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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겸비 (시 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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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인 시 113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을 맺습니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을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 찬양은 우리 입으로 우리 생활을 통해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누구 앞에서도 자기 남편을 자랑하게 됩니다. 교인이 목사를 사랑하면 자기 교회 목사를 자랑하게 됩니다. 목사가 자기 교인을 사랑하면 어디서든지 자기 교인을 자랑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차고 사랑으로 넘쳐서 자연히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찬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찬양은 우리의 삶에서 계속 되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서 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찬양은 계속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있으면 여러 가지 방면으로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 슬프던 마음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하나님ㅁ을 찬양하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찬양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적극적인 전도생활의 발로입니다. 1. 여호와께 찬양 (1) 누가 찬양해야 합니까? 그 범위는 아주 넓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종은 그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섬기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지금만이 아니라 영원까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만 아니라 우리 생의 끝까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당대만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도 해야 할 일입니다. 모든 세대가 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3절에 “해돋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이다”고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이름이 온 세계에서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뜨는 데서 해지는 데까지 하나님의 지헤와 권능과 인자하심이 명백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기 위해서 어서 빨리 이 복음이 세계 만방에 전파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 복음화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정 절실한 과제입니다. 우리가 많은 비용을 들여서 외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2)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4-5절에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높으시며 그 영광 또한 높으시기 때문입니다. 사 40:17에 “하나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생각건대 하나님 앞에 이 세상 모든 나라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보다 더 위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세상 뿐 아니라 우주까지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위에 초월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감탄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이시며 너무 위대하신 분이시기에 찬양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면서 낮고 천한 우리 인간을 멸시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만물을 살피시며 생명을 보존하시며 인간들의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겸비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그것을 필요로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의해서 은혜를 입지 않으셔도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인자하심으로 땅을 충만케 하시며 인내로서 선을 행하는 모범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천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보살피시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보살피시는 것이 하나님에게 겸비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잃은 자를 찾기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이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의 고난 당하심은 성자의 겸비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가장 비천한 것과 또 불쌍한 사람들을 굽어 보시고 그들을 위해 친히 육신으로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일을 성취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찬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주신 영광 7-8절에 “가난한 자들은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시려 할 때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가장 비천한 것을 택하여 그 일을 사용하시며 저희들 스스로도 가장 비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가장 높은 영광의 자리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기드온은 타작마당에서 선출되었습니다. 사울은 당나귀를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들판의 양치는 목동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으나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받았습니다. 무디는 구두 수리공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미국 역사상 위대한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약한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어리석은 자를 들어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십니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거름 무더기에서 우리를 높이 드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이렇게도 놀랍습니다. 높은 자가 낮아지기도 하시며, 낮은 자가 높아지게 하십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게도 하십니다. (1) 하나님은 조롱과 멸시받는 자들을 들어 택하십니다.하나님은 사람을 거름 무더기에서 높이 들어 방백들과 함께 세우십니다. 이것은 우리로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난이나 무식이 복음을 받아 들이는데 조금도 장애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환경이나 조건이 어려운 자리에 있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자포자기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심령이 가난해도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면 주님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십니다. 우리 심령이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다고 하더라도 더러운 그대로 주님께 나오면 주님은 우리의 붉은 죄를 양털 같이 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부르시면 아멘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2) 거름 무더기는 더러운 것을 버리는 곳이요, 무해한 것들이 있는 곳이요, 영멸의 장소입니다. 물건이 쓸모없게 되었을 때, 거름 무더기에 던져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서 무가치한 존재가 되면 거름 무더기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으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 거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좀 먹고 파괴시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독버섯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독버섯과 같은 사람도 버려 두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왜냐면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시키고자 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로 온 머리가 병들고 온 마음이 상하여 정수리부터 발 끝까지 성한 곳이 없어 상처 자국과 종기투성이라 해도 주님은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우리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방백들과 함께 세우십니다. 이것은 주 앞에 나아오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칭의의 축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칭의의 축복으로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생활이 어떠하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 완전한 칭의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이 높임을 받을 뿐 아니라 안전하고 영광스러운 보좌를 받게 됩니다. 거름 무더기는 소망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길은 소망 없는 우리에게도 소망을 안겨줍니다. 세상 사람이 멸시하고 비웃는다 해도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손에 의해 거름 무더기에서도 소망의 빛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한 몸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이 날마다 주님을 닮아 상화되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 닮은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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