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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 존재의 정체 (전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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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 질문된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만족스럽게 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신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가 오늘까지 밝혀 놓지 못할 신비한 인간의 정체를 새삼스럽게 오늘 다시 문제 삼는 이유는 인간은 어떠 어떠한 존재라고 정의하기가 어렵다할지라도 인간의 정체를 밝혀야만 인간의 구원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재는 어떠한 존재입니까?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진리의 말씀이신 성경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세상 학문의 답변으로는 부분적으로 인간의 정체를 말할 뿐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인간의 정체를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간은 어떤 목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지 인간의 모든 것을 조명합니다. 오늘은 성경이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 성경은 먼저 인간의 정체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임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을 때 그I의미는 단순히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질이 하나님의 본성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창 2:7)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 곧 그 분의 본질이 우리 속에 넣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우리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것입니다. 그분의 본성은 그 분이 스스로 우리에게 열어 보임으로만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즉 그 분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실 때 우리는 그 분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참으로 선하신 분이시고, 참으로 큰 사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 분에게서 아무런 죄를 발견할 수 없는 순결하신 분이십니다. 바로 이러한 품성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본래적인 인간의 모습은 바로 이 예수님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보존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교만으로 하나님을 거역했고 그 결과, 인간에 내재된 하나님은 형상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순결한 존재도 아니요 선한 존재도 아닙니다. 그는 타락의 댓가로 죄의 유혹에 괴로워해야 하는 신음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성경은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반면에 타락된 존재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오늘 전도서 본문은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음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10절)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인간을 섭리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창조자는 그 피조물에 대해 절대적 권능이 있는 존재입니다. 창조자가 피조물을 창조할 때는 일정한 계획에 의해 수행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이미 창조자에 의해 섭리되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계를 주관하심은 성경의 여러 곳에 증거 되어 있습니다.“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시니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그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시:8-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슥9:10)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하에 있다 함은 다음 몇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첫째 의미는 인간은 자기 자신보다 더욱 강한 분이 계시므로 교만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정해진 범위에서이지 그 범위를 벗어나면, 곧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티끌과 같이 연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부처님 손바닥에 있는 손오공”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능력을 많이 가진 손오공이라 할지라도 손오공은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우리가 하나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되려고 한다면 그는 크나큰 죄악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인간이 하나님에 미칠 수 없으므로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은 죄악된 것일 수 있고, 그릇된 것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뜻은 진리이며 항상 선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것은 우리의 자유를 말살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참된 진리와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하에 있다는 의미의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인간이 비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것과 달라서 높고 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노라면 어려움과 시련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은 쉽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그 일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급한 판단은 죄를 짓습니다. 신중히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섭리는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성취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섭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태초의 인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그런 인간으로 회복되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계속 펼쳐져 왔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선지자들의 외침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섭리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에의 초청을 거절하였습니다. 천국 잔치를 베풀고 손님들을 청했지만 손님들이 그 청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을 향한 섭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의 노력은 마침내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놀라우신 사랑으로 우리를 끝까지 섭리하십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아멘” 하고 그 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비록 어렵다 할지라도 그 길이 멀고 어둡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빛 되 신 주내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비추소서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시 27:1, 시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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