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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리석은 청년의 시험 (잠 07: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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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짓 사랑 13절에 “그 계집이 나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라고 했습니다. 입을 맞춘다는 것은 서로 가까운 관계를 가진 자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창기가 그 청년에게 입을 맞춤은 참 사랑이 아니고 그를 유혹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따라서 창기의 이런 행동에서 만족을 느끼는 자는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그녀의 입맞춤에서 소름이 기치는 영혼의 공포를 느꼈더라면 거기서 탈출하였을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라고 하였습니다. 그 창기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은 자기 집 뿐만 아니라 자기 침상에까지 초대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못느낀다는 말입니다. 그런 양심은 화인 맞은 죽은 양심입니다. 딤전 4:2에 거짓 스승을 가리켜 말하기를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회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2. 유혹의 덫 14-15절에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노라”고 했습니다. 창기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의 생활을 드러냅니다. 그녀의 두 가지 철면피를 보여 주었으니 (1) 창기의 신분이면서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물을 드렸을까? 신 23:18에 “창기의 번 돈과 개같은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이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녀가 실생활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지키지 않으면서 이따금 종교의식을 감행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이 외식하는, 종교 생활하는 자들을 창기와 같은 자들로 간주합니다. (2) 종교적 철면피는 자기가 하나님께 서원을 갚은 경건 때문에 그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창기는 오늘따라 여호와의 뜰에서 어느 사람 못지않게 종경을 받았으며, 어느 사람 못지않게 화목제와 서원한 것을 갚았고, 자기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화목제를 받으신 만큼 자기에게 빚진 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화목제 드린 고기 중에 대부분을 율법에 따라 그것을 바친 사람에게 반송되어 그것으로 이웃과 잔치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 다 먹어야 하며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자! 나와 함께 집으로 가자. 이 화목제 고기를 나와 함께 먹을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침실로 유혹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화목제가 천한 욕망의 음식과 연료로 되었다는 것은 유감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창기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그에게 매우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 듯이 가장하여 너를 맞으며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같이 죄인들은 악을 행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하며 스스로 우는 사자처럼 헤메입니다. 그들은 삼킬 자를 찾으러 다니면서 은혜를 베풀러 다니는 척합니다. 3. 음란한 침상 16-17절에 “내 침상에는 화문요와 애굽의 문채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참 향과 계피를 뿌렸노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의 앉아서 먹고 마신 후에는 그를 침실로 유혹했습니다. 여기 화문요는 꽃무늬가 있는 요를 말합니다. 그것이 비록 아름답기는 하나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렘 12:9에 얼룩진 이불은 삼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방의 이불은 음란한 것입니다. 남녀의 음란한 모습을 이불에 수를 놓았던 것입니다. 아 1:16에는 순결한 부부의 이불은 푸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창기의 화문요는 애굽의 문채있는 이불로써 더 욱 더 음욕을 불붙게 했던 것입니다. 지혜있는 자는 무엇이든지 겉모양의 매력에 끌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그것에 끌리고마는 것입니다. 왜 끌리겠습니까? 시 62:9에 입김보다 경한 인간으로서 그의 속마음에 신앙이 없고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고 비어 있으면 무엇에나 유혹받게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눅 11:23-28에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한 자는 나를 헤치는 자니라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 때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돌아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4. 가정 파탄 18-20절에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하므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 남편이라고는 하는 자는 마음으로 이미 떠난 사람, 그저 일시 동거하다 흩어지면 깨끗이 끝나버릴 관계를 말합니다. 이 여인은 자기 남편이 부재중인 것을 기뻐했습니다. 남편의 잠시 밖에 있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에 때문입니다. 오늘의 현대인들 중에 결혼식도 없이 살아보다가 싫으면 흩어지는 것으로 많은 남녀가 더러워지는 풍습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사생아, 창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남자도 은주머니를 가지고 갔으니 보름동안 오지 아니한다 하였으니 보름간 객지에서 은주머니가 다 탕진되도록 방탕하게 지내는 자일 것입니다. 여기 남편과 아내 모두 공신력을 잃은 가정에 피차에 모두 7계명 등을 범하는 범죄로 창기의 자리에 타락해 버린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쾌락을 추구하여 외지에서 재산을 탕진하고, 집에 있는 부인은 부인대로 육체의 소육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맞이할 필연적인 결과는 가정 파탄이요 하나님의 진노하심입니다. 5. 어리석은 자의 종말 21-23절에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여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메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즐거운 일을 약속하고 남편도 없으니 그 향락으로 말썽이 나지 않을 것을 보증까지 함으로써 그 음란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청년은 그의 호리는 말과 교묘한 유혹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첫 단계를 양보하면 이제 그 유혹을 이겨낼 장사가 없습니다. 다음 단계의 유혹은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복하고 그녀의 포로가 되어 나중에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소가 푸주에 가서 당할 죽음과 같은 멸망이요 살이 간을 뚫음과 같은 환란을 반드시 당하며 새가 그물에 들어가 그 생명을 잃음과 같이 그의 멸망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 없고 조심성 없는 젊은이는 음녀와의 포옹에서 얻은 쾌락만을 꿈꾸고 있으나 실제로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육체의 정욕을 하나님 말씀으로 이겨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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