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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인의 감사 (욥 0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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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예배를 맞이하여 구약의 욥기에 나타난 참된 감사의 정신을 배우고자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지 않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농어촌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추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도회지 교회에서도 추수감사절은 어김없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세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기를 신 8:12에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네 우양이 번성하며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풍성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축복의 땅에서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이 편안하게 될 때 자만심이 생겨서 애굽의 노예와 광야의 고생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타락할까 염려한 것입니다. 이로 보건데 신앙생활에 가장 위험한 때가 축복으로 물질의 풍성한 환경의 영달할 때입니다. 환란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나 순경에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림이 인간의 상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조용한 암자 같은 곳에 머무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그 곳에 있는 가장 선량해 보이는 사람에게 “당신은 저 성이 보입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대답은 “우리는 겨울에 나뭇잎이 다 떨어지는 때에는 그 앞이 보이지만 여름이 되면 모두가 나뭇잎에 가리워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배부를 때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따라서 물질적 부가 영적 부를 가리우지 않도록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욥은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찬송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쓰라린 공격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서 이기고 말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욥 1:21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이 주시기를 요구할지언정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욥은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을 가졌으니 이야말로 기독교인의 좋은 모범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인의 참된 감사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 때는 그 이름을 찬양하기 쉽지만 그 복을 다시 거두어 갈 때, 그 이름을 찬양하기는 고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욥은 역경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욥처럼 우리도 역경 중에서도 감사 찬양하면 반드시 큰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감사가 퇴화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경제 관념과 이해타산이 밝아지고 인심이 각박해져 배은망덕하는 일이 많고 은혜를 감사하지 않고 거역하는 일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부모에게 대한 자녀들의 감사도 차츰 색이 바래어 가고 있고,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감사도 차츰 형식화되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이 모든 이웃들의 회생을 통한 공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가 결여됨으로써 우리의 사회는 차츰 메마르고 삭막한 사회로 전락해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현대인들은 자신의 생존에 대한 감사를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리가 교회에도 스며들어 오늘의 신앙인들도 차츰 감사정신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말로 받은 후에 되로 감사하려는 현대적인 계산의 기질이 신앙 속에도 스며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성서적인 뜻에서 감사는 합리적인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감사가 아니라 역설적인 감사여야 합니다. 즉, 나에게 얼마 만큼의 이익이 생기고, 먹고, 잠잘 곳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는 참된 신앙인의 감사는 아닙니다. 그와 같은 감사는 먹을 것과 잠잘 곳이 사라질 때는 원망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욥과 같은 참 감사의 자세만이 신앙인의 감사라는 것을 확언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신앙인의 감사는 환경적인 여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신앙의 힘은 모든 환란에서 하나님의 손질을 찾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등불만은 꺼지지 않고 있음을 믿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힘에 지나도록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그 심중에 사형선고를 받은 즐 알았습니다. 환란이 너무 커서 죽은 줄 알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환란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감사를 통하여 어려운 고난을 다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말고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합시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조건 속에서 감사의 내용을 찾으려고 한다면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따라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우리의 마음도 편안하고 역경도 감사의 조건으로 변화되리라 믿습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의 국교 통일정책과 형식적인 교회주의에 반기를 들고 북미주 대륙으로 옮겨간 청교도들에 의하여 시작되었습니다. 1607년 영국 제임스 왕의 박해에 못이겨 화란의 암스텔담으로 도피하여 11년을 지내다가 신앙의 자유를 실현시키기 위채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 배를 타고 3,400마일의 해로를 63일간 항해한 끝에 북미 프리마우스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대 오는 도중 44명이 사망했습니다. 1년을 신개척지에 생활하는 중 1,623가지 가을 농작물을 수확하였고 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해 행정관 보랏포르 씨가 11월에 감사절을 지킬 것을 선언하였고 후에 조지 와싱톤이 1789년 11월 26일로, 그 후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때11월 마지막 목요일로 개정했다가 1941년 미국국회에서 11월 네째 주일 목요일로 작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11월 세째 주일을 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감사절의 뜻을 생각하면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요, 둘째,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한 감사요, 셋째, 오곡백과, 즉 먹을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구체적인 감사의 행위입니다. 이 감사절은 한국 교회에서는 추석을 기하여 지키는 교회도 있습니다. 어떤 방면에서 생각하면 감사절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의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생각하면 우리는 일년 동안 하나님이 지켜 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사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가짐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면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의 고백을 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드릴 감사는 평안하고 여유 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 중에서 병들고 눌림과 학대와 핍박과 실패의 경우에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1. 감사절은 에벤에셀입니다 사무엘 제사장이 미스바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여러 가지로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감사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난 일년간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라고 하는 에벤에셀이 되어야겠습니다. 2. 감사는 보답이 있어야 합니다 시 116:12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했습니다. 눅 17:11-19에 있는 아홉 문둥병자와 같이 은혜를 거역하지 말고 한 문둥병자와 같이 받은 바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참된 감사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원하여 즐겨 바쳐야 합니다. 감사절에 예물을 제단에 바치는 데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강제성을 띈 것입니다. 인색하고 싫어하면서 바치는 것입니다. (2) 의무감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업으나 의무적으로 마지 못하여 바치는 것입니다. 체면상 안 할수 없어서 하는 것입니다. (3) 진실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봉헌물입니다. 참된 감격에서 우러나오는 헌금을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헌금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드리고 우리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시간, 헌금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몸을 드리는 상징으로써 우리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질의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에 정성이 따르지 아니하면 헌금의 의의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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