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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할 수 없는 하나님 (시 139: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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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진지하게 살아 보려는 자에게 가장 중압을 느끼게 하는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일생을 가장 양심적으로 살아 보려는 자, 인생을 가장 부끄러움 없이 살아 보려는 자에게 있어서 언제나 인간을 절망하게 하는 존재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아무리 자기를 의롭다고 자기를 긍정해 보려해도 이를 가장 심각하게 부정하고 있는 자가 곧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양심에 부끄러운 것이 없다고 자부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죄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적 이혼을 펼쳐 본다고 해도 하나님은 없어지는 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도록 지음받은 자요, 하나님을 향하여 살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당신의 품 속에 안기기까지는 안식이 없습니다”라고 한 것은 너무도 절실한 고백입니다. 유태인의 스올(지옥)은 원래 하나님이 없는 곳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끊어지는 것이 유태인이 본 죽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에 실패 하고 차디찬 현실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러나 자살한 다고 엄숙한 실패 앞에서 과연 도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을 도피하여 음부에 숨는다고 해도 하나님께 숨겨진 것이 아닙니다. 광명한 태양이 너무 밝아 견딜 수 없다고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리운다고 해서 빛이 없을 수 없듯이 엄숙한 실재인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실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 하시는 하나님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쳤으나 하나님을 도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탕자가 멀리 다른 나라에 갔다고 해도 그가 아주 아버지 품을 벗어날 수가 없어 회개하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피해 숨을 수 없으며 떠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를 떠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7-18절) 시 139:7-9에 보면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의 거리에 펼지라도 주는 거기 계시리이다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언제 어느 곳에나 계시며 우리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문제나 환경을 만나거든 피하려고 하지 말고 주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이르시기를 마 7:7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마 16:23에서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11-12절에서는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흑암이 숨기지 못하면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피하여 숨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 안에 항상 거하면서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시 139편을 읽을 때마다 특별히 많이 띄는 말은 “주”라는 말입니다. 즉,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가 주의 신을 피하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듯하고‥‥‥,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고 ‥‥‥,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요” 등등입니다. 주의 교훈을 들으며 그의 계명을 지키려는 시인에게 있어서 주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는 영원한 환희와 기쁨을 가져다주는 존재입니다. 2. 악인들의 멸망(19-24절)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저희의 소행을 모르실듯이 덤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심사와 행동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필경 그들을 징벌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모든 혹독한 핍박자들의 종말이 비참하였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예를 들어 영국에서 선교사들을 핍박할 때 스레만 가든더는 신자들을 많이 죽인 자인데 그는 결국 타는 듯한 연이 나서 혀가 검어지고 빠져나와 죽었습니다. 로마교가 종교개혁을 막으려고 터렌트 회의를 열었을 때 크레센티우스관 주교가 회장이었습니다. 회의 중 하루 저녁은 그가 법황에게 편지를 다 쓰고 일어서는데 이상하게도 검은 개가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이에 놀란 그는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신자들도 잡아 죽인 자들이 흉악하게 벌받은 사실을 들자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 139편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자의 노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를 감사하면서 부르는 환희의 찬가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사업이 축복받고 우리 양심이 살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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