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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기도 (시 5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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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에는 다윗의 기도문이 많이 실려 있는데 오늘 본문은 다윗의 대표적인 기도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51편은 주제가 뚜렷한 매우 유명한 시이기 때문에 “참회의 시”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깊이 참회하는 죄인의 심경이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여류작가 J 여사가 어느 월간 교양지에 “어느날 내 존재 무게”라는 수필을 발표했었습니다. 수필 내용에는 “나는 지금까지 생각으로도 죄를 짓고 행동으로 죄를 저지르는 일, 그것만으로 죄의 뿌리가 되는 것인 줄 알았었으나, 내가 존재함으로 해서 그것이 남에게 거슬리는 일이 될 때가 있는 줄을 알게 되었고, 어떤 때는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 그루턱 거기에 남이 걸려 넘어지는 일이 종종 생겼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의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한적한 봄 날 오후의 일이었다. 한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느라고 서 있었는데 어느 빈 택시 운전사가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내 곁을 쏜살같이 지나가다가 반대편에서 좌회전하던 차와 정면으로 부딪쳐 차체가 크게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운전사가 혹시 내가 승객이 되어 주지 않을까 하고 눈을 팔던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음을 즉각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무척 당황했었다. 나의 의사나 행위와는 전혀 관계없이 생긴 사건이었지만 내가 그때 거기에 있었던 것만으로 남에게 큰 손해를 끼쳤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케 만들었다. 내가있었던 것만으로 하여 남이 나를 오해하고 역겨워하고 괴로워하는 일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한두번이 아닐 것입니다.” 내게 아주 친한 친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교적 무난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첫 목회 현장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일생에 지울 수 없는 아픔의 사건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선임자와 가까왔던 어떤 교인으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해 생긴 것으로 그 친구와 선임자 사이가 불신의 관계에까지 이르렀었고 전 교회가 선임자를 불신하는 사태로 번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교회가 파국에 부딪쳐버리고 그에게는 커다란 아픔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가 거기 그때 있었던 것만으로 하여 생긴 깊은 실존의 아픔이었습니다.” 생각하면 우리의 존재란 무척 아픈 오점 같습니다. 나의 존재가 남에게 기쁨을 주기보다 역겨움을 끼쳐주는 때가 훨씬 많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내가 무심하게 지껄였던 말과 무의식 중의 행동이 남에게 큰 고통이 되고 큰 상처가 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모태에서 이미 죄인이었다”는 저 다윗의 절규는 자기 범죄에 대한 아픔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아픔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까? 존재의 아픔은 모든 범죄의 아픔보다도 선행되는 것일 것입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과 이스라엘의 이름을 한 몸에 걸고 구척장신의 무시무시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대항해서 싸우러 나갔던 믿음의 소년을 연상합니다. 사울 왕의 질투를 받아서 몇 번 씩이나 암살당할 뻔한 일을 당하면서도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점을 인정하여 피해 다니던 믿음의 사람 다윗을 생각합니다. 남정북벌 하면서 이스라엘의 영토를 넓힌 위대한 장군으로서의 다윗을 생각합니다. 압살롬의 반란을 받았어도 압살롬이 죽자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하고 울던 눈물의 사람 다윗을 생각합니다. 가야금을 타고 노래 부르던 시인이요 가수였던 다윗을 생각합니다. 마음씨 바르고 믿음 좋고 용기있는 재능이 많았던 다윗의 생애는 훌륭하고 위대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인간이었기에 욕정에 울고 혈통에 울고 사람의 뜻에 따라 죄를 져야 했던 인간이었습니다. 시편 51편에는 인간 다윗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수 골리앗을 쳐부술 때의 패기도 없고, 남정북벌할 때의 용장의 모습도 없고, 천하를 호령할 때의 임금의 위엄도 없고, 오히려 죄 씻음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려야 되는 인간 다윗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은 인간을 이렇게 고백하고 했습니다.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서에 인간의 조상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이래 인간은 유전적으로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고 말한 것처럼 다윗도 인간을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죄의 책임을 자기 모친이나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에게 전가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받게 되었고 세상의 일로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4절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라고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그가 실제로 범죄한 것은 그의 충신 우리야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그의 장군 모압에게 였습니다. 왕상에 보면, 다윗은 충신 우리야에게 배신과 살인죄를 졌고 밧세바에게 간음죄를 졌으며, 모압 장군에게 음모죄를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죄 값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됨을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나의 죄를 누가 사해 주겠는가? 사람이 사해 주는 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사해 주셔야만 내가 살겠다.” 4절에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생애에는 우리가 배울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죄를 짓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지은 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 어떻게 했느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죄를 짓고 나서 그 죄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거나 환경과 사회에 돌리면서 변명하며 살아갈 것이냐,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람, 사랑의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 세상 보통사람들처럼 속인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했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 위대한 성도, 위대한 임금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호소한대로 죄 씻음을 받았고 서원한대로 많은 죄인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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