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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예배 (스 0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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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그 동안 준비되어온 성전건축의 첫 단계인 기초를 놓는 장면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이후, 그들에게 가장 갈망하는 것들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성전 건축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고 이제 그 기초를 놓는 순간이 왔으니 여간 감회가 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행한 처음 일을유의 해야 합니다.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태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랑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10절) 라고 했습니다. 즉 예배를 드릴 준비를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귀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참된 기초는 예배에 있다는 점입니다 웨스터민스터 교리문답 처음에 인간이 삶의 목적을 묻고 있는데 그 답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예배에서 시작합니다. 예배의 제일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유대로 귀환해서 성전 건축을 할 때 처음 예배를 드린 것은 당연합니다. 성전 건축을 실상 유대 인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을 마련한다는데 의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당연히 먼저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즉 성전의 기초는 지대를 놓는 일이 아니라 예배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삶의 기초도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회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의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회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름 12:1) 바울은 우리의 모든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이 예배와 너무 거리가 먼 때가 많습니다. 6일의 시간동안에는 우리들의 삶에서 예배가 사라졌다가 주일 하루만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 참된 예배의 삶은 아닙니다. 모든 시간, 모든 영역에서 예배의 삶이 드러나야 합니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살전 5:5)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의 삶,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나야 합니다. 모든 출발을 예배에서 하십시다. 모든 과정을 예배로 드립시다. 모든 결과를 예배로 마칩시다. 이것이 복된 길이요,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2. 예배는 감사와 기쁨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11절) 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만나서 나아오는 자는 찬송과 기쁨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찬송할 제목과 기쁨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본문에는 두 가지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선하신 분”이시다고 했습니다. 지극히 선하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선하다”는 의미는 “좋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 하난님은 지극히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신 말씀으로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요 10:11). 선한 목자는 어떤 분이십니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 니와”(요 10:11), “내가 내 양을 알고”(요 10:14)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시고 관심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처럼 이렇게 찬송과 기쁨을 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두번째는 그 인자하심 이 영원하시다고 했습니다. 인자하심이 우리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길이 참으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의미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합니다. 어떤 죄를 지었건 그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시는 분”(민 14:18)이시고“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다”(눅 6:35)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여호와께 돌아오는 자에게는 “너회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주흥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는 약속도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지금 본문의 유대인에게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보십시요, 언제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적이 있습니까? 오죽하면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했겠습니까? 그들은 항상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 을 때면 언제나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시 100:1) 외쳤던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도 이런 감격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건조한 예배, 냉랭한예배가 아니라 여호와의 지선하심과 영원한 인자하심을 기뻐 즐거이 노래부르는 감격의 예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예배는 진실함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으니라”(13절)고 기록되어 있듯이 젊은이들은 성전 재건의 기쁨에 취해있고 노인들은 솔로몬 시대의 성전을 회상하며 현재의 성전을 보고 여러가지로 감회가 떠올라 대성통곡하였습니다. 그들의 감회는 서로 다르고 세대간의 성전재건에 대한 평가는 달랐을지언정 그들의 성전에 대한 감정 자체는 동일했습니다. 즉 그들의 심정은진실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곳에는 회상과 감격의 눈물이 있습니다. 성전 재건의 기초를 놓은 이들에게 회상과 감격의 눈물이 넘쳤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예배를 원하십니다. 단순히 주일 1시간을 떼우는 식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처럼 예배를 “보러 가는것”이 아닌 우리의 영혼의 깊은 곳이 주님께 드려지는 그런 예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예배는 성전 건축의 기초입니다. 무너진 성전이 재건되는 순간 이스라엘은 함께 예배를 드렸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성경 여러 곳에서 우리 성도의 몸을 성전이라 하였음을 유의 하십시요(고전 3:17, 엡 2:'21) 그렇게 때문에 우리 몸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예배에 기초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예배로 기초되는 삶을 사시되 찬양과 기쁨이 넘치는 예배, 진실함으로 드려지는 귀한예배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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