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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끗한 애국심 (시 1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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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37편은 포로 기간 중이 포로의 한 사람으로 끌려간 시인의 시가 분명합니다. 시온의 성전과 그 멸망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한 노인 이 포로 중의 슬픔과 수치를 되새기며 시온을 사모하는 열정과 선민의 원수들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증오를 폭발시키고 있습니다. 이 시의 저자와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좌우간 이 노래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유대 민대 민족들의 애국 정신이 변하지 아니하고 신앙이 절개를 고수하던 것을 찬양하는 노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 노래의 내용을 말씀드리면 바벨론 사람들이 유대의 포로민들을 보고너희들이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부르던 그 시온의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요청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절했습니다.그리고 강가에 나가서 수금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 놓고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시온을 기억하고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강은 유프라테 강인지 티그리스 강인지 모르지만 바벨론 하숫가에 나가서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시온을 기억하고 울던 그 눈물이야말로 고귀한 애국의 눈물이며 거룩한 신앙의 눈물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너무 고독하고 슬퍼서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더우기 저들을 포로로 잡아 온 원수들이 저들의 기쁨을 위하여 노래를 부르라는 소리를 들을 때 뼈가 으스러지고 가슴이 녹아나는 것 같은 모독감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저들에게는 이 이상 더 큰 모독이 없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만 부르던 거룩한 성가를 원수의 나라에 잡혀 와서 원수들의 오락을 위하여 부르게 된 저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울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노래를 거절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신앙적인 면에서 거룩한 성전에서 불렀던 노래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애국적인 견지에서 원수의 나라사람들을 기쁘게 해서 저들의 마음을 사 가지고 저들 자신의 어떠한 평안을 도모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아부한다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왕 포로된 몸이요 다시 일어날 소망은 없으니 어느 정도 그 나라 정치가들과 타협을 해 가지고 자기들의 일신에 안전을 기하는 것이 지혜있고 현명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런지 모릅니다. 바벨론에 잡혀가서 저들 앞에서 노래 한 번 불렀다고 해서 이스라엘에 돌아올 때 반역자로, 이단자로 몰아세워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켰고 신앙의 지조를 사수하지 못하면 차라리 내 혀가 입 천장에 붙어서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되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습니다. 절개는 한 번 변하게 되면 창기와 같이 더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지조를 변하는 것처럼 더러운 것은 없습니다. 눈만 감으면 시온 산 언덕에 높이 솟은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한 자세가 환상과 같이 생각나고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던 그 옛날의 화려하고 아름답던 추억을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화려하던 성전을 바벨론 군대들이 불을 놓아 쑥밭이 된 것을 생각할때 그들은 울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세 차례 포로로 끌려 갔고, 유대도 바벨론에게 세 차례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이제 유대는 다 멸절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마음은 무력과 폭력 앞에 굴하지 않고 지켜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귀환민의 애국심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민족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는 민족입니다.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것은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간 아랍과의 전쟁에서 기록한 대승리입니다. 흔히 그 전쟁을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48년 그의 독립 전쟁을 위시하여 제 2차 아랍 이스라엘 전쟁이 1956년에서와 1967년 제 3차 전쟁에서도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들의 옛 수도 예루살렘의 탈환이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6일 전쟁 직후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에 이마를 맞대고 흐느껴 울면서 감사 기도를 드리는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 인과 아랍이 전쟁을 개시하자 아랍 계통의 사랑들은 모두 도망가고 이스라엘 계통 학생들을 책을 던지고 조국을 향해 가서 6일 전쟁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저들은 정치는 모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조국의 수도요, 성전은 민족의 중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에 아랍 대공화국과 싸움에서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6일만에 승리하고 2,000년을 잊어 본 일이 없는 예루살렘을 그대로 잃지 않고 사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국심이라는 것입니 다. 이스라엘 성은 주인이 바뀔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주인은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이 사실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꼭 지켜야 할 마음이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조국을 잊지 않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참된 나라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성전을 고수하였으나 나중에는 성전 자체가 그들의 목적이 되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 원수를 대하는 십자가인의 태도가 있습니다. 마 5:44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였고, 롬 12:14에는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롬 12:19에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했습니다. 벧전 3:9에도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율법으로 밝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옳은 태도입니다. 우리는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원수를 갚지 말고 다만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갚아 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여 참 사랑을 가진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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