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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마를 통한 교훈 (욥 4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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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고 하마의 존재를 평가했습니다. 이런 표현은 이 짐승이 신화적 배경을 가진 것을 의미합니다. 욥기의 저자는 지금 39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이 인간 주위에 흔한 짐승은 더 언급하지 않고 애굽의 하마와 같은 예외적이고 무시한 힘을 가진 피조물을 예로 들어 그것마저도 하나님의 능력에 복종한다는 것을 드러내려 하고 있습니다. 욥기 저자는 첫 번째 연설에서는 욥의 무지를 드러내려 하고 있습니다. 욥기 저자는 피조물이 지닌 경이와 신비를 욥에게 드러냈으나, 두 번째 연설에서는 “무능” 즉 피조물을 다 다스리지 못하는 무력을 드러낼 목적으로 하마와 악어를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수 없는 하마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찌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다스리고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1. 하마에 대한 표상 (1) 그 몸은 대단히 강대하고 튼튼한 골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힘은 그 허리에 있습니다(16절). 그의 뼈대는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 쇠막대기와 같습니다(18절). 그의 등뼈는 너무나 강해서 비록 그것의 꼬리가 크지는 않을지언정 그는 꼬리를 칠 때에 굉장한 힘으로 인하여 마치 백향목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17절). 어떤 이는 그것을 코끼리의 코라고 해석하는데 그 까닭은 이 말이 신체의 말단 부위 아무 것이라도 다 의미하는 말이며, 또 코끼리의 코에는 실로 큰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코끼리의 등과 허리는 너무 강하며 또 넓적다리의 힘줄도 너무나 억세여서 코끼리는 아주 큰 나무탑도 운반하고, 아주 많은 수의 전사들을 태우고 가기도 합니다. 어떤 동물이든 신체적인 힘 때문에 코끼리에게 닥아가지 못하는데 이것은 이들 묘사에서 주장하는 요점들입니다. (2) 하마는 땅에서 생산되는 것을 먹으며 딴 동물을 먹이로 삼지 않습니다. 하마는 소같이 풀을 먹으며 살기 때문에 모든 짐승은 사자에게서 도망하듯 그에게서 도망치지 않으며 그 앞에서 떨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짐승들은 그 주변에서 놀기까지 합니다. 이는 그들이 하마에게서는 아무 위험성이 없음을 아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하마가 들의 풀에 만족하도록 정해 놓으셨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초래될 생명의 대 살륙을 방지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원래적 산물로 지정해 주신대로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와 실과를 먹고 살도록 권하사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십니다. 말과 소처럼 코끼리의 힘까지도 고기없이 지탱이 되는데 사람의 힘이라고 해서 왜 유지가 안된다는 말입니까? 육식도 귀하나 채식은 더 귀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조용하고 평화스런 생활을 권장시켜 줍니다. 사자와 같이 자기 주변 사람들을 죄다 두렵게 하는 것보다 코끼리처럼 자기 주위의 이웃 사람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 복있는 자입니다. (3) 하마는 그늘진 나무 아래에 거하는데 나무들은 그들을 그늘로 덮습니다(21-22절). 그곳에서 하마는 자유로히 마음껏 공기를 들어 마시지만, 사자는 먹이를 사냥해서 사는데 휴식할 때가 되면 은밀하고 어두운 굴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으며 사자는 그 안에서 은밀하게 숨어서 기처합니다(38:40절). 이처럼 타인에게 두려움이 되는 자들도 때때로 자기 자신에게 공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자들을 스스로 안락할 것입니다. 갈대와 소택지와 시냇가의 버드나무는 방어하는 성곽으로선 아주 연약하고 가냘픈 요새에 불과하나 어느 누구도 해할 듯이 없음으로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을 막으면 안전하게 해 주기에 족합니다. (4) 하마는 폭음가이지만 맑은 물을 그토록 마십니다. 그의 세 친구는 거대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공급을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23절). 하마는 너무 많이 마시기 때문에 누구나가 생각하기를 만약 그것에게 시간만 주고 재촉하지만 않는다면 강이라도 다 마셔 없애 버린다고 할 것입니다. 하마는 물을 마실 때 두려움 중에 마시는 동물같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과 안전을 자신하고 있음으로 마실 때에도 필요한 속도 이상으로 서둘지 아니합니다. 하마의 눈은 자기가 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가 오래도록 물없이 지내다 갈할 때는 “자기가 요단강이라도 그 입에 다 마실 수 있는 줄로 믿으며 그것을 그의 눈으로 삼키기까지”합니다(24절). 2. 이런 표현의 용도 이상 큰 동물들은 우리들이 구경거리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크신 하나님 앞에 우리 스스로 겸손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논증으로써 제시되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이렇게 크고 놀라운 동물을 지으셨습니다. 이 동물들은 하나님의 작품이요, 하나님 지혜가 인출해 낸 고안품이요, 그의 능력이 만들어 낸 산물입니다. 15절에 그 것은 “내가 만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짐승이 가진 힘이나 모든 동물의 힘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유래됩니다. 이 짐승은 동물의 종류중 으뜸이라 불리우며 “하나님의 길들인 것 중 으뜸이라” 칭함을 받고 하나님의 권능과 기대에 대한 좋은 예증이 됩니다. 코끼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하부 영역에서 창조물 중 으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하나님은 하셨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다른 네 발 달린 짐승들의 창조와 같은 날에 사람과 함께 코끼리도 지으셨습니다. 이에 반하여 어류와 조류는 이보다 하루 전에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감으로 하여금 코끼리와 같이 같은 땅 위에서 살고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짐승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동료로서 공동으로 보호를 받는다고 합니다(시 36:6). “하마는 내가 너와 함께 지었다 내가 그 짐승을 너와 마찬가지로 지었는데 그 짐승은 나와 싸우려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마는 하나님에 대하여 감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나가는데 같은 조건하에서 창조된 인간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거역하고 죄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책망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고하신 능력과 주권에 대해 순종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창조된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3) 19절에 “그것을 지으신 자는 그의 칼이 그것에게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그를 지으신 손이 그의 큰 체구와 힘에도 불구하고 코끼리의 지으신 것을 다시 마음대로 취소하실 수 있으시며 그를 벌레나 파리 만큼 쉽게 죽이시되 아무 어려움이 없이 죽이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그 존재를 부여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주신 존재 자체를 빼앗아 가실 수 있습니다. 그 자신의 것에 대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그가 행하실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멸하실 능력도 가지고 계시며 태초에 무로부터 창조되라고 쉽게 말씀하셨듯이 그 피조물을 무로 돌아가라고 쉽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지으셨고, 만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에게만 복종하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를 어기는 것은 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마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대로 겸손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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