는 르호보암의 통치 4년이었고 애굽 왕 시삭이 병거 1,200승, 마병 6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저희를 치러 와서 유대의 견고한 성읍 다섯 읍들을 취하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온 것이 르호보암 통치 제 5년이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 경배하는 일을 저버리자마자 재난이 갑자기 들어 닥쳤습니다. 르호보암이 근래에 요새화하여 수비대를 두고 자기 왕국의 안전에 대해 크게 의존하던 "유대의 모든 견고한 성들"도 별로 저항해 보지도 못한 채 금방 대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저희가 범죄하였기 때문에 이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사건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채찍은 각성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더 완악해지지 않도록 회개시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채찍은 그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스마야 선지자를 통하여 저들이 맞은 이 매의 의 미를 즉시 올바로 파악하도록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유대 방백들이 나라의 존망지추의 위기에서 자신의 안전책을 강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죄다 모였을 때 하나님은 스마야 선지자를 저들에게 보냈습니다. 이 선지자는 10지파의 싸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던(11:2) 바로 그 사람입니다. 스마야 선지는 분명히 저들에게 말하기를 시삭이 저희들보다 우세한 이유는 저희가 국사에 졸렬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스마야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1) 그 내용이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7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남에게 전수받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 메시지는 논증도 아닙니다. 사변도 아니며,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목적이 직접적이었습니다. 단순하고 분명한 언급, 화살처럼 그 목적을 곧 바로 향하고 있습니다. 요점이 없는 설교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지 못합니다. 분명한 목적이 없으면 그 목표가 상실됩니다. 우리는 죄인들을 구원키 위해서 설교해야 합니다. (3) 그 결과가 실질적이었습니다. 대단히 크고 힘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충실하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듣는 청중들 마음 가운데 하나님은 의롭고 자신들은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겸비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진노를 거두시고 저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을 버리시기까지는 결코 사람들을 버리지 아니 하십니다. 4. 죄악은 값비싼 댓가를 지불합니다 이제 르호보암과 백성들을 즉시로 회개하였습니다. 이런 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의 손을 거두었습니다. 유대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시금 반역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심판의 무서움을 얼마간 남겨 놓으셨습니다. 이제 르호보암과 유대는 시삭에게 종의 멍에를 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구원하였으나 완전 구원이 아니라 부분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시삭을 통해 유대백성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세상을 의지하는 자의 차이를 절실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던 자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진정으로 원한 것은 죄의 댓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자에게 크신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애굽 시삭 왕은 르호보암을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도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중에도 유대를 전멸시키지 아니하시고 보호하사 사랑을 베풀어 구원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5. 인생의 허탄한 자랑을 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유대를 징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허탄한 자랑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1) 물질의 허탄한 자랑을 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르호보암이 애굽 왕 시삭에게 빼앗긴 보물은 당대에 부귀영화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모아진 것들입니다. 본문에 언급된 금방패는 그런 부귀영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듯 찬란했던 영화가 르호보암의 범죄로 인하여 단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의 허무성을 말해줍니다. 물질의 가변적 성질을 말해줍니다. 물질의 유한성을 말해줍니다. (2) 허탄한 신앙의 자랑을 금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의 르호보암과 그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성의 영화를 바라보며 조상들의 위대한 신앙의 열심을 자랑하였으나 정작 자신들의 삶속에 있어야 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은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조상 다윗과 솔로몬의 신앙을 자랑하며 자부심을 가졌으나 정작 자신들에게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대한 감상에만 젖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랑은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 자신의 진실한 삶과 거룩한 생활, 그리고 열심있는 믿음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조상들의 신앙만 자랑하는 자는 자신의 빈껍질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이란 언제나 지극히 현재적이며 개인적이라는 것입니다. 6. 금방패 대신 놋방패는 모조의 원리를 말해줍니다 애굽 왕 시삭은 예루살렘 성에서 금방패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의 화려한 전표였습니다. 그것이 상실되었음에도 공적이고 엄숙한 의식에서는 그것을 들어올리는 것이 옛조정의 예법이었습니다. 열등한 금속이 금을 대신하였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행위나 그리스도인의 예배나 그리스도인의 조직들에서 모조품의 모형을 말해 줍니다. (1) 능력없는 경건의 모양,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은 고백, 그것은 공허하고 허망하며 무익한 것입니다. (2)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금과 은의 우상들로 바꿉니다. 하나님은 잊혀지고 우상들과 성인들을 공경합니다. 재물과 세상이 숭배됩니다. 르호보암은 관습적인 행렬에서 금방패 대신 놋방패를 들고 행사를 장엄하게 행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르호보암은 헛되고 오만하여, 금방패가 없어서 자신의 품위가 떨어져 보이지나 않을까하여 염려 합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그 중심을 보십니다. 허탄한 자랑을 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7.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본문은 우리에 교훈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으로 인한 징벌의 비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답답하고 억압 받는 것 같으며 싫어서 그 말씀에 불순종 하지만, 우리의 순종이 아무리 힘들어도 불순종으로 인해 당하는 하나님의 진노보다 견디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말씀 순종으로 당하는 고생과 고난은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당하는 징벌과는 비교될 수 없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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