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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삶의 비결 (시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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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모양이 있고 또 사람마다 사는 의미나 목적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짧은 인생 동안에 때로는 웃기도 하고 때로는 울기도 하며 어떤 때는 기뻐하며 어떤 때는 슬퍼합니다. 그런데 기뻐하고 슬퍼하는 기준을 어디다 두었느냐 하는 것은 삶의 의미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힐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침 자리에서 눈을 뜨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 진심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하고 의미 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그러나 분석해 보면 찾고 있는 것이 하나인데 곧 행복입니다. 행복의 내용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으나 모든 사람이 이 행복을 얻으려고 애를 씁니다.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영어로 Happy라고 합니다. 그 뜻은 기쁘다 라는 뜻입니다. 만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만족한 삶을 누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에피투투스에는 어떤 사람이 자기 다리를 비틀었습니다. 자꾸만 비트니까 꾀어 돌아갑니다.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다리를 비트는 사람을 보고 “여보시오 그거 그냥 비틀면 내 다리가 부러질 거요”하고 말했으나 계속 비틀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는 말이 다리가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아니하고 다리를 비튼 사람을 향해서 “내가 뭐라고 합니까? 그냥 비틀면 부러질 거라고 않았던가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만일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이는 사람이 아니고 목석일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오도성불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나”라는 것을 완전히 없이 할 때 즉 무아지경에 들어갈 때에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행복이란 메데르링코의 파랑새 얘기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쫓고 쫓아도 끝내 붙잡히지 않고 마는 한 날의 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참 행복은 찾기 어렵고 행복한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인생을 공수래 공수거라 하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허무한 인생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심령은 고독하거나 허무한 생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고독한 벽을 무너뜨리고 넓고 깊은 사랑으로 우리 영혼을 감싸줍니다. 마귀는 유혹하기를 “잠깐만 쉬어라 기회는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반석같이 든든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하나님과 살아가는 삶에는 마귀의 유혹이 드리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항상 함께 있는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자는 제일 가련한 자입니다. 마음에는 항상 불안과 공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살아가는 삶에는 기쁨과 찬송이 가득하고 하나님이 없는 삶은 슬픔과 울음뿐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사람은 모든 생활 주변에서 주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 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세웠고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참 행복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성도에게 있어서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에 불과합니다. 돼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비록 그가 탕아일지라도 돼지의 먹이를 먹고 배부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만 참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변함없이 우리 앞에 모셔야 합니다. 형통할 때만 아니라 역경중에도, 건강할 때만 아니라 병들었을 때도, 젊어서 만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살 때만 아니라 세상을 떠날 때도 모셔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내 우편에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시온산이 온 산을 둘러 지킴으로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함 같이 그가 내 우편에서 나를 지켜 보호하심을 느낄 때에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겠습니까? 새는 공중에 날 때 기쁘고 고기는 물이 있어야 기쁜 것같이 인생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때 참된 행복이 있음같이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우편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하는 확신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오른편에 계셔서 필요에 따라 우리를 도우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동치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퇴보의 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우편에 계신 것을 믿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죄의 공포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참 행복을 누리고 삽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 우편에 계심을 믿는 신앙으로 요동 없이 행복 된 생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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