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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부의 고백 (아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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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 성도는 두 가지 면을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1. 솔직한 고백

(1) 신랑에 비하여 신부 자신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5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계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라고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기는 비천한 여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계달의 장막은 양 피로 만든 목장의 천막을 가리킵니다. 이는 영적으로 해석해 볼 때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기에 매우 부정한 인간임을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선 자기의 비천을 사 6:5-6에서 “오호라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신랑의 침궁에 들어간 신부 술람미는 신랑에 비해서 너무나도 부족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천한 술람미 여인에게는 솔로몬의 궁전의 휘장 같다고 자랑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휘장은 엄위롭고 왕의 권위의 상징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은 비록 계달의 장막같이 보잘것 없으나 그의 신랑은 솔로몬이요, 솔로몬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비천하였으나 솔로몬의 휘장으로 덮어지니 그의 얼굴은 아름답고, 그의 소리는 부드럽고, 그의 자태는 아름다웁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우리는 원죄로 인하여 마음이 검어진 죄인들입니다. 또한 자신의 죄로 인하여 마음이 검어진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 에게 비웃름음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하고 죄인이고 비천하지만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신부로 맞이해 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롬 8:33에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 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환란,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사망, 권세, 그리고 다른 아무 피조물 앞에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자들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술람미 여인은 비천했으나 이제 신랑으로 말미암아 왕후의 품위를 갖추고 궁내의 아름다운 존재로 왕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을 말합니다.

2. 애타는 호소 7절에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희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내가 네 동무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 운자 같이 되랴”고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출타한 솔로몬을 기다리면서 사랑하는 자와 만나기를 원하며 만난 후 떨어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1) 상봉하는 장소는 양떼 먹이는 곳이라고 본문은 말했습니다. 목자가 양떼를 먹이는 곳은 초장입니다. 초장은 주님께서 일하시는 곳입니다. 곧 성경 66권의 말씀의 세계를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제 후로는 그가 왕궁에 있던지, 초장에 있던지,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한 것입니다. 그가 치는 양떼들과 더불어 친교하면서 목자 되신 애인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결심과, 그에게서 꼴을 얻으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꼭 알아야 할 사실은 주님께서 계시는 초장이 어디인가 확인해야 합니다. 목자가 사역하는 곳을 확실히 모르고 갔다가는 큰 봉변을 당합니다. 7절에 “내가 네 동무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가 되랴”고 했습니다. 타인의 초장, 위선자의 초장에 찾아가면 봉변을 당하고 헛된 수고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상봉의 방법은 양떼의 발자취를 따름입니다. 8절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희 염소 새끼를 먹일 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스스로 겸손하게 말하기를 자기는 포도원지기로 얼굴이 검고 아름답지 못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술람미 여인을 가리켜서 여자 중에 가장 어여쁜 자라고 하였습니다. 양떼들의 발자취를 따름은 곧 목자생활의 일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목자를 따라 수많은 양떼들이 지나간 곳은 큰 대로같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 신약, 교회 역사 중에서 앞서간 성도들을 따라가면 자연히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양떼 앞에는 반드시 목자이신 주님이 계십니다. 양떼의 발자취를 남기신 주님은 푸른 초장을 소유한 목자요, 자기의 양을 잘 아는 목자요, 잃은 양 을 찾아 헤메이는 목자요, 병든 양을 돌아보는 목자요, 양을 위해 목숨 올 바치는 목자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신랑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면 무엇이 외롭겠습니까? 신부 술람미 여인의 사랑의 고백과 호소들을 주님께서는 다 들어 응답하시고 사랑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소유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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