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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기의 무익함 (전 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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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의 기자는 시기함의 헛됨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4:4)라고 했듯이, 오늘은 이 시기의 무익함에 대해 말씀을 드림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시기의 원인 (1) 교만입니다. 시기는 죄악입니다. 그것은 바로 교만이라는 죄악에서 유래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이 도리와 한계를 깨뜨린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는 이 과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창조한 최초의 여인 하와는 가장 간교한 동물인 뱀으로부터 유혹을 받습니다. 그 유혹의 내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너희더라 동산 모든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4-5)고 했습니다. 이 뱀의 유혹을 잘 살펴보면 유혹의 핵심적인 내용이 “너희가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서 하나님이 된다는 유혹은 여인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충동이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경쟁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여인은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시기의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 곧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2:17)고 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여인이 그 선악과를 쳐다보았을 때 그 선악과는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어 주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한 탐스런 열매”(창 3:5)로 보여 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시기의 감정을 갖지 않았고 오히려 사랑의 관계자였지만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여인은 깊은 시기심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2) 타인과의 비교의식 시기심은 타인을 협력의 관계가 아닌 경쟁의 관계로 생각했을 때 비로써 일어납니다. 타인을 경쟁의 상대로 생각한다는 것은 타인보다 내가 잘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이끌어 갑니다. 다행히 그 사람이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누구보다도 먼저 성공할 수 있다면 모르되 사람의 능력이란 모든 것에 탁월할 수 없으므로 항상 타인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불안감과 좌절감은 곧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인도됩니다. 타인을 경쟁 상태로 생각하는 자신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타인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경쟁 상대가 없다면 자기가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될텐데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시기심입니다. 자신이 경쟁상대로 삼는 사람이 잘될수록 시기하는 마음이 불일듯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사울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원래 다윗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침략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을 구했습니다. 당시의 왕이었던 사울은 이런 다윗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리하여 사울은 다윗을 군대의 장으로 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울은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보다 더 칭찬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울의 죽은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칭송에 사울은 매우 기분이 상했습니다. 성경은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는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더라”(삼상 17:8-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경쟁상대로 생각하고 그를 시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심은 마침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2. 시기의 결과 (1)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시기심의 결과는 먼저 사랑의 관계, 조화의 관계를 깨드립니다. 태초에 창조된 인간의 시기심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사랑과 조화의 관계를 깨뜨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기심으로 인한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를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 3:8)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던 아내였건만 모든 죄가 그녀 때문에 생겨났다고 매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가장 가까운 아내와의 관계가 이럴진대 다른 사람과의 관계야 어떻겠습니까? 이웃과의 관계가 완전히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은 이제 순순히 인간에게 열매를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일하지 않고는 아무 열매도 취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시기심은 이처럼 모든 관계를 깨어 놓습니다. 사랑하는 다윗을 하루아침에 미워하는 사울의 경우에서도 이 사실은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2) 자기 영혼을 상하게 합니다. 시기심은 자신에 대한 관심만을 주장하게 합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고집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들은 자기들 겸손하게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드러내어 놓고 그릇된 자기 마음을 통회하길 싫어합니다. 오직 자신의 생각과 판단만이 옳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이 잘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이 닥칠 것을 바랍니다. 이러한 생각은 바로 상실한 마음을 말해 주는 것이며 하나님도 이들의 마음은 그냥 내어버려 두고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합니다(롬 1:28-32)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된 후,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고, 사울은 비참한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울의 말년은 하나님 없는 생이었으며 영혼이 부패된 삶이었습니다. 이처럼 시기의 결과는 치명적인 것입니다. 3. 시기의 극복 시기심은 결코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시기심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1) 겸손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 1:5-8) 이 말씀에서 우리는 시기심의 극복 방방을 찾을 수 있습니다. 태초의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된 마음을 가져 시기심을 품게 되었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겸손의 마음을 가지심으로 참된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빌 1:3)을 가질 때에 시기심은 극복될 것입니다. (2) 참된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시기심은 헛된 영광을 구하려고 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참된 영광인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을 기대하고 사는 인생은 결코 남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헛된 영광은 남을 짓밟아야 취할 수 있는 것이지만, 참된 영광은 남을 사랑해야 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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