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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욥의 성결생활 (욥 31: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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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은 욥의 소유를 번영시키셨고 이 땅에서 그의 재산을 늘이셨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금으로 그의 소망이나 신뢰를 결코 삼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순전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제물이 세상에서 그의 첫 번째 목적은 아니였었고 그는 그의 재물의 풍부함이나 그의 지위의 명예로움 때문에 결코 기뻐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다음과 같은 법은 지켰습니다. 1. 예배법을 지켰습니다(23-28절) 욥은 그 주위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였으나 그는 끝까지 여호와에게 진실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태양을 바라봤고 별이 총총한 하늘에서 달의 아름다움을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우상들을 숭배하도록 은근히 유혹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는 태양과 달에 바치는 흔히 있는 복종의 표시로 그의 손에 입을 맞추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금이나 기타 귀중한 것을 삶의 궁극적 기반으로 여기거나 자연물을 신으로 모시는 행위를 비밀히 행하지도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황금만능주의 세상에서도 욥은 돈을 가지고 교만해지지도 아니했고, 돈기 없어졌다고 낙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욥의 소망은 하나님에게만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물질로 인하여 죄를 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 사랑의 법을 지켰습니다(29-30절) 욥은 자기가 법적으로만 무흠할 뿐 아니라 자기의 내적 마음 상태도 무흠했다고 선언합니다. 말세는 개인주의가 유행됩니다. 예수님은 경고하기를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대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원수까지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원수는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3:1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꾕과리와 구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전 13:13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사랑하기란 어렵습니다. 말하기는 쉬우나 실제 생활은 어렵습니다. 사랑은 희생없이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사랑할 수 있느냐는 말은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느냐는 말과 같습니다. 살전 1:3에 “사랑은 수고”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수고 없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욥은 그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보고 기분 좋아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29절). 이와 같이 욥은 사랑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켰던 것입니다. 3. 구제법을 잘 지켰습니다(31-32절) 초대교회가 잘 지키던 일입니다. 신 15:10에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했고, 잠 11:24-25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 아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했습니다. 욥은 구제의 법을 잘 지켰습니다. 다시 말해서 욥은 그의 생활 모든 부분에서 정직하였고 마음의 순전과 전심으로 살아왔다고 단언합니다. 그는 나그네에게 그의 집을 개방해 주었고 관대히 친절하게 접대했었습니다. 욥은 자기의 번영 중에서도 가사를 착하게 처리하는 사람임이 주목됩니다. “그는 길쪽으로 향하는 문은 언제든지 열어 두었습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든 자를 도와주겠다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욥은 그렇게 행하였던 것입니다. 4. 진실의 법을 지켰습니다(33-37절) 창 42:16에 “너희 아우를 데려 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나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네 심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속이는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속이는 자는 속임을 당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진실치 못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렘 9:5에 “그들은 자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않으며 그 혀로 거짓말을 하기를 가르치며 자신만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욥은 진실하게 살았습니다. 욥은 죄악을 고백하는 데 있어서도 솔직하고 정직했으며 인간의 방법으로 죄악을 숨겨 결코 허물을 가리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33절). 그는 군중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고 경멸과 모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도의 길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않았습니다(34절). 그는 그 자신의 장막에 그 자신을 숨기지 않았고 그의 입을 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과 인간 앞에서 정직하게 그의 생을 살았습니다. 욥은 그가 말한 모든 것에 대해 그의 이름을 서명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더우기 그의 대적이 그에 대해서 기록한 소송장이 그에게 있었습니다(35절). 그는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면류관처럼 머리에 쓰기도할 것입니다(36절). 그리고 욥의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고하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을 것입니다(37절). 욥은 진실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어떤 재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자신있는 태도입니다. 어떤 도전을 받더라도, 어떤 소송에 걸리더라도 자기는 언제든지 하나님에게 말할 수 있고 접근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31장은 전체적으로 고찰해 볼 때 가장 중심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본장 35-37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욥의 주장에 대해서 반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욥은 자신의 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위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욥은 독선적 인간입니까? 아닙니다. 욥을 독선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욥기 저자의 의도와는 다릅니다. 스스로 옳다고 하는 것은 교만에 해당되는 독선죄입니다. 그러나 욥기 저자는 욥기서에서 욥을 그렇게 묘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욥은 이미 서곡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순전하고 정직하다는 평을 받는 인물입니다. 이 표현은 욥을 비꼬기 위한 것도 아니며 반박하려는 것도 아니며 진정으로 욥을 칭찬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욥기 안에서 욥에 대한 그러한 표현은 한 번도 부정되지 않았습니다. 욥은 구약 성서가 말하는 율법이 규정하는 바 가장 대표적인 의인입니다. 친구의 판단이나 세상의 법 앞에서는 한 인간은 의로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는 완전한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의 의의 척도로 측정될 때 무너지고 맙니다. 욥은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그와 같은 상대적인 의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욥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이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는 상대적인 의에 사로잡혀 착각과 불평을 계속할 것입니다. 5. 물질 사용법을 잘 지켰습니다(38-40절) 욥이 한 마디 더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언재 나를 책망하는 누구의 부르짖음이 있었는가, 언제 내가 내 자신을 위하여 욕심을 부리거나,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고생하도록 했을까 하는 말이었습니다. 40절에 “그리하였으면 밀 대신에 찔레가 나고 보리 대신에 잡풀이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욥은 고백합니다. 욥은 남의 재물에 손해를 끼치지도 않았고 불의한 곡법으로 재물을 모으지도 아니했습니다. 야곱이 많은 재물을 모았지만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신 8:17-18에 “두렵건데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내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고 했습니다. 욥의 주장은 즉 그가 소유하던 재산은 욥이 정당하게 획득하여 올바르지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의 “토지”는 마치 사기와 착취에 의해 소유물을 얻는 자들에게 하듯(합 2:9-11) 그를 고소할 수 없었고 밭 이랑은 그 일에 대해 불평할 수 없었습니다(38절). 그는 결코 값을 내지 않고는 그 소산물을 먹지 아니하였습니다(39절). 욥은 자기 항의를 마무리 하면서 그 주장에 진실성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석을 향하여 호소합니다. 그는 재판에 대한 소송을 제출하고 그 소송을 간곡히 조릅니다. “아아! 사람이 누구든지 내 변명을 들어주었으면 내 이유는 너무나 정당하고 나의 증거는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나는 그 어떤 공평한 사란에게도 그것을 맡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바램은 전능자 자신이 그 일을 맡아 종결지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욥 같이 이 세상 것으로부터 자기 손을 흠없이 지킨 사람들은 자기 얼굴을 흠없이 하나님께 쳐들 수 있고, 그들이 인간들의 불공정한 비난 아래 있을 때에라도 그의 심판의 전망에 대해 즐거이 낙관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골 마음이 책망할 것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욥의 말은 끝이 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행위에 대한 욥과 같이 자신만만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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