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욥의 절망과 소망 (욥 19:1-29)

첨부 1


욥은 현세에서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나 하나님 나라에서 장차 누릴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1. 욥의 절망 (1) 지상의 부귀에 대해서 실망했습니다. 욥은 최대의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동방의 제일인 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물질지상주의자는 아니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파산당하는 날이 그렇게 갑자기 올 줄을 몰랐고, 그렇게도 일순간에 잿더미화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욥이 물질에 기대를 건 것은 아니였지만 세상 부귀는 전혀 무익한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소망을 둔다는 것은 바람을 잡는 것과도 같습니다. 물질은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해 임시 차용할 성질의 것일 뿐입니다. 지축없는 기둥에 몸의 중심을 맡기면 그 기둥과 함께 쓰러지듯 물질에 중심을 둔 인생은 어이없게 실패하고 만다는 철학을 깨달았습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축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지의 대상이나 신앙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질은 마침내 소멸해 버릴 기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전 인생을 몰두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몽매무지한 사람입니다. 물질을 주신 하나님이 그 물질을 거두어 가실 때는 그보다 더 큰 복을 주실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2) 인간자체에 대해서 실망했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자 친척들은 발걸음을 끊고 가깝던 친구들은 그를 버렸습니다. 그의 집에서 일하던 계집종들이 욥을 외인처럼 취급하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던 아내는 욥의 숨소리마저 싫어했고, 아이들도 욥을 조롱했습니다. 친구의 신의와 아내의 사랑과 종들의 성실은 그 주인의 신분과 영화가 제 구실을 할 때 효력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지위와 실권이 상실되는 날에 인간 사이에 맺어진 온갖 계약관계는 취소되고 마는 것입니다. 욥은 멸시받는 날에 그가 과거에 존귀함을 받던 날을 회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가 얻은 결론은 사람의 마음엔 진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지나치게 믿는 것은 금물입니다.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서로 미소를 짓고 진실을 다짐해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서로와의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입니다. 따라서 그 계약을 올바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망했습니다. 욥은 자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고, 활동에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이나 자기가 뜻하는 바를 성취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께서 한 번 치신 바 되자 자기란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과거에 모든 사람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던 귀골이었으나 지금 그는 손도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욥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입은 그 자체까지도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입은 그 자체까지도 자기의 능력으로 오인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떼시면 인간은 자멸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욥이 자신의 무능무지를 깨달았다는 것이야말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4) 현실의 허무함에 실망했습니다. 현실보다 매정하고 차가운 것은 없습니다. 어제의 욥과 오늘의 욥은 너무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처한 환경은 너무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음으로 그는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가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화려한 것도 비참한 것도 아무런 차별없이 사라져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귀를 누려도 별것이 아니고 가난하게 지내도 별것이 아닙니다. 다 구름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또 시간에 속고 있습니다. 자기 앞에 장구한 세월이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속고 있습니다. 70노인이 되어도 자신은 청춘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신속성을 인간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맙니다. 따라서 현실에 속지 말고 시간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을 사모해야 합니다. 요 1서 2:15에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2. 욥은 절망에서 소망의 열쇠를 발견 (1) 인생의 구주를 발견했습니다. 25절에 “내가 알거니와 나의 구주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땅 위에 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욥은 절망의 심연에서 정말 위대한 발견을 했습니다. 욥은 인생의 구주가 살아계심을 깨닫고 그가 장차 땅 위에 오실 것도 알았습니다. 욥이 오실 메시야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발전입니다. 내 대신 죄짐을 지시고 나의 무죄를 변호하시며 나의 오명을 씻어주시는 구속자가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며 장차 이렇게 땅 위에 오실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오실 메시야를 대망했습니다. 구주를 발견한 이상 그가 아무리 깊은 고난의 골짜기로 떨어졌다 해도 실망하지 아니하고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인생의 참된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26절에 “나의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구원자가 살아계심을 믿은 욥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인생의 종말을 투시했습니다. 육신은 진토가 될지라도 사람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갈 것입니다. 의롭다 함을 얻은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린다는 내세관이 욥에게 있습니다. (3) 천상의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27절에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라고 했습니다. 욥은 살아계신 주를 발견하고 장차 자기도 그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 것을 깨달았습니다. 욥은 세상의 쓴맛을 절감한 동시에 하늘나라의 행복에 대한 진미를 느꼈습니다. 욥은 하나님 보좌를 너무 사모한 나머지 마음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 건너편의 행복을 확신한 자는 죽음의 강을 건너가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절망한 자가 자신을 허무 속에 던져버림으로 고된 생을 마치고자하는 자포자기가 아닙니다. 욥은 헌자 환란을 당하고 홀로 울고 혼자 슬퍼한 후에, 진리도 혼자서 발견하고 남모르는 기쁨도 혼자서 즐겼습니다. 환란도 고통도 두려워 마십시오. 환란의 골짜기에서 구주를 만날 수 있고, 고통의 계곡에서 천국가는 길목을 찾게 됩니다. 지상에서 절망하십시오 지상에서 절망하지 않고서는 하늘에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절망이 빠르면 빠를수록, 깊으면 깊은 만큼 하늘의 소망을 발견하는데 유리합니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땅 위에서는 영원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본향을 향하여 갈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