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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의 환란에 대한 간청 (시 4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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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의 환란(9-16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함께 하신다는 은총의 표현을 원했습니다. (1) 9절에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고 기록된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주께서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현재의 불행과 극심한 재난을 슬퍼하면서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였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돌봐주셨는데 어찌하여 지금은 내버리셨는지 그 고난 받는 이유를 이스라엘 민족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 55:8-9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시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시인이 그 알기 어려운 고난을 앞에 놓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낙심하여 비관하게 될 때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그런 생각은 잘못입니다. 롬 11:1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10-11절에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먹힐 양 같게 하시고 열방 중에 흩으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적들이 승리하게 되니 원수들은 양을 잡듯 우리를 예사로 살해하고 도살자들처럼 그 일을 업으로 삼으니, 굶주린 자가 음식을 먹듯 우리를 죽이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양이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저항할 수도 없이 끌려가고 맙니다. 신 32:30에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 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좇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라고 모세는 말하였습니다. 시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원수들의 손에 의해 원수들이 하자는 대로 맡겨진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죽음보다 백배나 더 심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은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로 다 분산되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 그들의 모든 영광과 더없는 행복은 한 하나님, 그리고 한 왕 아래서 한 몸을 이루는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원수들에 의해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포로의 생활이 하나님의 저주처럼 무섭게 느껴진 것입니다. (3) 그들은 원수들에게 멸시받았고, 가능찬 모든 치욕스런 행위가 그들에게 가해졌습니다. 그들은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조소와 희롱을 당하였고 태양 아래서 가장 보잘 것 없는 백성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들의 고난은 저들의 치욕으로 변하였고, 그들이 당하는 고생은 원수들의 조롱거리 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패전 국가는 승전 국가 앞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는 법입니다. 그런 수모에서도 이 시인은 행복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모든 원수들까지도 재제하실 수 있는 만군의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간청 이 시인은 자기와 자기 민족이 그런 고난을 받을 원인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범죄사실이 없이 민족적 환란을 받는 것을 이 시인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이렇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1) 17절에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최악의 경우였었나 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주를 잊지 않았으며 주의 약속이 이뤄지길 기다리며 살아갔습니다. 비록 우상 숭배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정복했으나 그 까닭으로 해서 우리가 그들의 우상들이 더 낫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민족의 압제 하에서도 주의 진리에서 지켰습니다. 그런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라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이 이방민족의 압제는 받았을지언정, 그들의 영적생활은 도리어 유복하였습니다. 혹 평안한 환경에 처한 자들이 행복한 것 같으나 그들의 영적생활은 헤이해지 는 법입니다. 경건 된 참된 증표는 깊은 고난 중에도 마음이 오직 하나님만 향하여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망의 그늘 아래에 있을지라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지시하고 계심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극한 절망에 이를 때에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하여 아무리 어렵고 무거운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시는 성령의 은혜와 우리에게 인내와 용기를 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기억합시다. (2) 21절에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 시인의 경건이 얼마나 순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마음속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신앙이 깨끗하였음을 증거 합니다. 진실한 신자는 하나님이 자기 마음을 아신다는 신념 밑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보다 하나님의 눈을 무서워하며, 사람이 그를 알아줌보다 하나님의 알아주심으로 만족했습니다. (3) 이스라엘 민족이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간구함 23-26절에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리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에 구푸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였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간언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실 거라고 믿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주무신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의 탄원은 온당한 것이었습니다. 저들 자신의 참상 이것은 하나님으로 저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였습니다(25절). “우리 영혼은 진토에 꾸푸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였나이다”라는 말씀은 벌레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날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이 수그러진 영혼을 소생시키시지도 뭇하고 우리의 슬픈 상태에서 스스로 회복하지도 못합니다. 이러한 때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자비를 즉,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불평과 조급함 속에서 간구한 것이 아니라 겸손과 대망을 가진 간절한 기도를 올린 것입니다. 시인은 원망하는 마음을 없이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보며 그 소망을 이뤄주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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