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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복된 성도(부정을 통한 복된 삶) (시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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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피조 세계에는 온통 삶의 성분들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삶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복된 삶, 즉 의인의 삶이며, 다른 하나는 불행의 삶, 즉 악인의 삶입니다. 이 두 삶은 항상 정반대입니다. 먼저 복된 삶에 대해서 생각합시다. 먼저 복된 삶은 부정하는 삶입니다. 소극적인 면에서 범법치 않는 삶은 말합니다.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 했습니다. 1. 악인의 꾀를 좇지 않습니다 악인이라는 원어의 뜻은 죄에 민첩한 자, 혼란시키는 자, 활동력 있는 악한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꾀도 있고, 말에도 능하며, 행위에도 민첩하고 기동성이 있어 어두움의 일에 효과를 나타내는 지능적인 자란 말입니다. 악인은 특수한 죄인을 말함은 아닙니다. 악인은 율법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떠난 일반적인 사람 전제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악인은 의인과 대립하는 존재로 악의 생활 철학을 체계적으로 수립한 자를 말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이 그의 택한 백성을 연단하는 도구로써 잠깐 동안 머물게 하는 악의 집단입니다. 시편은 이 악인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죄인, 오만한 자, 거만한 자, 행악자, 간사한 자, 살인자,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 허망한 자, 불의한 자, 비난하는 자, 능욕하는 자, 복수하는 자, 흉악한 자, 오해하는 자, 원수, 대적자, 들짐승, 개들 등으로 쓰여 졌습니다. 이들은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자들입니다. 본능대로 먹고 마시고 뛰고 욕구하고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무리입니다. 저들은 중심에 간악함을 쌓은 자들입니다(시 41:6). 혀가 악을 꾀하며 날카로운 삭도같이(시 52:2), 하나님이 없다(시 14:1)고 하는 자이며,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지 않는 자(시 74:8)입니다. 이런 이들은 그저 무모하게 사는 자들이 아니라 악으로 구성되는 독특한 생활원칙과 계획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무리를 좇지 않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악인은 우리들에게 게으른 것으로 꼬입니다. 절개를 팔아먹는 것으로 꼬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악한 자에게 이기기 위해 엡 6:6에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즉 무장하라고 했습니다. 무장함으로 사탄의 궤계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면 답답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 55:8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계획이 내 계획과 다르기 때문에 답답하게 보이나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따라 순종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2.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죄인이란 말은 히브리어 말에 보통 세 가지 경우에서 많이 씁니다. ① 반역자란 뜻입니다. ② 불법자란 뜻입니다. ③ 푯대에 어긋나는 자, 목표에 어긋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목표를 맞추지 못한 것은 푯대에 어긋난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적중하여 도달하는 그것이 인생의 최대 목적입니다. 그러나 죄인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죄인의 길은 하나님의 푯대에 어긋나게, 목표를 맞추어 걸어가지 않는 자의 행로를 말합니다. 그 길은 가인의 길이요, 발람의 길이요, 가롯 유다의 길입니다. 죄인은 불법자들 입니다. 학교에는 학교법, 회사에는 회사법, 단체는 단체법, 국민에게는 국민의 법, 사람에게는 양심의 법이 있습니다. 법이라는 말은 한문에 ?에 去입니다. 물이 흐르는 대로 접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을 위해 제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정도 할 수 있고, 철회도 할 수 있고, 제정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뜯어 고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법은 사람이 만들었기에 새로 고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으므로 아멘하고 순종할 뿐이며, 하나님 외에는 손 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법대로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정성껏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면 하나님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복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3.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란 자기를 절대화 시키는 독선주의자를 가리킵니다. 오만한 자는 거룩한 것, 선한 것, 의로운 것, 양심적인 것, 참되고 진실 된 것은 무엇이나 웃음거리로 여기고 조롱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입니다. 의인은 언제나 하나님만 절대화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랍니다(시 3:2). 저들은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고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시 10:4-6에 “여호와가 감찰하지 아니한다”고 조롱합니다. 그들은 자기를 절대화한 나머지 하나님의 거룩을 모독하며 남의 경건과 의를 비웃습니다. 그는 자기 절대화가 신조이기 때문에 자기를 굽히는 일이 없습니다. 그의 생각에 겸양과 사랑과 희생의 미덕이 없습니다. 그의 독선과 오만이 형제의 마음에 피나는 상처를 주고도 오히려 그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예컨대 노아 시대의 사람들, 롯의 사위 같은 자, 인자가 나타나기 직전의 사람들입니다. 잠 1:22에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잠 3:34에 “하나님은 거만한 자를 비웃는다”고 했습니다. 잠 19:29에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 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 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남보다 앞서고 교만하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는데 거만하면 미련퉁이고, 하나님을 대신하겠다고 오만하면 미치광이며, 교만해도 복이 끊어지는데, 아무 것도 없으면서 꺼덕거리는 교만은 미련퉁이며 하나님을 대신해 보겠다는 오만은 미치광이입니다. 복 있는 자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까지의 봉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 받을 사람이 누구입니까?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첫째로, 열심히 일하면서 절개를 지키는 자입니다. 둘째로, 성경을 배워서 지키는 자입니다. 셋째로, 모든 것이 남보다 앞서되, 교만하지 말고, 거만하지 말고, 겸손히 선한 일에 봉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실존하신 하나님을,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것은 위대한 지식이 아니라 어리석은 독백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천지를 보아라, 삼라만상을 보아라, 저 하늘의 별들과 태양을 보아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라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신 것이라”라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복된 삶의 소유자는 부정의 삶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성경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아가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부정의 생의 철학입니다. 오늘의 불행한 자들은 불의에 동의하고, 불의에 동참해 버리는 유혹에 빠지는 자들입니다. 예 라 하는 경우에 예 라 하지 못하고 아니요 라는 경우에 아니요 라고 못하면 악인이 됩니다. 반대로 예 라 하는 경우에 예 라하고, 아니요 하는 경우에 아니요 하면 의인이 됩니다. 이 부정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닙니다. 긍정을 위한 부정입니다. 그때 부정은 힘이 있습니다. 이 부정은 죽기까지의 정도입니다. 다니엘 경우가 그러했으며, 스데반의 경우가 그러했으며, 세례 요한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앞으로 얼마를 이 세상에서 더 살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에게 기원하기는 여러분의 삶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건강한 몸과 행복으로 장수를 누리시며 소원 성취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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