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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뿌리 있는 신앙에 축복의 열매 (시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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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방은 물이 넉넉지 못합니다. 성지 이스라엘은 산에 나무가 울창한 것이 아니라, 요단강 계곡에 숲이 우거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 근처 물대기 편리한 곳에 오렌지 밭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야 뿌리가 잘 내려지고 무성하게 잘 자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 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50편, 제 1편이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된 것은 뜻 깊은 일입니다. 여기 “복 있는 사람”은 히브리어로 “아쉬레하이쉬”로 직역하면 “매우 복 되도다 그 사람”이 됩니다. 복 있는 자에 대하여 세상 사람과 신자들 간에는 서로 견해가 다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복의 개념은 물질적인 것, 금전, 권세, 장수 등에 두는데 반하여 그리스도인들의 복은 영적인 것이요, 하늘의 것이요, 영원한 것을 가리킵니다. 누구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참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1. 악을 떠나는 생활입니다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악에서 떠나지 아니한 자는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만사가 다 형통치 못합니다. (1) 형통치 못한 자는 어떤 자입니까? 1) 자기 죄를 숨기는 자입니다. 잠 28:13에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한은 형통하지 못합니다.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아간이라는 사람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 금 50세겔을 훔쳐 장막 속에 숨기다가 이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자 하찮은 아이 전쟁터에서 완전히 패망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죄는 모든 것을 망하게 합니다. 기도를 막아버립니다. 축복을 막아 버리고 사명의 길을 막아 버립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무슨 일이 자꾸 막히면 아직도 자복하지 않은 숨은 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반대 입장에 서는 자 형통치 못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요나는 가는 길이 막히고 사경에 빠졌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대항하는 위치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채찍을 면치 못합니다. 3)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입니다. 렘 10:21에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치 못하며 그 모든 양떼는 흩어졌도다”고 했습니다. 찾지 아니한다는 말은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2) 악에서 떠난 자는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만사가 형통합니다. 1) 영혼이 잘 되는 자가 형통합니다. 요 3서 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고 말했습니다. 사업이 잘되는 것도 좋으나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사업이 영구적으로 잘됩니다. 2)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가 형통합니다. 엡 6:1-3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3) 말씀을 지키는 자가 형통합니다. 신 29:9에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32,500가지의 축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믿고 지키는 자가 형통합니다. 마 8:13에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렘 33: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4)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 형통합니다. 창 39:2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입니다 2절에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율법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주장, 생활, 고집을 포기해야 합니다. 탕자가 아버지 품에 돌아오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돼지와의 옛 생활을 청산하고 더럽고 남루한 옛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 입고 아버지 품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쪼개면서 비판적 자세로 흠집이 있는가 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쪼개며 믿고 생명의 양식을 삼으려는 자세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의 신앙이 자라서 그의 영적생활의 힘이 튼튼해집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고백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조용한 구석에서 명상하기 전에는 평안을 얻을 수 없었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생활은 진리의 말씀에 믿음의 뿌리를 내린 자입니다. 개신교는 성경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에 뿌리를 내리는 자가 참된 자유의 열매를 얻습니다. 진리가 없는 자는 뿌리가 없는 자로, 뿌리가 없는 자는 매우 위험합니다. 계 1:3에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뿌리를 진리의 말씀위에 깊이 내리시기 바랍니다. 3. 행복의 결실 (1) 소망에 찬 생활입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이 소망에 넘치게 됩니다. 사막이나 광야 같은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수 곧 성령의 은혜와 말씀의 진리로 풍성한 인생인 것입니다. (2) 결실하는 생활입니다. 나무뿌리가 생명의 시냇가에 뻗쳤음으로 계절에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인생 100년을 산다 해도, 백만 거부가 된다 하더라고 결실 없는 인생은 모두가 헛됩니다. 하나님 앞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는 칭찬과 상을 받는 인생이 되십시오. (3) 형통하는 축복을 받는 생활입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에 참된 번영이 있고 참된 성공이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야곱에게, 모세에게, 다윗에게 이러한 형통의 축복이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뿌리 있는 신앙은 복된 생활입니다. 악을 떠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생활입니다. 기도로 구하되 믿음으로 구하는 생활입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찾아오는 신앙의 감격, 감사, 평화, 기쁨은 가눌 길이 없습니다. 이런 생활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이 소망에 넘치는 생활입니다. 결실하는 생활입니다. 형통하는 축복이 임하는 생활입니다. 뿌리 있는 신앙에 축복의 열매를 많이 맺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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