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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의 찬송 (시 7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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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76편은 전쟁시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대하시고 용맹스러우며 근엄하시고 천하에 대적할 자 없는 무적의 영웅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이 시는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산혜림의 군대가 멸망시키는 사명을 지닌 천사에 의해서 멸망 당했을 때 지어진 시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바삿시대에는 다른 두 종류의 승리를 거두어 종교적으로 개가를 올렸던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 시편의 주제가 될만한 것입니다. 후에 이 시는 신년 축하식에서나 절기 행사에 하나님의 등극을 찬양하는 의식용으로 쓰여진 찬송시의 하나입니다. 1. 믿음으로 이기도라(1-3절) 인간의 힘으로만은 감당할 수 없는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면 이것을 기적적인 승리라고 말합니다만 여기서 이스라엘의 시인은 이 승리로 인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신 이름이 분명하게 유대 민족의 조상에게 알리어 졌다고 합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하면서도 적은 일에서 큰 일에 이르기까지 자칫 하면 자기의 힘으로나 자기의 능력으로만 이기려고 하는, 그리고 그대로 되는 것같이 보이는 때면 금방 하나님 대신 자기가 자기에게 최고의 권위인양 자부하고 교만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이 기적적 승리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널리 전파하게 되었다고 하는 신앙적인 표현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경험이 풍부해도 권력을 가졌다 해도 마귀는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저희를 도저히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확신을 가지면 마귀 세력을 능히 이기게 됩니다. 1절에 “하나님이 유다에 알린 바 되었으며 그 이름은 이스라엘에 크시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 이름이 알려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승리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그에게 영광이 돌아가게 됩니다. 2절에 “그 장막이 또한 살램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계신 그 장막이 예루살렘에 있고 그 처소가 시온에 있다하여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하나님 계신 곳으로 지정하여 표현하였으나 신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어디서나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와 함께 계시며 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의 몸으로 성전이 되게 하신다고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는 하나님의 절대한 보호 밑에 있다는 것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날 성도들은 하나님의 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시 84편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으로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전에 거하는 자 복이 있도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2. 잠자는 병거와 말(4-9절) 이스라엘은 본의 아니게 이 슬프고 아픈 경험을 언제나 당해야만 했었습니다. 강대국들이 전쟁을 일으키기에 당하는 아픔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 모압과 싸워야 했고, 가나안 땅에 거점을 잡고자 여리고와 아이 성을 공격하는 싸움을 해야 했고, 가나안 땅을 정착하려 하니 많은 국부전을 해야 했고, 또 팔레스틴의 새로운 침략자인 블레셋의 지배하에 들어가지 않으려니 오랜 세월 동안 블레셋과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왕국이 독립 국가로 존립해 나가려면 주변의 강대국들의 침략을 막아야 했고 강대국 세력을 막자니 주변 연합국과 동맹도 결성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전쟁의 역사 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전쟁으로 사회 개혁도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군사비를 보충하기 위해 과중한 세금도 징수할 수밖에 없어서 경제 제도의 변친까지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전쟁 경험에서 얻은 고통과 비애의 경험은 그들의 신앙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농경적인 하나님의 관념이 이제 전쟁을 지배하시는 하나님, 경건한 이스라엘에게 항상 승리를 가져오시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시 3:6에 “천만 인이 나를 돌려치려 해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시 27:3에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을 칠지라도 내 마음은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녕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전쟁에 능하신 분으로 신앙하게 되었습니다. 6절에 “야곱의 하나님이여 당신이 꾸짖으실 때 병거와 말이 잠을 잡니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용맹, 솔로몬의 지혜가 아무리 훌륭해도 싸움을 중지시킬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 시인은 병거와 말을 잠잠케 하실 뿐 아니라 3절에 “화살과 방패의칼”로써 무기를 무력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5절에 “잠을 자고 손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무력하게 만드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이런 능력의 하나님께서 한 번 진노하시면 세상의 아무 것도 대항할 수 없으며(7절), 하나님이 세상을 지배하시고 인간의 하는 일을 간섭하시기 때문에 온 땅이 두려워할 것 밖에 없습니다. 3. 하나님을 찬양(1-12절) 이제 하나님의 최후 승리가 우리들에게 큰 축복과 찬양이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끝나고 승리만이 있습니다. 모두 찬양으로 변한 것입니다. 전쟁이 일단 끝났는데 아직 적개심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거룩한 뜻이 아닙니다. 전쟁이 일단 끝나면 원수일지라도 서로 부둥켜 안고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존엄성 있는 인간이 될 것입니다. 몇년 전 이스라엘 국회가 벤 구리온 수상에게 왜? 적국이요 유태인 학살을 감행한 독일에서 무기를 사오느냐고 치를 떨면서 대들었던 일이 있습니다. 이 때 벤 구리온 수상은 어제의 독일은 오늘의 독일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어제의 원수는 오늘의 원수가 아닙니다. 이긴 자나 진 자나 다같이 두 손을 들어 하나님의 절대 권능을 찬양하며 그 모든 분노의 감정을 소산시켜야 한다는 이 시인의 위대한 정신에 오늘 우리들의 머리를 숙이게 합니다. 어려운 때 하나님께 맹세하여 놓고 평안하여지면 다 잊어버리는 것은 더 무서운 범죄 행위인 것입니다. 따라서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서원한 예물을 바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권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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