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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사람을 주관하는 하나님 (전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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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능하신 섭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미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은 인간의 통제 능력을 초월해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의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형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 중에는 시가이 경과한 다음에야 비로써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욥의 경우입니다. 욥은 동방에서 제일가는 의인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뜻하지 않는 재앙이 닥쳐왔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올게 행동하였고 신실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욱 더 괴로웠던 것입니다. 욥이 고난당하는 것을 안 욥의 친구들은 욥을 찾아와 욥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그에게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욥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고난당해야 할 이유를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시간이 흘러가고 나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자 자신이 왜 고난을 당하였는지 비로써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잘 견디어 승리했기에 처음보다 더 큰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고난은 그의 믿음을 연단하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온전히 거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난을 당하였으나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의인이지만 이 세상에서 고난만 당하다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들이 생각할 때 이는 불행이라고 하기 쉽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나름대로 뜻과 섭리가 있어서 그러한 고난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당하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사악한 사람이 잘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행복해 보이기도 하며 또 사업도 번창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합과 이세벨과 같은 경우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우상 숭배를 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잡아다 죽이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강요하였습니다. 이런 죄를 행하는 데도 그들은 왕위에 머물러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명예와 권세가 계속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젠가는 반드시 처벌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아함과 이세벨이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았으나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비참한 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도 이와 같이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악인과 의인이 외형상으로 모두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는 사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큰 번뇌와 회의 속으로 몰고가 끝내 참된 삶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섭리의 공의로움을 믿는 성도들은 현실에 나타난 현상들이 모두 모순투성이라 하더라도 끝내는 하나님께서 결말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주어진 생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하나님은 원하실 것이며 끝내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무조건적 맹신이나 숙명론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인간의 생사화복을 비롯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항상 더 나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 이런 간증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늙으신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는 연로하여 많은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중에 심장병으로 더욱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였기에 아버지가 하루속히 건강하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향에서 아버지에 관한 편지가 왔습니다. 내용은 아버지가 편찮아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놀라움과 당황함으로 인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녀는 차를 타고 정신없이 아버지에게 달려갔습니다. 병원 침대 위에 의식을 잃은 채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해 계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아버지의 아픔에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탓하여 그녀는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달려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아버지를 병환에서 하루속히 일어나게 치료해 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애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와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한 채 그녀의 기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녀는 매우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가지고 왜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를 데리고 가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더 고생하게 하지 않으시려고 데려가신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녀의 아버지가 다시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아버지는 신경통과 관절염, 그리고 그 밖의 질병으로 인하여 더 많은 고통을 당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보다 더 나은 방법을 택하여 그녀의 아버지를 고통과 질병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렘 29:11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합니다. 1.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1)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1절).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목적하셨던 바에 따라 주관하고 섭리하십니다. 시 31:15에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또 잠언 21:1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부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 하시느니라”라고 하였는데, 이는 모든 인간과 그 활동이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에게 닥치는 사건들로부터 하나님께서 어떠한 계획을 가지셨는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외적인 환경은 내적인 성품이나 하나님의 종국적인 심판의 평가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간증에서도 보아왔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상의 것으로 일을 성취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성도들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간들을 사랑하시기에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동일하게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쪼여 주시듯이 만사를 사랑과 자비로 인도하십니다단.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도우심을 깨닫게 되고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인간 삶의 종결 전도자는 인간의 결국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일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결국은 동일하게 즉음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천하에 어떠한 영웅호걸이라도 죽음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진시왕은 죽음을 피해보고자 사람들을 시켜 불로초를 구해오게 하였으나 헛일 이었습니다. 그도 결국은 죽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인간들은 일생 동안 도덕적으로 연약하고 지적으로 불안정함을 느끼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히 9:27). 그런데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시기를 알지 못하는 고로 영원히 사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3절에 미친 마음이란 헛된 욕망이나 노력을 가르키는 말로서 이성과 양심들을 거역하는 상태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평생 동안 자신들의 정욕과 고집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의 뜻에는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육체적으로는 살았다고 할 수 있으나 영적인 측면에서 이미 죽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엡 2:1).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어리석은 자들과 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롯 다른 사람들과 같이 동일하게 무덤에 들어가지만 그 영혼만은 살아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고후 2:15-16에서 말하는 영원한 삶을 향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 없다 하여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최선의 길을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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