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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묘약 (아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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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5:8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부탁하노라 너희가 나의 사랑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랑의 회복을 추구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1. 사랑의 단절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은 사랑의 단절이라고 하겠습니다. 부부간에도 사랑이 식으면 그 가정이 파괴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을 때 그 사랑을 잃지 않도록 해야겠으며 친구 간에도 우정이 있을 때 잃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사랑이 있을 때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함부로 하다가 사랑이 단절 되는 수가 많습니다. 창 3장에 하나님과 아담간에 사랑이 형성되었으나 아담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가장 큰 손실이며 비극의 시발점이 되었고, 그 후 인류사회는 크고 작은 사랑의 비극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2. 사랑 없는 삶 사랑이 단절될 때 인간의 삶은 어떠합니까?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은 사랑을 잃어버린 삶이라 하겠습니다. 물고기는 수중에서 살고, 새는 공중에서 살며, 사람은 사랑 속에서만 산다고 하였습니다. 카르멘 실바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그 창조된 생명에 하나의 기둥을 세워 주셨는데 그 기둥은 사랑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빌린다면 사랑이 없는 생명은 기둥이 없는 것과 같아 그 생애는 곧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가 처해 있는 주위에 눈을 돌려 봅시다. 사랑을 잃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삶을 포기하고 실의에 찬 사람들을 살펴보면 모두가 사랑을 끓어버린 자입니다. 토인비는 말하기를 “사랑은 죽음과 악 대신 생과 선을 선택케 하는 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류의 불행, 절망, 저주는 모두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사랑이 단절되고 마귀와 사사롭게 접합됨으로써 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면 문제는 하나님과 단절된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3. 사랑의 회복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사랑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찾기 위해 밤이슬을 맞았으며 병까지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사랑을 회복 하는 묘약이 무엇이겠습니까?

(1) 첫째 찾아나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만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가 교회에 출석하며 예배드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만나는 행위입니다. 이 만남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다시 고백해야 하며 그의 자비를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둘째는 원인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계 2:5에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다시 돌이켜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회개의 길 뿐입니다. 탕자가 죄인인 것을 고백할 때 그 순간 잃었던 아들의 권리를 얻게 된 것처럼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3) 세 째는 진실 된 마음입니다. 부부간에도 공연한 오해로 사랑에 금이 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진실된 마음으로 돌아가야 다시 사랑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언제나 진실함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진실 된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은 문을 두드려 끊어진 사랑을 회복키 위하여 찾아오신 것입니다. 신랑의 그리운 음성이 들려옵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문만 두드리시는 것이 아니라 “문 열어 다오”라고 직접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낯익은 신랑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맨발로 뛰어가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분이 아닙니까? 그런데 신부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주님의 간청을 물리친 것입니다. 얼마나 죄송스러운 일입니까? 회개하고 갱신하여야 할 오늘의 교회 성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무어라고 핑계했습니까? 3절에 “내가 지금 옷 을 벗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옷을 벗었으면 일어나 입고 신랑을 맞이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주님을 머리에 이슬이 함빡 젖도록 두시었습니다. 3절에 “내가 발을 씻었는데 어찌 다시 더럽히냐”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침소에 들 때 반드시 결례의 법칙에 의해 발을 씻는 법입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다닌 후에는 다시 발을 씻어야 하므로 번거로워 침소에서 못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일로 게을리 하는 성도라면 구원받은 성도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못해 문을 열어 보니 벌써 예수님께서 기다리다 못해 물러가신 후였습니다. 아무리 후회하고 자책해도 이제는 때가 늦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만날만한 때에 그를 만나야 합니다.

(4) 헌신입니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사랑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첫째는 아름다운 사랑이요, 둘째는 헌신의 사랑이요, 세 째는 활동의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회복은 하나님을 위한 헌신적인 활동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묘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사랑의 회복을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따라서 지체치 말고 속히 하나님과 사랑의 회복을 이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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