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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미 (시 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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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은혜라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1. 그는 공의를 행하시는 중에도 긍휼을 기억하십니다 인류는 죄 값으로 말미암아 당장 멸망을 받아야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때까지 보살펴 주신 것은 그의 불쌍히 여겨 주시는 은혜 때문입니다. 인류의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질병도 들어오고, 사망이 생기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그 가운데서도 당장 멸망을 받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큰 은혜임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받는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으나 이것을 모르는 것은 사람의 죄악 된 성품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만 깨달으면 하나님의 공의 중에도 자비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의 죄악을 아프게 여기는 자는 징계의 고통을 받는 중에 더 받기를 원합니다. 토마스 잔티 프라타누스의 기록에 의하면 “어떤청년이 도둑질한 일로 재판을 받았을 때에 그는 자신의 죄 값이 더욱 깊게 느껴져서 자기가 사형 받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자기를 토막 토막베어달라고까지 법관에게 애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죄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통회를 가질 때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징계도 달게 여기어 은혜 로 깨닫게 됩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처음에는 비록 작게 느껴져 도 무궁한 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 뒤에 받은 은혜가 더 많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가 현세에서 우리에게 거듭나는 은혜를 주셨으나 내세에는 완전한 성결을 주실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죽는 날에 위안과 확신을 주시는 것도 은혜이지만 우리가 죽은 후에는 더욱 큰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래에 받을 은혜가 더 클 것을 알고 기뻐해야 됩니다. 롬 12:12에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라고 했고, 롬 8:18에는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은 임종시에 이 귀절을 여러 번 읽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늘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은혜도 많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질병에서 고침 받은 일도 맡고, 위험에서 건짐 받은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의 도와주신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우둔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4. 성도에게는 모든 슬픈 일들과 괴로운 일들이 복이 됩니다 슬픈 일과 괴로운 일이 여러 가지 유익을 주어 그것들이 우리의 정욕을 죽이며 우리의 마음을 헛된 세상에 두지 않게 하고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게 합니다. 그런 괴로움이 있는 시기가 실상 장차 받을 큰 복락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기다리는 시기는 장차 올 놀라운 축복을 해산하기 위한 것이니 꾸준하게 견디며 기다려야 합니다(사 30:18).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 참아 기다릴 시간을 무용하게 보고 조급하게 덤비다가 실패합니다. 이는 미련한 아이가 과실이 익기도 전에 따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 열매가 잘 성숙하여 저절로 떨어질 즈음에 따먹으면 얼마나 유익할 것입니까? 5. 은혜에 대한 기도와 찬미가 있어야 합니다 6절에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 우리는 일이 잘되어 갈 때 그 상황이 항상 그러할 것이며 결코 변하지는 않으리라는 희망을 갖기 쉽습니다. 날씨가 변하기 실운 것처럼 모든 상황은 변하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가 잘못된 것임을 알았을 때 우리는 다윗처럼 우리의 어리석은 방심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2) 시인은 갑자기 환란에 처하자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7절에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상황의 모든 변화 속에서도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형통이 하나님의 은총의 덕택으로 돌렸던 것 같이, 그는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우는 것이 곤경의 원인이 되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우신다면 비록 다른 재앙이 없어도 선한 사람은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해가 지면 반드시 밤이 오며 달과 뭇별들은 결코 낮을 이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그를 환란에서 건지시고 그의 예전의 형통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그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었습니다(11절).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렀던 것은 잠시 뿐이요, 다윗의 울음은 단지 하룻밤 동안이었습니다. 그가 거룩한 섭리에 겸손히 복종하여 입었던 베옷은 벗겨졌습니다. 그의 슬픔은 평정되었고 두려움은 진압되었으며 그의 위로는 회복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기쁨으로 둘러 싸였습니다. 기쁨이 그의 장식물이 되었고 힘이 되었으며 띠가 허리에 둘리듯이 그에게 꼭 연결되었습니다. 그의 슬픔은 찬미로 변했습니다. 이 찬미는 영원히 지속될 찬미였습니다.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을 끝까지 지키리라는 비장한 결의를 나타내고, 찬미할 새로운 소재가 결코 부족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가 이러한 것이 장차 영원한 업이 될 곳으로 가게 되리라는 은혜로운 소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자는 복되도다 저희는 항상 그를 찬송하리라” 이처럼 우리는 우리와 관련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섭리에, 즉 궁핍함과 풍부함. 긍휼과 심판에 대해 노래해야 하며,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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