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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천후 신앙생활 (욥 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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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해마다 비가 오지 않으면 한재로, 비가 오면 수재로 고생합니다. 그래서 한해대책본부, 수해대책본부가 정부 차원에서 세워지는 형편입니다. 농촌의 현실을 볼 때 아무리 피해 없이 농사할 수 있는 전천후 영농시설을 우리 나라는 하루 속히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통하면 그 때문에 타락하고 곤고하면 또 그 때문에 낙심하는 것이 우리들 대부분의 신앙 상태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좀처럼 신자 구실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옛날 욥과 같이 우리가 형통하든지, 곤고하든지 별 요동없이 굳건하게 신앙을 지켜 나가는 전천후 신앙생활이어야 신자로서 제 위치에 설 수 있는 줄 압니다. 그러면 전천후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1. 잘되는 때에도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신앙입니다 욥은 많은 재산과 가정이 만사형통할 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욥은 넉넉한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부지 중에서라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죄를 범할까 하여 잔치날이 한 차례씩 끝날 때마다 그들을 불러 성결케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의 자녀들의 숫자를 따라 번제를 드리는 경건한 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이 넉넉하고 가정이 평안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쉬우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고난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평안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법입니다. 배고플 때 하나님을 찾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도 배가 부르게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 살기 전에 미리 가르쳐 주신 말씀 중에 신 8:10에 “배불리 먹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들으면 싱거운 말 같습니다. 배고플 때 찬송은 몰라도 배불리 먹게 된다면야 찬송 못할 사람이 없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란 배가 부르게 되면 배고플 때 생각과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불리 먹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쯤은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름의 하루는 겨울의 열흘보다 더 맡은 음식을 상하게 한다는 서양 속담처럼 신자는 역경보다 평탄할 때 신앙을 잃은 예가 훨씬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가 잘 될 때에도 하나님을 잘 섬긴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욥은 다복한 가장이요 사람들에게 존경과 추앙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 치고 남에게 욕을 먹지 않는 사람인 별로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욥이 얼마나 덕망 있고 다복하였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풍성한 가운데 더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2. 잘 안되는 날에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입니다 죽을지경에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종 여일하게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이란 대개 주린 창자를 졸라대면서까지 주님을 따르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빵이 들어가는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어린아이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등불이란 어두운 밤에 필요한 것이고 지팡이는 높은 고갯길을 넘기 위해 더욱 소중한 것이겠지만 우리는 막상 시련의 밤이 다가오면 기도의 등불을 꺼버리고 환란의 험산준령 앞에서 신앙의 지팡이를 집어던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욥은 역경 중에서도 시종여일 하나님을 잘 섬긴 것입니다. 욥은 고백하기를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고 하면서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탓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봉사하던 사람이 사업이 실패하고 가정이 불행해지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성도들을 향하신 더 큰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신앙의 길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 더욱 믿음에 정진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 주시고 더 풍성하게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과 같이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우리의 신앙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3. 전천후 신앙생활은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입니 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사업이 잘 되고 병이 고쳐지고 자녀가 일류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가정이 행복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조건들이 없어지면 신앙도 버리고 냉랭해지는 것이 일쑤입니다. 새벽기도회도 입시 때가 되면 성도들이 많이 출석하나 지나고 나면 서서히 감소되어지고 맙니다. 이들은 조건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로서 참된 믿음의 소유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욥의 신앙을 배워서 하나님을 섬길만한 까닭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분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겨야 할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에게 욥 1:20에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선물로 두루심이 아니니이까”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욥이 까닭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축복을 주었기에 사랑하는 것이라고 참소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욥을 시험하도록 하나님은 사탄에게 허락하였으나 욥은 까닭없이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무로 돌아가고 완전히 빈손이된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섬겨야 할 까닭이 없지만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재앙도 마땅히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그냥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슐라이는 말하기를 “자기 교회에 군인들이 잘 나오는 것은 젊은 여자들 까닭이요, 젊은 여자들은 남자 대학생들 까닭이요, 대학생들은 교수들에게 후한 학점을 바라는 까닭이라”고 한 말은 깊이 음미해 볼만한 말입니다. 과연 오늘날 아무 까닭없이 교회에 나오고 교회 일에 열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정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조건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면 “너희가 나를 따르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하시며 오늘도 예수께서 우리를 향하여 슬퍼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십리 길에도 굴곡이 있거늘 사람의 일생이 어찌 평탄키만 하겠습니까? 하루에도 밤과 낮이 있고 일년에도 춘하추동이 있는 것처럼 인생 일생에는 희비애락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주위 환경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고 어떠한 경우에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 전천후 신앙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4. 전천후 신앙만이 부활의 신앙을 줍니다 (1) 부활의 신앙은 환란 중에도 동요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소한 수입의 손해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 말씀대로 말세에는 성도들에게 큰 핍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사소한 재물 때문에 동요하는 형편이니 말세에 생명과 전 재산을 바쳐야 하는 그런 시기에는 어찌하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 6:24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욥은 세상의 모든 소속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심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신앙을 통하여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적인 신앙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롬 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음 자들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에게 환란이 임한다 할지라도 동요되지 않는 자가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는 자가 됩니다. (2) 부활의 신앙은 비방에 동요되지 않는 신앙입니다. 욥의 환란시에 욥의 세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세 친구는 욥을 향해 천벌을 받았으니 회개하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비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앙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사실 독실한 신앙인에게 까닭없이 비난의 화살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지들은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들의 가진 바 믿음을 굳세게 하여 지혜롭게 이겨야 합니다. 모든 순교자들은 비난과 박해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굳게 지킨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 교계는 적극적으로 핍박자나 비방자를 정복할 수 있는 강력한 믿음을 소유한 성도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고 순전한 믿음을 가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전천후 신앙은 부활의 소망이 넘칩니다. 욥은 구속자를 발견했습니다. 욥 19:25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욥 19:26에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부활의 신앙에 넘쳐서 하는 말입니다. 욥의 경건한 신앙을 보십시오. “내가 성도를 보리라” 하지 아니하고 “내가 하나님을 보리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열 두 진주문”, “열두 천사를 보리라”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천국의 모든 것이며, 천국의 실체이며, 또 모든 신자의 즐거운 희망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욥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신앙을 튼튼히 했던 것입니다. 부활의 확신을 가진 신자라야 참된 신자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도들은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신앙을 증거하면서 항상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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