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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국가 재건의 3대 방해 (느 0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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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왕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것이 주전 721년이며 그 때 포로로 잡혀 간 자들은 또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왕조 유대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잡혀간 것이 주전 568년 이었습니다. 주전 498년에 바사와 고레스가 바벨론을 지배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저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할 것을 허가하여 제1차로 천칠백여 명이 귀국하고 그 후 십삼 년 만에 느헤미야가 바사왕 아닥사스다의 허가를 얻어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고난과 방해를 참고, 성을 수축하여 선정을 베풀어 국가를 재건하고 일대 신앙부흥을 일으켰습니다. 느헤미야가 이 국가 재건의 대사업을 이루는데 있어서 그에게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큰 장애가 따랐습니다. 느헤미야가 그 장애를 어떻게 이기었는가를 생각함으로써 건국 도상에 있는 우리 민족을 이끌어야 할 교회가 배워야 할 점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1. 외적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적이었던 모압인, 아모리인, 아스토인, 아라비아인 및 새로 들어온 사마리아인 등이 유대 나라의 예루살렘 성이 재건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저들이 이 일을 각 방면으로 방해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비웃고 때로는 위협하고 또 어느 때는 타협도 해오고, 또 어느 때는 느헤미야의 비서인 스마야를 뇌물로 매수하여 느헤미야로 하여금 낙심케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런 일이 생기면 언제나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했으며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그때그때 신앙으로 분발하고 백성들에게도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두려 우신 주를 기억 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하여 낙심된 백성에게 신안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4:14). 그래서 백성의 절반은 일을 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지고 또 성을 건축하는 자가 한 손으로 일을 하고, 한 손으로 병기를 잡아서 어려운 외적의 방해를 무난히 막아 내면서 국가 재건 사업을 성취 시킨것 입 니다. 2. 귀족과 부자의 부패 가난한 자의 호소는 동족에 대한 원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집도 양식도 없었고, 밭과 포도원을 세금으로 다 빼앗기고 빛으로 딸을 남의 종으로 파는 형편에까지 온 것입니다. 이 가난한 자들의 문제는 당시 유대 사회의 심각한 사회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절대 가난과 세금과 이자로 인한 부자들의 착취와 인신매매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호소는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다함께 형제가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유대 사회는 돈 있는 자들의 부패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부자와 귀족들은 가난한 백성을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고리 대금으로 돈 모으기에 바빴고 당시 셈 족들은 벌써 무역을 시작했으며 바벨론에는 일찌기 은행까지 섰다고 하니 당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 인들은 “형제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 는 계명을 쫓아 동족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점점 경제관념이 밝아져서 이자를 받게 되었는데 느헤미야시대는 백분의 일의 이자였습니다. 이것이 평상시가 아니라 국가 재건의 때이고 또 생활 기초도 잡히지 않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귀족들에게 지금이라도 도와서 살 길을 열어 주어야 당연한 것인데도 오히려 이자로 대금하여 주고 갚지를 못했을 때는 금력으로 압박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빈민의 수는 늘고 포도원과 밭을 파는 자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1-5절). 돈 가진 자는 고리로 돈을 모으고 살지만, 가난한 사람은 고생을 해도 살길이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운명을 같이 한 동족끼리 이것은 시정해야할 문제점으로 생각하여 귀족과 부호들을 향해 엄히 꾸짖어 말하기를5:8-10에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대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속량하였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 하도다 우리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그 이식받기를 그치자”고 부르짖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생각하기를 재건사업에 이것을 일대 장애로 알고 국내의 사업을 생각하지 않고 돈만 아는 귀족들의 행동이 민족 양심에 비추어 볼 때 큰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때 느헤미야의 애국적인 꾸지람을 들은 귀족들은 곧 회개하고 다시는 이식을 받지 않았으며 전에 받았던 것까지 돌려주게 되었으니 이 장애도 무난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3. 가난한 자들의 호소 (1) 시대적 상황 1) 그 당시 흉년으로 인해 곡식이 부족했는데 그것은 가뭄으로 인해서였던 것입니다(3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전을 무시하거나 십일조를 바치지 아니하는 백성들에게 가뭄의 징벌을 내리셨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기들 스스로 하나님의 징벌을 초래하고서도 그것을 불만스럽게 여깁니다. 이 때 흉년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자들은 자녀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2절). 식량의 부족은 가족이 많은 집이 가장 큰 곤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은 많으나 물질이 적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 가운데서 최선의 노력과 함께 믿음으로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2) 비싼 세금 가난한 자들의 호소는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세금이 과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 국가에게 비싼 세금을 바쳐야만 했던 것입니다. 당시 세금은 인두세이기 때문에 자녀가 많은 가정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흉년에 먹고 살기에도 힘든 형편이었는데도 세금 때문에 더욱 많은 빛을 져야 했습니다. 3) 고리 대금 업자의 횡포고리대금 업자들은 가난한 자의 형편을 도리어 악용하여 그들의 부를 증가시키려고 했습니다. 비싼 이자로 고리 대금 업자들은 돈을 빌려 주고서는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전당 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는 그들의 삶의 터전인 밭과 포도원과 집을 빼앗아 간 것입니다. 그들은 점차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주인이 되어 갔습니다. 그들의 악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신매매까지 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의 자식을 종으로 부리다가 빚을 갚지 못하면 빚 값으로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5절에 “우리의 자녀도 저희의 자녀와 같이 귀합니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존엄하며 평등합니다. 노예제도는 인류가 범한 가장 큰 죄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가난한 자들의 호소에 대한 느헤미야의 태도 그들의 호소를 듣고 느헤미야는 크게 노했습니다(6절). 지도자가 죄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한 지도자의 분노는 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인 것입니다. 지도자는 더욱 더 악을 미워하고 거기에 대해 분노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웃의 구제는 성도의 의무입니다. 우리에게는 느헤미야와 같은 맑은 양심에서 민족을 내다보고 느헤미야와 같이 예루살렘 재건 초기의 국가 장애 요소의 부패성을 바로 볼 줄 알고 이를 제거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일반 대중의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의 소리를 듣고 저들의 동정자가 되어 저들 편에서 말하고 일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민족적인 신앙운동을 전개할 수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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