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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한 처소 (시 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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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연약하나 하나님은 영원한 우리의 안식처입니다. 하나님은 대대부터 우리의 거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대대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부돌와돌’인데 그것은 ‘세대에서 세대로’라는 뜻입니다. 거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마은’이라는 말인데 ‘피난처, 안전지대’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 위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잘 살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도 시간이 허락되지 않고 공간이 또한 우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초조하고 불안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존하는 하나님에게 안길 때, 우리의 연대는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고후 5:1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노라”고 기록했습니다. 스데반이 돌무더기 속에 전신이 터져 생매장을 당하는 그 처절한 최후 순간에도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주고 자기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고 숨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토록 장렬한 순교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거처로 삼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1. 우리에게 분명히 영원한 처소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불안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모세가 미지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40년 간이나 정처없는 광야생활에서 노고의 일생을 보낸 것처럼 우리의 생애는 청일전쟁, 노일전쟁을 비롯해서 제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다시 6 ·25사변을 사변을 겪고, 동서양 냉전 등 이제 앞으로는 세계핵전쟁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거처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무궁한 세대에 이르도록 우리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안식처가 있다고 성경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빈 들판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끼니를 이으면서 미지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고달픈 여행만을 계속하면서도 “산들이 생기기 전에, 아직 땅과 세계는 주께서 조성하시기 이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처소”라는 노래를 이스라엘 백성은 불렀던 것입니다. 그들 앞에는 두려운 방해가 있었고, 만 가지의 역경과 적군의 방해와 고난이 청첩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런 역경과 고난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만이 자기와 그 백성들의 영원한 처소요 안식처라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2. 영원한 처소는 인간관계 개선의 전당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인간들의 잡다한 관계로부터 오는 권태로운 생활에서도 가정은 사랑과 봉사로써 서로의 관계를 가장 아름답게 형성해 주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자녀가 서로 믿지 못하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신용할 수 없는 가정, 목사와 장로간에 서로 믿을 수 없는 교회라면 정당한 관계의 모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가 생활할 때, 올바른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엡 5:17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런던 하이든 파크 공원에서 한 공산주의자가 지나가는 거지를 보고 “우리는 저 거지에게 새 옷을 입혀 줄 것이다”라고 했을 때 한 기독교 청년은 응답하기를 “당신들은 그 거지에게 옷을 입혀 주지만 예수님은 그를 새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점입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삼는 백성은 아담의 피를 받은 옛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새 사람입니다. 정욕의 증오와 악심이 그대로 살아있는 옛 사람의 사회에 참다운 인간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3. 영원한 거처는 안치의 거처입니다 럿셀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불안은 가정이 인간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 데 있다”고 탄식했습니다. 중국 속담에 “무너진 둥우리 속에 온전한 달걀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비극적 가정에 건전한 자녀가 나을 수 없습니다. 챨스 디킨슨은 “집 안의 사랑 속에서 애국심은 자란다”고 했습니다. 가정의 비극은 바로 사회 비극의 모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집입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사는 사람, 그는 가장 아름다운 가정을 소유한 사람이요, 그 사람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4. 영원한 처소는 불멸의 처소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혈연으로 맺어지는 가족, 사회는 그 어떤 제도적인 사회보다 공고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바뀌고 문화는 변해도 가족은 영원히 파괴할 수 없는 견고한 단위로 계속 존재합니다. 인위적 조직은 무너집니다. 그러나 가정은 생태적으로 구성되는 천래의 조직입니다. 가정은 이해 관계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주고받는 숭고한 사랑으로 성립되는 신비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바로 다윗이나 그 밖에 많은 성도들이 그리던 하나님의 전이요, 우리의 안식처입니다. 만일 우리가 여기에서 우리의 마음을 털어놓고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안식처입니다. 참된 관계가 이루어지고 참다운 평화와 안식이 있는 그 곳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본향입니다. 만일 숨막힐 이 세상에서 이 집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한없이 불행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 가정이 정말 하나님을 모신 안식처가 되도록 기도하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 후에 돌아갈 우리의 영원한 본향에는 땅 위에서 하나님으로 거처를 삼고 살던 사람들만이 그 곳에 다시 모여서 이별과 슬픔이 없는 무궁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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